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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기준영, 정용준, 장강명, 김솔, 최정화, 오한기 /문학동네 양희야, 양희야, 너 되게 멋있어졌다. 양희야, 양희야, 너, 꿈을 이뤘구나, 하는 말들을 떠올리다가 지웠다. 안녕이라는 말도 사랑했니 하는 말도 구해줘라는 말도 지웠다. 그리고 그렇게 지우고 나니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 필용은 오래 울고 난 사람의 아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질문들을 하기에 여기는 너무 한낮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정오가 넘은 지금은 환하고 환해서 감당할 수조차 없이 환한 한낮이었다. p.43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그는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때 모든 걸 정리해 진과 함께 홍콩에 가서 살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생각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낭만적인 데가 있었다. 그는 경솔한 사람처럼 그 생각의 낭만성을 읊었다. p.68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기준영) 어쩌면 소설이라는 도구는 인간 군상 속에 매몰되어 있는 개인을 입체적으로 발굴해내는 흙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입체적 개인을 평면에 눌러 인간 군상 속에 숨기는 압착기인지도 모르겠다. p.203 (유럽식 독서법, 김솔) = 너무 한낮의 연애라니, 제목부터 마음을 이렇게 툭 건드려도 되나 싶다. 단편소설의 매력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다 만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토막난듯한 이야기들의 여운이 참 좋다.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 로스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로스/정영목옮김/문학동네 우리는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거무스름한 금 가까이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러다 이따금씩 의자로 돌아가 머뭇머뭇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기 시작한 감정을 재치 있으면서도 불안하면서도 다정한 찬가로 노래했다. 사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낯설고 새로운 느낌을 휘저어 사랑을 닮은 거품 속에 집어넣었지만, 감히 그것을 너무 오래 가지고 놀지도 못했고,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도 못했다. 자칫 납작해지거나 픽 하고 꺼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p.38 다음날은 바람이 가을을 실어오고 수양버들 가지들이 파팀킨의 집 앞 잔디밭을 만지작거렸다. 정오에 브렌다를 기차역까지 태워다주었고, 그녀는 나를 떠났다 . p.194 = 지난해 맹장 수술하면서 읽었다. 여러 단편 중에서도 책의 제목이 됐던 저 굿바이 콜럼버스가 제일 좋았다.  풋풋하고 뜨거운 청춘의 사랑이 흩어지는 과정을 덤덤하게 담아냈다.  그 덤덤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사랑에 깊이 빠지는 순간이나 그런 감정이 다 지나고 모든게 끝나는 시점까지도.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문학과 지성사(2015) 아름다운 건, 하루오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 그게 하루오의 말이었는데, 어딘지 건조한 그 말이 그때는 아주 조용하고 희박한 공기처럼 느껴져서, 뭐라고 더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가 젖은 눈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가만히 말했다. 작은 사랑이 하나 지나간 느낌이었어....... 라고. p.36 <절반 이상의 하루오> 그에게 혼잣말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이 고독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언제든 영화처럼 돌려볼 수 있어서 좋다......고, 알은 또 엉뚱한 말을 중얼거렸다. 생각이 먼저 있어서 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온 뒤에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p.81 이름이란, 아무렇게나 흐르지 않도록 사람을 붙들어두는 작은 닻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p.86 니콜라의 말투에 약간의 슬픔이 배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이미 익숙해져서 몸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은 감정이었다. 그런 감정은 체온에 가까워서 아무리 반복해도 더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은 알고 있었다. p.88 <올드 맨 리버>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생이 아니다.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나에게 얘기하는 것인지 황혼에게 얘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p.127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그녀는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불꽃이 점화되었다가 천천히 식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 낭만적 허무주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정귀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귀보 씨는...... 멀리 있어야만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 정귀보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긴 말은 여러 면에서 암시적인 것이었다. 안녕. 아름다운 동화에서 한 페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