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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청춘

청춘 심보선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문학과지성사 = 나 여전히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그 시간을 살아내고 있구나 싶어서, 눈물도 웃음도 났다.

데뷔의 순간, 한국영화감독조합

데뷔의 순간  - 영화감독 17인이 들려주는 나의 청춘 분투기 주성철 엮음/ 한국영화감독조합 지음 푸른숲 점점 주변의 불편한 시선도 느껴지고,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다른 먹고살 일을 찾으라는 진심 어린 조언도 숱하게 들었다. 그럴 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자학과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는 자기연민의 도돌이표다. ... 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진정으로 원한 데뷔작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김경형'이라고 하는 인간의 본질과 무관한 불량식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p.26-27, 31 김경형,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정면승부다> 그리고 특별한 재능이나 영리함이 있었다기보다 맷순간 가졌던 절박함이 나의 무기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 승범이나 박찬욱 감독님처럼 '아님 말고' 식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물론 그 역시 진짜 여유라기보다 자기 자신만 아는 절박함의 다른 표현이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뱉어낼 여유조차 없다. 지금도 한 편, 한 편 만들 때마다 전쟁 같고 너무 많은 상처가 남으며 항상 불안하다. 내겐 너무 생명 같고 소중한 영화라 그 영화의 운명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다. ...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절박함 때문이었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그러면서 겁먹지 않는 태도를 키워야 한다. 챔피언은 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p.82-83 류승완, <챔피언은 잘 대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다> '진짜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불확실성과 마주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할 줄 아는 다른 게 없으니 '선택의 여지'니 그런 게 없었다. ... 그렇게 오직 영화로 먹고살기로 결심한 이상, 머나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하나다. 자기가 뭔가 대단한 일이라

오은, 청춘

청춘 오은 거센소리로 머물다가 된소리로 떠나는 일 칼이 꽃이 되는 일 피가 뼈가 되는 일 어떤 날에는 내 손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 손은 내가 아니니까 내 마음이 아니니까 자유는 늘 부자연스러웠다 몸의 부기를 빼는 일 마음을 더는 일 다시 예사소리로 돌아가는 일 꿈에서 나와 길 위에 섰다 아직, 꿈길 같았다 <유에서 유> 문학과지성 시인선 488 문학과지성사 = 모난 것들이 아름다워지고, 흐르는 것들은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