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28인 게시물 표시

28, 정유정

링고는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그것은 자신의 전부를 걸어 어느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는 점에서 욕망이고, 느낌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육감이며, 충동을 누르고 때를 기다리게 한다는 점에선 자기명령이었다. p.43 그녀는 움켜쥔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겼다. 목이 답답해왔다. 하고 싶은 말이 목젖 밑에서 신물처럼 솟구쳤다.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p.346 = 흡입력 하나 대단하다. 정말이지 문장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뭔가 전에 그려보지 않은 소재와 시선이 주는 생경한 충격에 완전히 압도당한 기분이랄까. 다 읽은 뒤에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다시 못꿀 것 같은 해괴한 개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