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6의 게시물 표시

초고

낯선 사랑방과 뜻밖의 대화 2014년 가을이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다코야키를 파는 푸드 트럭이 나타났다. 홍등을 주렁주렁 매단 이 작은 트럭 주인은 삼십대 중반이 될까 말까한 청년이었다. 그는 다코야키 4개를 1000원에 팔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트럭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저녁 어스름이면 자리를 정리하는가 싶더니 더러는 매일 해가 넘어간 뒤까지 등을 밝히고 손님을 맞았다. 한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내가 스무 해를 보낸 이 동네는 신도시도 구도시도 아닌 서울 외곽의 베드타운이다. 붐비지도 않고 적적하지도 않은 상태로 별다른 변화 없이 늘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 푸드 트럭을 몰고 홀연히 나타나 타코야끼를 파는 젊은 남자는 분명 꽤나 낯선 존재였다. 조금은 아련하기도 했다. 한때 자리를 지키던 달고나, 국화빵 같은 노점상들이 유년의 기억과 함께 자취를 감춘 지도 오래였기 때문이리라. 타코야끼 맛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말했다. “젊은 사람이 열심인거 같아 눈여겨봤는데 장사가 제법 잘 되는 모양이야.”  장사는 지나치게 잘 됐다. 트럭 앞에는 자주 긴 줄이 늘어섰다. 그보다 눈길을 끄는 건 트럭을 둘러싼 훈기였다. “학원가니? 오늘 늦었네!” 잰 손으로 타코야끼를 만들던 청년이 목청껏 이름을 불렀다.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곁을 지나치던 아이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가 이름을 부르는 아이는 한둘이 아니었다. “여덟 개 해주세요. 10분 뒤에 들를게요.” 장 보러 가던 아주머니 ‘예약’에는 잔뜩 신난 청년의 목소리가 뒤따르기도 했다. 줄을 기다리는 손님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 장면들이 집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을 때때로 멈추게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트럭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동네 사랑방이 돼 있었다.  그해 겨울이 돼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알 수 없는 따듯함의 뿌리를 봤다.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 늦은 오후였다. 청년은 둘 뿐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념이 없었다.

2016, 스물여덟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 고린도후서 8:7 But since you excel in everything —in faith, in speech, in knowledge, in complete earnestness  and in the love we have kindled in you  —see that you also excel in this grace of giving. 2 Corinthians 8:7 Mais comme vous abondez en toutes choses:  en foi, et en parole, et en connaissance, et en toute diligence,  et dans votre amour envers nous,  -que vous abondiez aussi dans cette grâce. 2 Corinthiens 8:7 아주 오랜 시간, 엄청난 오해를 했다. 미련한 믿음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둘러보니 원치 않던 방식으로 어른이 돼 있었다. 후회는 없다. 매 순간 나는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그 하루하루의 나 자신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 그럼 된 거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죽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봤다.  이제 용서와 망각만 하면 될 일이다. 그게 지난하고 괴로운 과정이겠지만 나는 끝내 무뎌짐으로서 하나의 우주를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새해, 더 무거워지겠다. 쉽게 흔들리지도, 휘둘리지도, 붙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더 단단해지겠다. 쉽게 앓지도, 잃지도, 울지도 않을 것이다. 숱한 거짓 가운데서 참을 가려낼수 있는 지혜를 신께 구할 것이다. 의미있는 일과 가치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거기 몰두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