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 민음사




"다만 어느 날 문득, '왜?' 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라는 말은 중요하다.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이 끝날 때 느껴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나는 이 권태가 좋은 것이라고 결론지어야겠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의식에 의해 시작되며 그 어떤 것도 의식을 통해서만 가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전혀 독창적일 것이 없지만 명백하다. 부조리의 기원을 간략하게 인식해 보는 기회는 당분간 이것으로 충분하다. 단순한 '관심'이 모든 것의 기원인 것이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내려가면 나타나는 것이 낯섦이다. 즉, 세계가 '두껍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한 개의 돌이 얼마나 낯선 것이며 우리에게 얼마나 완강하게 닫혀 있는가를, 그리고 자연이, 하나의 풍경이 얼마만큼 고집스럽게 우리를 부정할 수 있는가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의 밑바닥에는 비인간적인 그 무엇이 가로놓여 있다."

"이성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지만 그것은 또한 신을 향해서 돌아설 줄도 안다.
...
이성은 사유의 도구이지 사유 자체는 아니다. 한 인간의 사유란 무엇보다 먼저 그의 향수이다."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만 안겨주는 세계의 절연, 통일에의 향수, 지리멸렬의 우주 그리고 그 양자를 한데 비끄러매 놓는 모순이 바로 부조리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가 상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확실성이다. 즉 그는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은 것이다."

"바닥 없는 이 확실성 속으로 빠져드는 것, 이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확실히 느낌으로써 그 삶을 확장시키고,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근시안이 되지 않고 삶을 관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떤 해방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독립은 모든 행동의 자유가 다 그렇듯이 기한부다. 그것은 영원을 담보로 한 수표를 끊지 않는다. 그러나 독립은 자유의 환상들을 대신한다. 그 환상들은 모두 죽음 앞에서 무효가 되고 만다."

"'기도는 생각 위로 밤이 올 때 하는 것이다.'라고 알랭은 말한다. 이에 대하여 신비주의자들과 실존주의자들은 대답한다. '그러나 정신은 밤을 만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감은 눈 밑에서 오직 인간의 의지에 의해 생겨나는 밤, 정신이 그 속으로 빠져들기 위해 불러일으키는 캄캄하고 닫힌 밤은 아니다. 만약 정신이 밤을 만나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맑은 정신을 간직한 절망의 밤, 극지의 밤, 정신이 깨어 있는 밤, 하나하나의 대상이 지성의 불빛 속에서 또렷이 보이는 희고도 때 묻지 않은 광명이 비쳐 올 밤이어야 한다."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한 인간이란 실제로 어떤 인간인가? 영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영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다."

"이렇듯 뭇 세기와 뭇 정신을 편력하고, 있을 수도 있는 모습의 인간 그리고 실제 모습 그대로의 인간을 모방하다 보면 배우는 여행자라는 또 하나의 부조리한 인물과 합류한다.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무언가를 소진하며 끊임없이 편력한다. 그는 시간의 나그네요, 최상의 경우 숱한 영혼을 편력하며 쫓기는 여행자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단 하나의 진리라도 명백한 것이기만 하다면 그것을 삶의 지표로 삶기에 족하다.
...
한 인간은 그가 말하는 것들에 의해서보다 침묵하는 것들에 의해서 한결 더 인간이다."

<부조리한 인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소설적 창조는 사랑에서 맛볼 수 있는 최초의 경이와 풍요로운 반추의 매혹을 지닌다."

<부조리한 창조>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은 침묵한다. 문득 본연의 침묵으로 되돌아간 우주 안에서 경이에 찬 작은 목소리들이 대지로부터 무수히 솟아오른다. 은밀하고 무의식적인 부름이며 모든 얼굴의 초대인 그것들은 승리의 필연적인 이면이요, 대가다. 그림자 없는 햇빛이란 없기에 밤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부조리한 인간의 대답은 긍정이며 그의 노력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운명은 있어도 인간을 능가하는 운명이란 없다. 혹 있다면 오직 그가 숙명적이기에 경멸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단 한 가지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것들에 관한 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시지프 신화>



=

존재하고자 안간힘을 썼던 지적 사투의 전장.
아끼는 사람들에게, 특히 기꺼이 골머리 앓길 즐기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응원하는 배우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데 닿을 길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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