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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편지

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 서둘러 퇴근을 하고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문득 경찰서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눈부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을지로입구역이었던가. 무심코 멈춰서 눈앞의 시를 훑다가 눈물이 났다. 솔직한 낱말들, 꾸밈없지만 마음보다도 정확한 문장들. 정말이지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생각만으로도 글썽글썽한 누군가가 있다. 그건 때때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픈 일이지만,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