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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불안한가, 에바 일루즈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주권을 잃는다는 뜻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사랑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 빚어내는 고결한 열정의 직접적 경험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대 들어 자주권 상실은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다. 자아가 상대방의 의지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를 취하는 탓에 사랑이 자아 스스로 자율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써 자아에 흠집이 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는 태도가 빚어진다. 이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까닭은 자율성이야말로 현대인의 핵심적 특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p.63 상징적이든 물리적이든 폭력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면, 여기서 사랑은 그 폭력이 몸과 마음과 자아에 남긴 것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되돌리고, 철학자 사이먼 메이가 '존재론적 닻 내림'ontological groundedness이라 부른 것을  중개해준다. 이는 곧 적막하기만 한 세상에서 나만의 가정을 찾아냈다는 느낌이다. p.74-75 사랑은 지성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가장 괴이한 모순이라고 헤겔은 썼다.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긍정을 이뤄내는 이 극한 모순은 그러나 고맙게도 불합리와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비춰진 유일한 구원의 빛이다. 나를 넘어서서 남에게 손을 내밀어 우리를 이뤄내는, 이 부정과 긍정의 '종합, 진테제synthese'야말로 '하나 됨'을 실현하는 사랑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헤겔이 사랑이라는 모순의 본격적 풀이를 철학이 최고 과제로 삼은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p.116 = 솔직히 말하면 분석 되상이 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읽지 않아서 원론적인 내용을 서술한 부분들에밖에 공감을 던지지 못하겠다. 똑똑한 사람 참 많다. 이런 분석을 끌어내는 글이라면 로맨스 소설일지라도 한번쯤 읽어볼만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