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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s and Year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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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S AND YEARS (2019) SCREENPLAY & CREATED BY: Russel T. Davis DIRECTED BY: SIMON CELLAN JONES / LISA MULCAHY STARRING: EMMA THOMPSON / RORY KINNEAR / RUSSEL TOVEY / T'NIA MILLER... PRODUCTION: BBC/HBO 한토막 대사, 찰나의 장면도 허투루 쓰지 않은 완벽한 수작이 나타났다. 브렉시트, 트럼프, 미중관계, 핵무기, 기후변화, 남중국해, 러시아-우크라이나, PIGS, 금융위기, 난민, 사이버테러, 백신 없는 바이러스, 하이테크 이슈까지 현존하는 모든 문제를 6화짜리 드라마에 전부 쓸어담았는데 한 순간도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 셰익스피어와 조지오웰과 올더스헉슬리의 나라가 또 해낸 것이다. (약간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음) 핍진한 비극이 임박했나니 핍진성(verisimilitude) . 작품이 얼마나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는지, 진짜와 비슷한지에 대한 정도를 이르는 말이다. 핍진한 정도의 완급 조절에 실패한 작품은 논픽션 다큐멘터리마냥 딱딱해지거나, 허무맹랑한 공상처럼 붕 뜬 신기루에 그치고 만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아주 핍진하다. 실존하는 인물들이 나타나 국제 정세를 어그러뜨린다. 시장경제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다. 엊그제 뉴스에서 본 것 같은 어쩌면 내일 뉴스에서 볼 것 같은 정무적 '막말'들이 극속 정치인들의 입을 거쳐 쏟아진다.  '지능이 낮으면 투표권을 박탈해야 한다', '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와 것 같이, 술자리 안주거리로 지금도 오르내릴 말들이 드라마 속에서 현실이  된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다 익사한 난민들 이야기는 이미 화면 밖에서 반복된 사실( 史 實) 이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이래도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적을 정도로 모든 요인이 현실적이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 민음사 "다만 어느 날 문득, '왜?' 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라는 말은 중요하다.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이 끝날 때 느껴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나는 이 권태가 좋은 것이라고 결론지어야겠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의식에 의해 시작되며 그 어떤 것도 의식을 통해서만 가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전혀 독창적일 것이 없지만 명백하다. 부조리의 기원을 간략하게 인식해 보는 기회는 당분간 이것으로 충분하다. 단순한 '관심'이 모든 것의 기원인 것이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내려가면 나타나는 것이 낯섦이다. 즉, 세계가 '두껍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한 개의 돌이 얼마나 낯선 것이며 우리에게 얼마나 완강하게 닫혀 있는가를, 그리고 자연이, 하나의 풍경이 얼마만큼 고집스럽게 우리를 부정할 수 있는가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의 밑바닥에는 비인간적인 그 무엇이 가로놓여 있다." "이성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지만 그것은 또한 신을 향해서 돌아설 줄도 안다. ... 이성은 사유의 도구이지 사유 자체는 아니다. 한 인간의 사유란 무엇보다 먼저 그의 향수이다."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만 안겨주는 세계의 절연, 통일에의 향수, 지리멸렬의 우주 그리고 그 양자를 한데 비끄러매 놓는 모순이 바로 부조리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가 상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확실성이다. 즉 그는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은 것이다." "바닥 없는 이 확실성 속으로 빠져드는 것, 이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확실히 느낌으로써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 문학동네 맨해튼 미드타운, 내 청춘의 어두운 시절을 보낸 그 좁고 낡은 아파트먼트의 쪽창으로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이해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나는 이 시의 어휘 하나하나를 조사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을 듯한 기분. 마치 이 시가 쓰이기 이전에 이미 이 시를 알고 있던 것처럼, 모든 문장들을 한 올 한 올 이해할 것 같은 느낌. 지금은 그것만이 나의 리듬. 지금은 그것만이 나의 슬픔. 아니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실 그녀가 적는 모든 문장은 허술한 농담 같으면서도 동시에 농담일 수 없을 만큼 정교하기도 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 세계의 농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여전히 이 세계를 살아가겠죠. 저 역시 어디서든 당신을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글을 일고 당신도 언젠가 다시 나의 글을 읽을 거예요. 그것으로 문장들의 아름다운 우주 같은 게 이루어지리라는 달콤한 말은 믿지 마시길. 우리는 그저 앙상하고 외로워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안간힘을 다해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채워줄 뿐이니까요. 그리고 스르르, 사라지는 거예요. 영원의 이야기란 언제나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나는 미국 맨해튼에도 가보지 못했고 티벳 라싸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어쩐지 그 세계의 뒷골목에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 늦은 시간에 일어나 잠시 스트레칭 자세를 취한 뒤 슈만의 환상 소곡집을 틀어놓고 맞은편 빌라의 외벽에 가로막혀 있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이런 순간에는 갑자기 인생이 정지해서 다시 시작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 마커스 밀러로 음악을 바꾸고 몸을 흔들어도 영영 깊은 물속 같은 기분은 마찬가지. 이것이 오늘의 기분.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회계장부라든가 복식부기는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세계입니

신뢰 이동, 레이첼 보츠먼

신뢰 이동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레이첼 보츠먼 지음 /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신뢰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적 신뢰 local trust 의 시대로,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살던 시대다. 두 번째는 제도적 신뢰 institutional trust 의 시대로, 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해서 지역 공동체 안의 교환을 벗어나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가 구축된 일종의 중개인 신뢰의 시대다. 세 번째는 분산적 신뢰 distributed turst 의 시대로, 우리는 아직 그 시대의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신뢰와 위험은 남매 같다. 신뢰는 우리를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의 틈새로 끌어당기는 놀라운 힘이다. 나이키의 모토 'Just do it(그냥 해버려)' 처럼. 쉽게 말해, 신뢰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신뢰에 대한 내 정의는 단순하다. 신뢰는 미지의 대상과의 확실한 관계다." "앞으로 온라인 신뢰 과정은 계속 빨라지고 더욱 똑똑해지고 더욱 넓게 확산될 것이다. 좀 더 정보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좋은 일이다. 변호사를 고용하든 집을 팔든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든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부분을 잃어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제도가 실패하면 항상 대안이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분산적 신뢰만으로는 극단적인 포퓰리즘이나 급진적인 정치 지도자들의 위험한 정책이나 분열을 조장하는 국가주의의 부활을 막을 순 없다. 다만 새로운 분산적 신뢰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에 대한 요구와 선호도에 맞게 구성하고 재구성하면서 앞으로 비즈니스와 정부, 미디어와 주요 제도에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고 폭넓게

피프티 피플, 정세랑

피프티 피플 정세랑 장편소설 / 창비 “다음 당직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다. 기왕이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놀이공원 같아. 굉장히 참담한 놀이공원이지만 놀이공원 같아. 아드레날린 정키는 만족스러웠다.” “유라는 길을 걷다가 유난히 불행을 모르는 듯한, 웃음기를 띤 깨끗한 얼굴들을 발견하면 갑자기 화가 났다. 불행을 모르는 얼굴들을 공격하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왜 당신들은 불행을 모르느냐고 묻고 싶었다. 어리고 젊고 아직 나쁜 일을 겪지 않은 얼굴들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건 비틀린 위로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기다리고 찾았던 그 적소가 어쩌면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최근에야 드디어 생각이 들었다.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하중이 걸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채원은 스스로가 단단한 부품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중을, 타인의 생명이라는 무게를, 온갖 고됨과 끝없는 요구를 견딜 수 있는 부품이란 걸 어떤 자기애도 없이 건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 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알고 보니 세상에서 자기 아프다는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시인들이었다. 아프다는 말을 아름답게 해버리는 동료들 덕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간질을 앓았던 사람도 여럿이었다. 윤나는 개운해진 한편 가끔 아연하기도 했다. 우리가 쓰는 시가, 사실은 간질의 후유증이면 어떡하지? 발작 같은 것이면 어떡하지? 윤나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이는 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운이 좋았던 적이 있어야 이해할 것이다. 큰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파도가 부서질 줄 알았는데 계속되었다. 평생 그랬다. 유학생 출신답게 호 선생은 생각했다. ‘그레이트 라이드’ 였다고. 그 좋았던 라이드가 이제 끝나간다. 그렇다면 나눠줘도 좋을 것이다. ... 호 선생은 별로 욕심이 나지 않는다. 발 밑에서 큰 파도가 다 부서져도 좋다. 지금껏 너무 많이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 창비 “때때로 그는 내게 있어서 사랑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게 규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규호의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껏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몇번이고 나에게 있어서 규호가, 우리의 관계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특별한 어떤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순도 백 퍼센트의 진짜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온갖 종류의 다른 방식으로 규호를 창조하고 덧씌우며 그와 나의 관계를, 우리의 시간들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했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규호라는 존재와 그때의 내 감정과는 점점 더 멀어져버리고야 만다. 진실과는 동떨어진 희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 소설 속 가상의 규호는 몇번이고 죽고 다치며 온전한 사랑의 방식으로 남아 있지만 현실의 규호는 숨을 쉬며 자꾸만 자신의 삶을 걸어나간다. 그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모든 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지난 시간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여실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 화양연화의 그림자를 더듬거리며 깔깔 웃다가 가슴을 부여잡다가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  문학과지성사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지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1~3장). ... 사람은 법적 주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례를 통해 재생산되는 성스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랜 합리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주술로부터 풀려났으며, 그 결과 신이나 정령 같은 전통적인 숭배의 대상들은 그 절대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 개인이다. 인격 human personality 은 한때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이 광휘를 잃은 시대에 여전히 신성하게 여겨지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격하게 말해서 영혼과 정신은 같지 않다. 정신적인 특질들은 결국 육체에 의존하며, 그만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사람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가 그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벗들은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겠지만, 그래도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정을 지탱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억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정을 순수한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다. 이는 우정이 그만큼 많은 결별의 계기들을 품고 있다는 말도 된다.” “절대적 환대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이다. 환대가 사회 안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행위라면, 환대에 보답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가 받은 것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람의 지위를 박탈하는 일은 법의 제정과 집행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 이전에, 그게 어떤 일을 당하건 그를 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연대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아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김영사 “이 책은 곧 1심 판결문이고, 독자는 당사자이면서 곧 상급심이다. 상급심은 1심의 결론을 받아들여 판결을 인용할 수도 있고, 결론이 틀렸다고 파기할 권한도 있다. 이 책의 독자는 ‘이봐, 당신은 틀렸어. 판사로서의 당신 삶을 파기한다’는 주문을 낼 수도 있고, ‘결론은 용케 맞췄군. 이 판결을 인용한다.’는 주문을 낼 수도 있다. 염치없게도, 이 판결이 일부라도 인용되기를 바라지만, 전부 파기되어도 항소는 없다.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이다.”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습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보편타당한 원리를 추구하는 사법은 본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그 바탕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사법의 본령은 삶의 현장과 소통하는 것이며, 대상 사건의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와 애환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다수자의 지위는 불안정해서 시공과 잣대만 슬쩍 바꿔도 바로 역전된다.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흑백 인종분리 교육의 부당함을 홀로 지적하며 ‘우리 헌법은 색맹이다 Our constitution is color-blind’라고 일갈한 존 마셜 할란 대법관을 소환할 필요도 없다. 우리 헌법 역시 색맹이고 모든 종류의 차별을 부인한다. 우리 헌법은 남성도, 여성도, 이성애자도, 부자도, 중산층도, 크리스천도, 불자도 아니다.” “나의 존재는 타자에 의해서만 증명된다. 타자는 나를 설명함으로써 내 존재를 입증한다. 나 역시 나와 관계있는 타자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주석이다

빛의 과거, 은희경

빛의 과거 은희경 장편소설 / 문학과지성사 갑자기 큰 소리로 목청껏 뭔가를 외치고 싶었다. 이를테면 명멸, 여로, 폭풍, 쾌활처럼 내가 말하고 싶었으나 말을 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그리고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져버린 수많은 나의 말들. 환희, 명랑, 축복, 낙원, 영원. 하지만 그래봤자 이 옥상의 어둠과 이불의 장막 뒤에 숨어서 혼자 외치는 것뿐이었다. 누구의 귀에도 다가갈 수 없는 말들이었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약점은 연약한 부분이라 당연히 상처 입기 쉽다. 상처받는 부위가 예민해지고 거기에서 방어를 위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 영역이 있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다. ...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나를 조종하고 휘두를 힘을 가진다. 우리는 장점의 도움으로 성취를 얻지만 약점의 만류로 인해 진정 원하던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긴다. 어쩔 수 없이 약점은 삶의 결핍과 박탈을 관장한다. 약자는 위로받기보다 차별이 없는 존중을 원한다.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게 아니라, 다수와는 다른 조건을 가졌을 뿐 동등한 존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맞은편 대열에서 응원을 보내기보다는 내 곁으로 와서 서는 것. “참되고 아름다운 문학은 작가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선 채로 서문을 세 번쯤 읽고 나서 그 책을 샀다. ‘참되고 아름다운’이란 표현 속에 깃든 씩씩한 희망과 순정함이 웬일인지 내 마음을 조금 아프게 만들었다. P.233 나를 지금의 인생으로 데려다 놓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시간 속에 스몄던 지속되지 않는 사소한 인연들. 그리고 삶이라는 기나긴 책무를 수행하도록 길들여진 수긍이라는 재능이었다. P. 281 = 불안전하고 뜨거웠던 시간을 돌아보는 애틋함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 열림원 그런데 그 외 나머지 말, 나머지 기억, 나머지 내 봄, 내 어둠, 당신의 계절은 모두 어디 갔을까. 어쩌면 그것들은 영영 사라진 게 아니라 라디오 전파처럼 에너지 형태로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다 드물게 주파수가 맞는 누군가의 가슴에 무사히 안착하고, 어긋나고, 보다 많은 경우 버려지고, 어느 때는 이렇게 최초 송출지로 돌아와 보낸 이의 이름을 다시 묻는 건지도. p.43 그 문학은 하나의 선을 편드는 문학이 아니라, 이제 막 사람들 앞에 선 당선자의 허영, 그 헛폼 안에서조차 삶의 이면을 비출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손들어주는,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문학이었다. 그 팔 안에서 나는 여전히 실수하고, 깨닫고, 배우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전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어리석어, 같은 실수를 다시 하며 살아간다. 말과 글의 힘 중 하나는 뭔가 '그럴' 때, 다만 '그렇다'라고만 말해도 마음이 괜찮아지는 신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팔이 많아 아름다운 문학을 이따금 상상하며 말이다. p.52 아는 이야기를 다 쓰면 그 다음엔 어떤 글을 지어야 하나 근심한 적이 있다. 바보같이 몸도 글도 한결같을 거라 생각하던 때의 일이다. 단어 하나가 몸을 완전히 통과한 후에는 그 전과 전혀 다른 뜻이 된다는 걸 몰랐다. 안다고 믿었던 말, 쉽게 끄덕인 말, 남몰래 버린 말....... 스러진 푯말을 따라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갈 때면 이따금 몹시 늙은 얼굴을 한 서사들이 멀찍이서 손짓하며 서 있기도 했다. p.124 언젠가 두보가 쓴 저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 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 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 문학동네 <지나가는 밤>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무료하고 긴 하루하루로 이어진 시간, 아무리 노래를 부르고 그네를 타도, 공상에 빠져 이야기를 지어내도, 자신들이 작가이고 감독이고 배우이고 관객인 연극을 해도,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거리까지 달려간다고 해도 메워지지 않았던 커다랗고 텅 빈, 그 무용한 시절을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P. 97 얼마를 기다리든 결국 엄마는 왔다.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 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기다림을 윤희는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P. 99 <모래로 지은 집> 모래는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나쁘게 보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전전긍긍하지 않고 애쓰지 않았다. 관대했다. 그 관대함은 더 가진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비싼 자동차나 좋은 집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P. 118 그때 나는 사랑이라는 말이 참 더럽다고 생각했어. 더러운 말이라고.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을 경멸하고 또 경멸할 거라고 다짐했어. 나는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 어쩌면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무서운 일이라고,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알리바이로 아무 짓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P. 156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스토리텔링 애니멀, 조너선 갓셜

스토리텔링 애니멀 조너선 갓셜 / 노승영 옮김 / 민음사 우리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관람하며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케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우리의 정신을 확장하거나, 인간 조건을 탐구하거나, 숭고한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뿅 가기 위해서이다. p.51 따라서 이 논리를 따르자면 우리가 이야기를 추구하는 것은 이야기를 즐기기 때문이지만, 이야기를 즐기도록 자연이 우리를 설계한 이유는 연습의 유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픽션은 인간의 문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데 특화된 아주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라는 것이다. p.85 꿈의 학문적 정의는 "서사 구조가 있는 감각 운동의 환각"이다. 꿈은 사실상 밤의 이야기이다. p.99 제임스 틸리 매슈스의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보듯 병든 마음은 감각을 복잡하게 짜 맞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 우리의 마음 또한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료로부터 의미를 추출해 내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편집성 정신 분열병 환자의 이야기처럼 극적으로 일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곧잘 일탈한다. 이것은 이야기하는 마음을 얻은 대가이다. p.126 이야기하는 마음은 중대한 진화적 적응이다. 그 덕에 우리는 사럼을 일관되고 질서 정연하고 의미있게 경험한다. 삶이 지독하고 소란스러운 혼란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마음은 완벽하지 않다. ... 이야기하는 마음은 의미 중독자이다. 이야기하는 마음은 세상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지 못하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려 든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는 마음은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때는 진짜 이야기를, 그럴 수 없을 때는 가짜 이야기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p.133 달리 말하자면, 미래처럼 과거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 다 마음속에서 창조한 환상이다. 미래는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릿속에서 돌리는 확률 시뮬레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심보선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심보선 / 문학동네 그러나 나는 글을 쓰면서 - 그것이 시건 혹은 논문이건 -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고 빠져드는 대상은 단순히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인간들의 탄식, 좌절, 환호성, 기쁨, 경탄이 어려 있는 세계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계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 세계와 연루된다는 것이고, 그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베버가 말하듯 삶과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으로 시작하여 고독한 작업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출발과 회귀 사이에는 고독한 여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몸과 영혼을 뜨겁게 하고, 내 가슴 속에서 말을 들끓게 하고, 나의 손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단순히 주제의 흥미로움이 아니라 바로 동시대인들의 삶이고 그 삶에 섞여드는 사물들의 동시대적 운동이다. p.08-09 그렇다. 결국 모든 것은 영혼의 문제여야 한다. ... 영혼은 행복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러나 영혼은 행복을 귀중한 선물처럼 안절부절 다루지 않는다. 영혼은 불행에게도 손을 건넨다. 그리하여 영혼은 불행과 행복의 차이를 지우고 그 둘을 동등하게 만든다. ... 영혼은 의미와 무의미를 같은 장소로 데려온다. 영혼은 '행복하지만 삶의 의미에 무지한 아이'와 '불행하지만 삶의 의미에 도통한 노인'을 합체시켜서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킨다. 영혼은 오늘 속으로 과거와 미래를 수렴시켜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한다. 영혼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새로워진다. ... 영혼은 어쩌면 허튼소리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허튼소리다. 영혼은 불가능성에 대한 가장 경이로운 역설이요, 가장 아름다운 역설이다. 이 수수께기 같은 영혼 때문에 나는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다. 영혼 때문에 나는 시를 쓰고 시를 산다. p.22 일상생활에서의 '깊이 생각함'일나, 느긋하게 산책을 할 때라면 한 송이 꽃을 보고도 쉽게 느낄 공통성의 기초를, 생존

경애의 마음, 김금희

경애의 마음 김금희 / 창비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가난과 폭력, 배신과 거짓말, 종교, 정치, 국적의 차이, 집안싸움, 부모 반대, 언니 또는 형의 반대, 동생의 반대, 베프나 은사의 반대 호근 기르는 고양이나 개의 반대, 윤리적 판단 - 불륜, 제삼자의 출현 - 같은 일종의 유형들이 있었다. 그렇게 소멸은 정확하고 슬픈 것이었다. p.35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진다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상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끝을 말하려면 지금 발밑에서 너풀거리며 나뒹구는 아이스크림 포장이나, 택시의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같이 눈앞에 지나가는 어떤 것도 아픔을 환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했다. 어떤 풍경도 산주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지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경애에게는 모든 것이 산주와 관련된 듯 느껴졌다. p.60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p.62 경애 엄마는 경애가 씻는 것,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누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그런. p.104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소년이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 한강/창비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p.45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p.85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114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

미 비포 유(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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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Me Before You, 2016 멜로/로맨스 미국 110분 2016 .06.01  개봉 테아 샤록 에밀리아 클라크 (루이자),  샘 클라플린 (윌 I don't want to go in yet.  I just want to be a man who's been to a concert with a girl in a red dress. You are scored on my heart, Clark. You were from the first day you walked in, with your ridiculous clothes and your bad jokes and your complete inability to ever hide a single thing you felt. You make me into someone I couldn't even imagine. You make me happy, even when you're awful, I would rather be with you-even the you that you seem to think is diminished-than with anyone else in the world. I have become a whole new person because of you. I though, briefly that I would never feel as intensely connected to the world, to another human being as I did at that moment. Live boldly. Push yourself. Don't settle. Just live well. Just LIVE. = 존엄사를 너무 가볍게 다룬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원작인 영화를 애초에 완벽하게

이웃집에 신이 산다(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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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 신이 산다 Le Tout Nouveau Testament, The Brand New Testament , 2015 코미디 벨기에 ,  프랑스 ,  룩셈부르크 115분 2015 .12.24  개봉 자코 반 도마엘 브누와 뽀엘부르드 (디유),  욜랜드 모로 (엄마),  까뜨린느 드뇌브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가 천국이에요. 아이는 커서 뭐가 되나요? 어른은 뭐가 되죠? 인생은 스케이트장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지지. 사람들마다 각자의 음악이 있어요. 오늘 내가 꿈을 만들어 줄게요. 삶은 내가 꿈꾼 대로 끝날 거야. 이런 행복은 상상도 못했어. = 인간에게 시련을 주는 신을 향한, 발칙하고 앙큼한 신성모독이다. 한번쯤은 궁금해했을 법한 것들을 지극히 동심의 눈으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뤘다. 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법한 신계와 인간계의 접점이나 현대 과학의 지독한 한계들 쯤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타고넘었다. 인간을 고난에 빠뜨리는 신의 카운터파트로 여성 신이 등장한 점도 흥미롭다. 그녀를 대신해 세상에 내려온 것도, 사도를 모으고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원한 것도 딸이다. 이런 점에서 꽤나 고전적인 구도의 여성주의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새로 연 세상의 알록달록한 꽃무늬 하늘, 선언적인 글귀 대신 백지 위의 간단한 삽화로 구성된 성서, 중력 없는 지상, 한계 없는 사랑. 이 모든 것들이 기존 질서와 다르기에 파격적으로 아름다웠다. '완전히 새로운 신약'이라는 원제를 그대로 가져오는게 좋았을 것 같다. 그리운 벨기에 땅의 구석구석을 이런식으로나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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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싸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 2004 드라마 미국 ,  독일 ,  영국 125분 2015 .07.02  재개봉,  2004 .11.12  개봉 월터 살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이 이렇게 그리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이토록 무참히도 짓밟아 버릴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들의 문명을 위해 이렇게까지. 우리의 시각이 너무 좁고 편향됐던 건 아닐까? 그래서 경솔하게 판단한 건 아닐까?  이번 여행은 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과거와 같은 난 없다.  매 순간 흔들려요. 남겨진 것들에 대한 울적함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흥분으로. 이번 여행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실체없는 분열이 완벽한 허구라는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아니야 알베르토, 무엇인가가 잘못됐어. = 위대한 혁명가 체게바라 이전의 청년. 그의 뜨거운 심장속에서 변화에 대한 열망이 발아하는 과정을 길 따라 덤덤하게 그려낸다. 평범할 수 있었던 의대생은 걸음걸음마다 스친 길들, 만난 사람들, 본 장면들, 겪은 경험들을 허투로 흘러보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온전히 품었다. 변화한 자신을 인지하고 행동함으로써 역사적인 혁명가가 된다. 그가 혁명가로 일어서는 부분은 영화에 담겨있지 않지만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가감없이 훌륭한 체게바라 전기의 프롤로그다. 휴가가 끝나갈무렵 이 영화를 본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남미 가고 싶어 죽을것같다. 젊은 그의 나날에 허락된 열정과 우정,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이 너무나도 부럽다.

웜바디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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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Warm Bodies, 2013 코미디 ,  공포 ,  멜로/로맨스 미국 96분 2013 .03.14  개봉 조나단 레빈 니콜라스 홀트 (알(R)),  테레사 팔머 (줄리),  존 말코비치 ( What am I doing with my life? I'm so pale. I should get out more. I should eat better.  My posture is terrible. I should stand up straighter.  People would respect me more if I stood up straighter. What's wrong with me?  I just want to connect. Why can't I connect with people? Oh, right, it's because I'm dead. I shouldn't be so hard on myself. I mean, we're all dead.  This girl is dead. That guy is dead. That guy in the corner is definitely dead.  Jesus these guys look awful. I don't wanna be this way. I'm lonely. I'm totally lost.  I mean, I'm literally lost. I've never been in this part of the airport before.  What's with all the vinyl? Couldn't figure out how to work an iPod? Better.. sound... Oh, you're a purist, huh? More... alive. Yep,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