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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Der Dooppelganger, Jose Saramago (해냄) 하지만 사람들이 개를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하는 것처럼, 질서와 순서도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비록 질서와 순서도 개처럼 가끔 사람을 물기도 하지만 말이다. p.71 일초, 일초 시간이 흐를 때마다 문이 열려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이 앞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방금 한 말의 모순적인 본질에 맞서자면, 미래는 그저 광대한 허공일 뿐이며 영원한 현재의 먹이가 되는 시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p.291 그러면 그의 아내가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당신한테는 적이 하나도 없는데. 안토니오 클라로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대신 적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적은 적을 갖겠다는 우리의 의지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를 갖겠다는 적 자신의 저항할 수 없는 욕망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p.313 = 실존에 예상치 못한 위협이 들이닥쳤을 때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믿음이 주는 위안은 얼마나 큰지.

28, 정유정

링고는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그것은 자신의 전부를 걸어 어느 순간에 집중하게 한다는 점에서 욕망이고, 느낌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육감이며, 충동을 누르고 때를 기다리게 한다는 점에선 자기명령이었다. p.43 그녀는 움켜쥔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겼다. 목이 답답해왔다. 하고 싶은 말이 목젖 밑에서 신물처럼 솟구쳤다.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p.346 = 흡입력 하나 대단하다. 정말이지 문장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뭔가 전에 그려보지 않은 소재와 시선이 주는 생경한 충격에 완전히 압도당한 기분이랄까. 다 읽은 뒤에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다시 못꿀 것 같은 해괴한 개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