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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 내 인생의 절반보다도 긴 세월을 그 집에서 살면서 나는 수없이 그 길을 걸었다. 때론 생각하면서, 때로는 아무 것도 떠올리지 않으면서. 스물 다섯, 십이월의 첫날. 시절이 쌓인 나의 귀갓길 위에서 생각했다. 아니, 상상했다. 너무도 듣고 싶은 나머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이야기들과 그 대답들을. 아마 결코 듣지 못할, 그렇지 않을 내용들을. 그 사람의 목소리로 상상했다. 이제껏 들어온 목소리 만으로도 원하는 낱말들과 바라는 문장들을 환청처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질없는 생각으로 마음을 데우면서 찬 공기 빼곡한 겨울 밤길을 걸었다. 분명 나는 마음으로 울고 있었는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초등학교에 다다랐을 무렵부턴 내가 울고 있음에도 울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아야만 한다고 느꼈다. 눈물이 날 만큼 아프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누군가를 위한 눈물이 이미 동났기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쌀쌀한 밤공기 탓을 하고 싶었다. 모퉁이를 돌아 타코야끼를 파는 청년을 만나면 타코야끼를 열 개 사면서 물어볼 작정이었다. "눈물이 나고 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건 춥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오늘은 청년도 나오지 않았다. 어딘가 행복해 보이는 그 청년이 답을 줄 것만 같은 확신에 더 가까운 기대가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확신도 기대도 전부 속절없는 허상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태 모르겠는 나와 당신에 대한 확신이나, 당신에 대한 기대나, 내일에 대한 확신이나, 삶에 대한 기대나 불완전한 그대로가 가장 완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흐르는 것이 두렵다. 뜻밖의 내일로 가게 될까봐 무섭다. 스물 다섯의 마지막 한 달동안 너무 큰 변화에 압도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