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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보니 몸의 소리가 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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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보니 몸의 소리가 들리더라 나이 서른이 가까워 올 때 세대주가 됐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있는 ㄱ시와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ㅅ시에 두번째 직장을 얻게 된 덕분이었다. “딸, 굶어 죽는 거 아니니?” “쟤가 사람 사는 꼴을 갖추고 지낼 수나 있을까 몰라.” 신이 나서 부리나케 집을 구하고 번갯불에 콩 굽듯 이사를 마친 딸의 생존을,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그 우려들은 효력이 없어 보였다. 가족을 떠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고등학교 3년을 ㅇ시에서 보냈다. 스물두살에는 역시 학생용 공동주택이긴 했지만 유럽의 아기자기한 소도시에서 제법 건강하게 1년을 지냈다. 내게는 그 시간 동안 살아남은 기억이 있었다. 보란 듯이 잘 살아보겠다고 자신만만해했던 건 그래서였다. 독립은 몸까지 홀로 서는 것 내가 번 돈으로 내 이름을 건 공간에서 내 생활을 꾸려가는, 비로소 완전한 독립이었다. 독립기념일은 2017년 11월6일. 대출금으로 내가 빌린 것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편리, 그리고 자유였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구석구석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가 생기는 데서 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며칠간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자유 앞에 나는 맹세 같은 결심을 했다. 모든 여유를 오로지 나를 위하는 데 쓰기로 말이다. 첫번째 관리비 고지서가 날아오기도 전에 이것저것 많이도 벌였다. 중국어 학습지를 열심히 풀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책 읽는 모임에 가입하고, 수시로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글을 썼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시나브로 취하고 있었다. 혼자 사는 게 마냥 쉬울 리 없었다. 새로운 방식의 삶은 내가 머리와 가슴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때를 맞춰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다. 생필품과 식재료의 종과 양, 나의 잔고를 헤아려 장을 봐야 했다. 음식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해야 했으며, 아픈 몸도 직접 돌봐야만 했다. 모든 것이 당연했지만, 거의 처음이기에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