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14의 게시물 표시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에, 우리는 잔인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스피노자도 잔학함과 잔인함 속에는 사랑의 감정이 깔려 있다는 것에 주목했던 것이다. p.172 = 강신주가 자신의 문장으로 직접 쓴 부분중에 유일하게 맘에 담고 싶었던 건 저 두문장 뿐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이렇게 내게 홀대받기도 쉽지 않다.  전반적으로 오만방자하다.  작가는 스피노자의 입을 빌려 48가지 감정을 정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정의와 설명, 감정에 대한 태도, 그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분석이 철학자의 열린 사고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편협하고 고압적이었다. 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도 제시하지 못했다. 애초에 '감정수업'이라는 제목 자체가 모순적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감정은 학습보다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적어도 그랬다. 몇장 넘기다 말고 때려치고 싶었지만 끝가지 읽는 자에게 비판할 권리도 주어진다는 믿음으로 읽었다.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제프 페럴

물건을 버리는 사람들은 버리는 물건 자체를 통해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표식을 남기게 된다. p.71 결과적으로 한때 쓰레기로 버려진 물건들 때문에 길거리의 또 다른 세계는 물질문화의 풍요로움을 맛보게 된다. 수천 개의 쇼핑몰과 전통물품 상점, 소매점 등에서 끊임없이 배출되는 쓰레기가 바로 이 세계에 정착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의 물질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p.90-91 누군가의 잊힌 인생처럼, 쓰레기를 수집하다 보면 많은 잊힌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세계의 모든 버려진 것들은 주인의 삶 가운데서 어느 날 문득 튀어나와 그 삶의 속도와 패턴에 대해 말해주곤 한다. p.159 도시의 특권츠과 가난한 사람들이 만나는 뒷골목과 쓰레기통들은 여전히 열려 있는 물질의 경계선이다. 비록 완전히 열려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상대적으로 꽉 막힌 종교적 자비심이나 정부 기관들의 소심함에 비한다면 쓰레기통과 쓰레기더미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롭게 상호간의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p.303-304 버려진 옷이나 깡통이 어디에 있는지, 매일매일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온통 관심을 쏟게 되는 길거리의 세계는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깊은 대안적 의미의 세상을 품고 있다. 내가 그렇게 살았듯, 그 세계에서 노동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에 결쳐 이루어진 오늘날의 소비문화를 무너뜨리는 작업에 동참하는 것이며, 법과 범죄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며, 시간과 공간, 정체성의 현실성을 되돌아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p.341 = 우리가 배출하는 쓰레기는 우리가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는 것들보다 우리를 더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성란의 '곰팡이꽃'이 마냥 허무맹랑한 얘기로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도 그때문이다. 선뜻 나서 새로운 문화에 뛰어든 작가에게 박수를.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이 인공의 생태,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기사로 다뤄 볼 방법은 없을까. 폐지 모으는 노인들이 단가 하락으로 애를 먹고 있다던가,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네 마음 속으로 그 어떤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해도 너는 언제나 너일 뿐, 그 손님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네 마음 속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꺼이 맞이하기를. 그가 어떤 사람이든 화를 내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말기를. p.9-10 언젠가도 그렇게 쓴 적이 있는데, 열망을 열망하고 연애를 연애하고 절망을 절망하던 시절이었죠.원하는 현실 대부분은 저 멀리, 아주 멀리 있었어요. 심지어 절망마저도. 그래서 진짜 절망하는 것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p.46 우리가 믿는 것들은 대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환상일 가능성이 많다. 또 우리는 무지하지 않은데, 정치인 등이 우리를 오해하게 만들어 환상을 보게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런 환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소설을 썼다고 할 수 있다. p.62 이야기라는 건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납득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p.69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만 관심이 갈 뿐이다. 짐작과는 다른 일들,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만이 나의 관심을 끈다. 스무살 이후로 내게 삶이란 그런 일들만을 모아놓은 상점 같았다. ... 대체적으로 삶이란 짐작과는 다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는 삶을 추측하는 일을 그만뒀다. 삶이란 추측되지 않았다. 그냥 일어날 뿐이었다. 소설은 그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따져보는 일이다. 짐작과 달랐던 일들의 의미를 나와 당신이 함께 납득해가는 과정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 당신이나 내게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혹은 진심으로 기뻐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당신과 내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당신이나 나나 이제 다른 존재가 돼 살아가겠지만, 그 일들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p.100-101 봄날은 지나간다고 말할 때는 이미 봄날이 다 지나간 뒤다. 어제 피었다가 오늘 저녁에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지나가는 봄날은 자취 없고 가뭇없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