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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數)의 독재

수(數)의 독재 뇌의 어느 한 구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한 지 오래다. 두정엽(頭頂葉), 아마 여기 문제인가 보다. 정수리에서 뒤통수로 넘어가는 길목쯤에 있는 뇌의 이 부분이 맡은 역할 중 하나가 수학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나는 수학이 괴롭다. 요즘 말로 ‘수알못’(수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학문 영역까지 갈 필요도 없다. 숫자가 싫다. 수(數)가 싫다. 이 감정은 자주 호오(好惡)의 경계를 넘어 공포로 내달린다. 고작 0부터 9까지 기호 열 개의 조합일 뿐인데,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숫자들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하고 번뜩 눈앞이 캄캄한 게 꽤 아찔하다. 피치 못하게 숫자를 접할 때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를 쓰지만 소용은 없는 편이다. 취재 과정에서 다뤄야 할 숫자가 세 자리를 넘어가면 꼭 몇 번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통계를 바탕으로 기사를 쓸 때는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드리고 엑셀과 씨름한 뒤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귀결되는 일이 잦다. ‘숫자에 트라우마가 있다’고 기회 될 때마다 미리 앓는 소리를 해 둔다. 트라우마의 역사는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출난 재능이 없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수학과 좀처럼 맞지 않았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될 뻔했다. 그래도 대학에 가려고 버텼다. 막상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수학 답안지까지 살짝 밀려 썼다. 재수는 안 했다. 수학을 더 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그 뒤로 수와 최대한 멀어지고자 발버둥쳤다. 취업에 중요하다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은 한 과목도 듣지 않았다. 동생이 수학 문제를 알려달라고 하면 방문을 걸어 잠갔다. 시급이 아무리 높아도 수학과외보다는 콜센터 아르바이트가 편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내심 안도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은 기업 입사 시험처럼 숫자들의 상관관계나 규칙 따위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점점 더 수 앞에서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 키, 몸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