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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야호 하고 만세를 부르는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필요할 땐 주먹처럼 쥐라던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울이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을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 단지 제목에 이끌려 산 시집이었다. 이렇게 쉽게 시를 쓰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장난치듯 늘어놓은 일상의 조각들 틈바구니에서 간혹 싸르르한 시구들이 마음에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