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14의 게시물 표시

바닥

바닥 아래엔 또 바닥이 있을까.

슬럼프

장황하고 두서없는 헛소리. 술은 늘 글을 부른다. 1 이처럼 모든게 어렵게 느껴진 시절은 없었다.견줄 만한 때를 꼽으라면 고3 봄 첫사랑과 헤어졌을 그 시간들이려나. 너무 어렸던 나는 어디선가 주워본대로 멍청하게 소주병 나발을 불고 전봇대를 들이받아보기도 했다. 여기저기 기대어 꺽꺽 울며 별의 별 진상과 추태를 다 부려봤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깊이의 관계였지만 열여덟의 나에겐 그가 평생에 한번 만날 법한 소울메이트로 느껴졌기에 그 분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한편으론 대입이 삶의 전부처럼 왜곡돼 보이던 그 나이의 나에겐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고 있는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한심하기도 했다. 지금은 되려 그때의 미숙한 순수가 스스로 귀여워 보이거나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그 사이 8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내게는 그 나날만큼 켜켜이 굳은 살이 배겼다. 좀 더 중요한 일들이라던지 그래도 끝내 챙겨야만하는 의무랄 게 생겼다. 스물다섯의 나는 지난 사랑이 한낱 몇 병 술따위론 씻겨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슬픈 노래 가사의 클리셰들을 경험으로 체득했고 습관처럼 듣는 그 노래들이 결코 상한 마음을 치유하진 못한단 점을 안다.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기에 숱한 상처를 봉합하는 일은 시간과 망각의 일이란 것을 안다. 방금 나를 떠나간 사람이, 혹은 내가 방금 떠나온 사람이 생의 마지막 인연은 아닐거라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무던해지기 위한 사투를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든다. 지나간 사랑을 넘어설 마음을 일으키지 못할까봐 겁에 질린다. 그런 나를 상대가 우습게 알까봐 두려워 가슴속은 곪아든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어른이 되는 괴로움은 거기서 시작된다. 2 모든게 엉망진창으로 변한 채 연휴가 끝났다. 오랜 벗들을 만나 사는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 길, 사람들은 늦은밤 막차의 빈틈을 빼곡히 메웠다. 그리고 문득 이 모두가 어느 수준 이상의 책임을 수반한 사랑의 결실들이라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성간여행을 기대하며

= 추석 연휴 동안 다른행성이 돌진해와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랑, 4차원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지구를 부숴버리는 영화와, 지구엔 가망이 없다며 성간여행을 시도하는 영화 예고편을 돌려봤다.  그러고 출근하니 폐쇄등기부등본으로 수십억대 불법 전세담보대출을 받은 일당을 비롯한 세상 만사는 하찮게 느껴졌다. (사실 그 사기꾼 일당은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인터스텔라 예고편을 보니 좋아하던 시가 왠지 색다른 방식으로 적절하게 인용된 것 같아 공유. #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Dylan Thomas ,  1914  -  1953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ood men, the last wave by, crying how bright Their frail deeds might have danced in a green b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Wild men who caught and sang the sun in flight, And learn, too late, they grieved it on its w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rave men, near death, who see with blinding sight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Rag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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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la Marcel, 2013 감독: 실뱅 쇼메(Sylvain Chomet) 배우: 귀욤 고익스(Guillaume Gouix), 앤 르니(Anne Le Ny) 추억은 강가의 물고기처럼 머리 깊숙이 살고 있단다. 나쁜 기억은 행복의 홍수 밑으로 보내버려. 수도꼭지를 트는 일은 네 몫이란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비슷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Vis ta vie! 네 인생을 살거라. # 기억만큼 부정확하면서도 또렷한 게 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적히기도 하고 세월에 따라 변하거나 희미해지기도 하는 기억을 때로 맹신한다. 좋은 기억은 더없이 미화되기도 하고 나쁜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전부다 낱낱이 기억하지 못하고 잊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다. 결국 한 사람의 내일을 정의하는 것은 오늘이지 어제가 아니다. 어제는 어제일 뿐. 우리는 눈앞에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특별한 정원이나 한잔의 차, 마들렌, 그리고 음악은 단지 거들 뿐! 미처 자라지 못한 영혼을 지닌 어린 어른이 그의 기억과 추억을 더듬어 그의 아버지 Attila Marcel이라는 존재와 끝내 화해하는 이야기. 아이가 아빠를 부르는 순간은 그래서 경이롭다.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 정원은 도구일 뿐 본질은 폴과 그의 아버지에 있다는 점에서 원제가 ‘옳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