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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마음의 푸른상흔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 | 역자   권지현 | 소담출판사   | 2014.11.03 나는 지금 '그것'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아주 그럴듯한 이유로 나를 매료시켰던 삶이 가르쳐준 모순, 권태, 왜곡된 얼굴이다. ... 두려움은 아름답지 않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두려움을 몰랐는데. 이게 전부다. 하지만 그 '전부'가 끔찍하다. p.9~11 진심에서 우러나오기도 하고 무자비한 그로테스크함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그럴듯한 논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이고 모두 같은 신을 섬긴다. 그들이 부인하고자 하는 그 신은 단 하나, 바로 시간이다. 그러나 누가 프루스트를 읽는가? p.12 사실 내가 섬기는 유일한 우상, 유일한 신은 시간이다. 오직 시간만이 나에게 심오한 기쁨과 고통을 줄 수 있다. p.42 작가의 운명이란 이상한 것이다. 작가는 고삐를 바짝 쥐고 조화로운 걸음걸이에 허리도 꼿꼿이 세워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바람에 갈기를 흩날리며 문법, 통사론, 또는 게으림-이 최후의 거대한 울타리-같은 우스꽝스러운 도랑을 깡충깡충 뛰어넘는 미친 말을 타야 한다. 사람들이 작가라는 직업을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부를 때면, 손을 때려줄 상사도 없고, 성적을 매길 사람이 아무도, 정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자유란 근본적으로 우리가 훔치는 것일 뿐이라는 걸, 또 자유를 빼앗을 수 잇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이라는 걸 생각하면. 도둑맞은 도둑, 물세례받은 살수원,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p.79 세상 사람들이 가장 잘 나눠 가진 것은 상식이 아니라 감정이다. ... 상상력은 드물며,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또 사람들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다. 가진 사람도 가끔 있지만 절대 강제할 수 없는 것이 상상력이다. p.88 = 보물 같은 작가.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프랑스어 공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미셸 투르니에 (Michel Tournier) 민음사(2012) 주의력의 한계는 점점 깊어지는 동시에 좁아졌다. 이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골몰한 한 가지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 가는 일마저 점점 더 어려워졌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타인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강력한 주의력 전환 요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45 오직 과거만이 중요한 존재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다. 현재는 추억의 샘, 과거의 생산 공장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 산다는 것은 오직 그 값진 과거의 자산을 늘리기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죽음이 오는 것이었다. 죽음은 그 축적된 금광을 향유할 수 있는 순간에만 진정한 죽음이었다. 우리가 소란스러운 현재 속에서 보다 더 깊이 있게, 주의 깊게, 현명하게 감각적으로 삶을 음미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것이 주어진 것이다. p.50-51 글을 쓴다는 이 성스러운 행위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갑자기 지금까지 빠져 있었던 동물성의 심연으로부터 반쯤 헤어 나와 정신세계로 진입한 느낌이었다. ... 그에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그가 수치스럽게 여기고 잊어버리고자 하는 실수의 시절이 지나간 다음 이 섬에서의 진정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p.56 나의 상황은 미덕에 최대를, 악덕에 최소를 걸며 용기와 힘과 자기 긍정과 사물들에 대한 지배를 미덕이라고 부르기를 요구한다. 악덕은 포기와 체념, 즉 진창이다. 그것은 아마 기독교 저 너머 인간적 지혜의 고대적 비전으로 되돌아가서 오늘의 미덕(Vertu)에 고대의 덕성(Virtus)을 대체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어떤 기독교의 심저에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근원적 거부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스페란차에 대하여 그 거부를 지나치게 실천에 옮겼던 것인데 그것은 나의 멸망을 초래할 뻔했다. 반대로 나는 오직 이 섬을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