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Rue des boutiques obscures, Patrick Modiano (문학동네) 그 건물들의 입구에서는 아직도 옛날에 그곳을 건너질러 가는 습관을 익혔다가 그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의 메아리가 들릴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무엇인가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약해져가는 어떤 파동,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이.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느느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p.130 잠시 동안 나의 생각은 함수호로부터 멀리 세게의 다른 끝, 오랜 엣날에 그 사진을 찍었던 러시아의 남쪽 어느 휴양지로 나를 실어갔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이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p.262 =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이 내게서 말소된 뒤에도 나를 나로 칭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그렇게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Der Dooppelganger, Jose Saramago (해냄) 하지만 사람들이 개를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하는 것처럼, 질서와 순서도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비록 질서와 순서도 개처럼 가끔 사람을 물기도 하지만 말이다. p.71 일초, 일초 시간이 흐를 때마다 문이 열려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이 앞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방금 한 말의 모순적인 본질에 맞서자면, 미래는 그저 광대한 허공일 뿐이며 영원한 현재의 먹이가 되는 시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p.291 그러면 그의 아내가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당신한테는 적이 하나도 없는데. 안토니오 클라로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대신 적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적은 적을 갖겠다는 우리의 의지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를 갖겠다는 적 자신의 저항할 수 없는 욕망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p.313 = 실존에 예상치 못한 위협이 들이닥쳤을 때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믿음이 주는 위안은 얼마나 큰지.

연애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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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쩌다가 우리가 한 침대에서 자게 됐어? # -이거 꿈인가? 꿈이니? 우리가 지금 다시 만난 거. -꿈은 아니야. 넌 꿈에는 절대 안 나타나는 여자니까. 그런여자야 너는. 보고싶어서 한번만 꿈에 나타나 달라고 빌어도 빌어도 안나오던 여자. -꿈 맞네. 강태하는 그런 말 하는 남자는 아니었으니까. -어떤 남자였는데? -맨날 기다리게 하던 남자. 나 혼자 동동거리게 하던 남자. 나보다 중요한 게 엄청엄청 많던 사람. 나를 좋아한다면서 이렇게 하찮게 대할 수 있나 자존심 상하게 하는 사람.. 2. 그 남자랑 헤어지고 나한테 올래? # -우리가 왜 헤어져야 되는데? -그 이유를 모르는 남자니가 헤어지자고 한 거야.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남자잖아. # 강태하 때문에 알았어요. 연애는 여자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남자를 움직이게 만들어야 되는 거더라구요. 그래야 내가 원하는 걸 얻는 게임이 연애더라구요. 예전에는 그걸 몰랐어요. 5년 전에는 강태하가 나빴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좋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제가 남자를 몰랐던거에요. 남자를 다루는 방법을 몰랐던 거. 3. 질투라고 말해도 할 수 없고 # 왜 저 여자를 그렇게 오랫동안 잊지 못했는지 깨달았어요. 한여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냥, 한여름은 한여름이니까. 이 남자는 여름이를 가졌잖아요. 질투는 아닌데, 아니 뭐 질투라고 해도 할 수 없고. 그냥 이 남자는 자기가 어떤 여자를 가졌는지 알고나 있을까 궁금했어요. 이 남자는 알고 있어요.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껴졌어요. 눈부신 자부심이. # 니가 하루종일 공방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말이 잘 통하고 엄청 친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좋겠지? 근데 이 친구가 막차 시간이 돼도 안 가. 밤 새워 놀아도 돼. 한방에서 껴안고 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 어머니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

최영미, 옛날의 불꽃

옛날의 불꽃 최영미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 계절이 깊었다. 온갖 따듯한 것들에 대한 향수가 짙어진다. 추워서 그런거겠지. 나는 담백해지려면 멀었다.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정오의 희망곡 이장욱 우리는 우호적이다 분별이 없었다 누구나 종말을 향해 나아갔다 당신은 사랑을 잃고 나는 줄넘기를 했다. 내 영혼의 최저 고도에서 넘실거리는 음악,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우리는 언제나 정기적으로 흘러갔다 누군가 지상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냉소적인 자들은 세상을 움직였다. 거리에는 키스신이 그려진 극장 간판이 걸려 있고 가을은 순조롭게 깊어갔다. 나는 사랑을 잃고 당신은 줄넘기를 하고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냉소적인 자들을 위해 우리는 최후까지 정오의 허공을 날아다녔다. = 나는 사랑을 잃고 당신은 줄넘기를 하고

백창우, 오렴

오렴 사는 일에 지쳐 자꾸 세상이 싫어질 때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내게 오렴 눈물이 많아지고 가슴이 추워질 때 그저 빈 몸으로 아무 때나 내게 오렴 네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방 하나 마련해 놓고 널 위해 만든 노래들을 들려줄게 네가 일어날 때 아침이 시작되고 네가 누울 때 밤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너를 찾으렴 망가져 가는 너의 꿈을 다시 빛나게 하렴 = 저렇게 쉴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저런 쉼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의 망가진 꿈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건 얼마나 장엄하고 숭고한 일인지. 신 말고도 저런 안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큰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사실 이 시와 대구를 이루는 '가렴'이라는 같은 시인의 시가 있는데 그 시는 어쩐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적고 싶지가 않다. 늘 모두가, 오기만 했으면 좋겠다. 떠나지 않고.

나의사랑 나의신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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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 임찬상 조정석(영민), 신민아(미영) 여자에게 첫사랑이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첫모습이래.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는 거야. 그렇지만 시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쳐선 안 돼. 시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쓰는 거야. 영민씨가 내 첫사랑이야. =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사랑을 지켜나가기위해 서로 노력하는 삶은 숭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