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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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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날개로 날아와 한동안 머물던 너를 버스에 데리고 탈 수는 없어서 황급히 쫓아보냈네 여름이 끝나버렸네 2019. 08. 31.

새해

그 시절의 우리와, 우리가 그리던 미래는 이제 없다. 그런데 당신이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시작했다. 나는 슬퍼졌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The Course of Love) 알랭 드 보통/김한영 옮김/은행나무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p.16 러브스토리는 누군가 우리를 다시는 보지 않으려 할까 봐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항상 보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그들이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을 때가 아니라 평생 서로의 포로가 되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나눌 때이다. ...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p.27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입술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마치 뜻 모를 밤의 언어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다. p.44 쾌청한 밤에 온 우주가 그들을 맞으러 내려왔다. 그녀는 안드로메다자리를 가리킨다. 비행기 한 대가 에든버러 성 위를 넘어 착륙을 위해 공항으로 직행한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이 사람이 함께 늙어가고 싶은 여자란 느낌이 확실해진다. p.59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p.116 두 사람 모두 친밀해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마음이 아플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어떤 결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들은 결코 분개할 필요가 없으며, 계속해서 서로를 좋은 마음으로 생각할 것이다. 미래가 없는 사람들만이 그럴 수 있듯이. p.209 결혼: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대단히 기이하고 궁극적으로 불친절한 행위. p.237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

강남역 10번 출구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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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와 '여성' 한겨레 강남역 살인사건이 뜻밖의 양상으로 치닫고있다. 뚯밖이 아니라 어쩌면 예견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으로 본격화된 여혐, 여혐혐, 남혐 등이 음지라면 음지일 온라인상에서 폭발적으로 과열되면서 분출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회원들, 극성 페미니스트들의 논쟁이 아니라 모든 여성 개개인이 짊어진 문제라는 점을 상기할만 계기가 있어야했다. 이 기형적인 젠더 담론이 액션으로 체화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다음 단계'였다. 이 단계를 겪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평소 유보해왔던 '여성주의'나 '젠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기엔 아주 알맞은 때라는 확신이 생겨 되는대로 정리해본다. 우선 그동안 용어의 모호함이 갈등을 증폭시켜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논쟁의 한가운데 선 단어는 '여성혐오 (여혐)'이다. 우리말 '혐오'가 주는 특유의 의미에다가 일베와 메갈리아의 대결 구도 속에서 '여혐'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본래 뜻보다도 거북한 대상으로 여겨졌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함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사건을 다루면서만큼은 ' Misogyny '라는 영어 단어로 대신해봤으면 한다. Misogyny는 여성에 대한 혐오, 증오는 물론 차별, 비하같은 보다 넓은 범위의 개념을 내포한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대하지 않고 객체로 여기는데서 비롯되는 모든 불합리와 사소한 습관,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폭력, 가부장주의 등이 모두 해당한다. "'김여사'가 차를 몰고 나왔다", "어디 여자가 함부로 나서", "선머슴같고 여성스럽지 못해", "조신하지 못한 옷차림을 하면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딸이 해야지", &q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 아이들이 있었다. 열두살 난 소년부터 서너살배기 꼬마까지 네 명. 아버지가 다른 남매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비밀 그 자체다. 공식적으로 태어난 적이 없어서다. 사랑이 끝나고 짐짝처럼 아이가 남겨지는 일이 반복됐다. 혼인신고도, 출생신고도 없이 남자들이 떠난 뒤 남은 엄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거짓말 뿐이었다. 그녀는 비밀리에 꽁꽁 감춰 아이들을 길러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가족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엄마가 편지와 약간의 돈만 남긴채 아이들을 떠나면서부터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돌아오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두려웠고 외로웠고 배고팠고 힘겨웠지만 저마다의 동심을 발휘하며 끝까지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을 견디기에는 그 노력이 너무 연약했던걸까. 결국 막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작 영화 '아무도 모른다' 얘기다. 먹먹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정지된 화면에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복잡한 심경을 굳이 한갈래로 정리하면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가 있었고 그게 영화보다 더했다는 사실이 충격을 배가시켰다. 1988년 도쿄에서 발생한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 엄마가 비밀리에 기르던 아이들 중 차남이 병사했는데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에 대한 매장 허가가 나올 리 없었다. 그녀는 죽은 아이를 비닐에 싸서 악취제거제와 함께 벽장 속에 넣었다. 그걸 보고 자란 장남이 훗날 죽은 동생을 비슷하게 암매장했다가 적발된다. 이 가족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러 감정이 뒤엉킨 충격은 불안으로 구체화됐다. 모성이 본능은 아닐지도 모른다는데서 시작된 불안이었다. 낯설지는 않았다. 수년전 린 램지의 영화 '케빈에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2011)'를 봤을 때도 한차례 겪었으니까. 우리는 알게모르게 모성애가 여성에게 내재된 본능적인

어느 대기업이 노동취약계층을 평가하는 방식

지난달 18일과 이달 14일 각각 다른 지점에서 스마트폰 수리를 받았다. 2월에는 액정을 바꾸느라 돈이 좀 들었지만 기기내부 청소 같은 걸 서비스로 받았다. 엊그제는 통화 품질 때문에 갔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신 후면 카메라 유리를 교체하고 액정보호필름까지 부착해줬다. 모두 무료였다.  당일 저녁마다 수리기사로부터 장문의 문자메세지가 왔다. 기기에 문제가 없는지 수리하면서 불편한 건 없었는지 물었다. 휴대폰 관리를 위한 팁과 환절기 건강 챙기라는 따듯한 인사도 함께였다. 혹시 본사에서 만족도 조사 전화가 오면 잘 대답해 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내가 모두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을 준 것은 분명 그런 당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번 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그 문을 다시 나설때까지 훌륭한 서비스를 받았다. 고마웠고 만족스러웠다. 과분한 친절이었다. 기술자들이 생계를 위해 떠안은 감정노동이 버거워보이기도 했다.  오늘 본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2월 18일에 대한 거였다. 10점을 내리 불렀다. 혹시 수리기사가 평가를 잘 해달라고 했냐는 게 마지막 질문이었다. 대답하고 나서야 정답이 있는건가 해서 아차 싶었다. 이런 부탁을 한 사실로 기사님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할 일을 안하고 고객을 협박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규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애초에 저런 규정이 있었는지, 생겼다 한들 저들이 직원들에게 과연 공지라도 했을지 못미덥다. 유도심문을 당한 것 같아 불쾌하다. 속상하고 미안하다. 생업에 최선을 다한 기사님이 나때문에 안 좋은 일을 당할까봐. 무심하게 훑어넘겼던 기사 여러개가 떠오른다. 이 기업이 노동자를 부품 쯤으로 여기는 걸로 악명높은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 화가 난다. 내가 이따금씩 사소한 일에도 몸서리치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기까지 삼성전자라고 말 안했다. 그래도 모두가 알 테니까. 다음엔 절대 갤럭시 안 산다. http://m.me

환절기

여름에서 가을로, 네게서 내게로. 1. 여름이 꺾이는 광경을 봤다. 나는 막이 내리는 여름의 잔해를 눈으로 좇으며 잰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변하는 것에 대한 예의를 갖출 여유가 행인에게는 없다. 때맞춰 계절을 주입하는 사거리 빌딩에는 먼 이국 시인의 글귀가 걸렸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2. 하루 전에는 내 안에서 우주 하나가 산산히 부서졌다. 비로소 이별이었다. 걸음마다 헤어짐을 되새기며 주말 늦은 밤 지하철역을 무거운 걸음으로 내달렸다. 그동안 약간의 상처와 약간의 후회와 약간의 분노와 약간의 미련이 멋대로 뒤엉켰다. 설익은 감정들은 제각기 자리를 찾기 위해 내 좁은 맘 속을 헤맸다. 3. 가장 먼저 상실을 지우려 든 건 당사자들과 무관한, 조금은 사소한 존재였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앞선 여자에게 붙어있던 무당벌레. 조그맣고 새빨간 게 주황색 후드 티셔츠 모자 아래서 나타났다. 꽤나 분주하게 여자의 등부터 목과 머리 사이사이를 오갔지만 그녀는 기척이 없었다. 무당벌레가 꼭 내 모습 같았다. 눈물이 맺혔다.

바닥

바닥 아래엔 또 바닥이 있을까.

슬럼프

장황하고 두서없는 헛소리. 술은 늘 글을 부른다. 1 이처럼 모든게 어렵게 느껴진 시절은 없었다.견줄 만한 때를 꼽으라면 고3 봄 첫사랑과 헤어졌을 그 시간들이려나. 너무 어렸던 나는 어디선가 주워본대로 멍청하게 소주병 나발을 불고 전봇대를 들이받아보기도 했다. 여기저기 기대어 꺽꺽 울며 별의 별 진상과 추태를 다 부려봤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깊이의 관계였지만 열여덟의 나에겐 그가 평생에 한번 만날 법한 소울메이트로 느껴졌기에 그 분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한편으론 대입이 삶의 전부처럼 왜곡돼 보이던 그 나이의 나에겐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고 있는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한심하기도 했다. 지금은 되려 그때의 미숙한 순수가 스스로 귀여워 보이거나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그 사이 8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내게는 그 나날만큼 켜켜이 굳은 살이 배겼다. 좀 더 중요한 일들이라던지 그래도 끝내 챙겨야만하는 의무랄 게 생겼다. 스물다섯의 나는 지난 사랑이 한낱 몇 병 술따위론 씻겨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슬픈 노래 가사의 클리셰들을 경험으로 체득했고 습관처럼 듣는 그 노래들이 결코 상한 마음을 치유하진 못한단 점을 안다.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기에 숱한 상처를 봉합하는 일은 시간과 망각의 일이란 것을 안다. 방금 나를 떠나간 사람이, 혹은 내가 방금 떠나온 사람이 생의 마지막 인연은 아닐거라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무던해지기 위한 사투를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든다. 지나간 사랑을 넘어설 마음을 일으키지 못할까봐 겁에 질린다. 그런 나를 상대가 우습게 알까봐 두려워 가슴속은 곪아든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어른이 되는 괴로움은 거기서 시작된다. 2 모든게 엉망진창으로 변한 채 연휴가 끝났다. 오랜 벗들을 만나 사는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 길, 사람들은 늦은밤 막차의 빈틈을 빼곡히 메웠다. 그리고 문득 이 모두가 어느 수준 이상의 책임을 수반한 사랑의 결실들이라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담당자

기자가 되고 가장 반가웠던 소식중 하나는 무제한 무료통화제의 탄생이었다. 그만큼 전화를 달고 사는 직업이다. 전화벨이, 진동이 반갑지 않은 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기자 일을 그만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이 울릴때 누굴까 기대하며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아무튼 전화랑 기자는 애증의 관계다. 하루에 '적게는 15통'의 전화를 주고받는다. 오늘은 특별히 전화를 '신나게' 건 날이었다. 마감하고 통화 내역을 살펴보니 총 67통을 걸고 10통을 받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의 일이다. 전화 취재를 하다 보면 늘 소리지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대체 망할 담당자가 누구야!!!!!!!!!!!!!!!!!!!!!!!!!!!!!!!!!!!" 라고 말이다. 분명 홈페이지에서 애써 담당자 찾아가며 전화를 걸었건만 한번에 통화가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흔히 반응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제가 전화를 당겨 받아서요 돌려 드리겠습니다. 2. 담당자가 지금 회의중이라서요, 3. 담당자가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데요, 4.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전화 돌려 드리겠습니다. 1-> 돌려 드린다더니 전화 뚝 끊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2-> 담당자는 하루 종일 회의만 한다. 3-> 담당자는 전화 걸 때마다 방금 나가셨다. 4-> 전화 돌려 받은 사람도 담당자는 아니다. 늘 이런 식의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원하는 대답의 절반 쯤을 들을 수 있다. 내 취재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놈의 담당자는 야속하기만 하다. 오늘도 정체모를 담당자를 찾아 하루 종일 전화를 걸었다. 했던 말을 스무번쯤 반복하려니 이골이 났다. 앞부분은 녹음해뒀다가 틀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내일도 내 불굴의 통화의지와 그들 발언의 조각들이 모여 한편의 기사로 거듭나길 바랄 뿐. 이제 마포로 가서 동기들과 저녁 번개를 즐겨야겠다.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