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15의 게시물 표시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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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Der Vampir auf der Couch, Therapy for a Vampire, 2014 코미디/오스트리아+스위스/87분 감독: 다비드 륌 출연: 토비아스 모레티, 제넷 하인, 코넬리아 이반칸 = 밤을 걷는 뱀파이어소녀에 앞서 본 뱀파이어물. 보다 유쾌한 분위기다 . 독일어 특유의 울림과 발성도 좋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위트도 마음에 든다. 권태기에 신경쇠약을 겪는 뱀파이어라니! 신선한 발상이 돋보였다. 뱀파이어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웃음포인트들이 있다. 심장에 말뚝이 박히면 박멸된다거나, 초대를 해야만 문턱을 넘을 수 있다거나, 피만 빨리고 심장을 잃지 않으면 뱀파이어가 된다거나 등등등.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이 더러 있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수준이다. 여름밤에 걸맞는 유쾌한 영화였다.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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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A Girl Walks Home Alone at Night , 2014 미국/101분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 출연: 셰일라 밴드(소녀), 아라쉬 미란디(아라쉬) = 뱀파이어물을 좋아한다. 고전부터 현대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흡혈귀 나오는 컨텐츠란 컨텐츠는 다 섭렵했다. 대학 졸업논문도 드라큘라로 썼다. 교환학생 가서도 고딕 문학 석사 과정을 열심히 들었다. 이 계통의 문학이 주는 대중적이면서도 심오한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 그저 그런 스릴러와는 다른 원형이라는 걸 파면 팔수록 알 수 있다. 대개 현대의 뱀파이어물들은 심미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렛미인,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등등. 뱀파이어의 키워드를 단 하나로 추리라면 '매혹'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역시 시종일관 아름다움을 위해 달린다. 미쟝센의, 미쟝센을 위한, 미쟝센에 대한 영화랄까. 정체 불명의 중동 도시, 밤마다 짙게 화장을 하고, 히잡을 둘러쓴 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록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미소녀 뱀파이어라니. 전에 없던 조합이며 생경하고 이국적인 끌림이다. 눈가 귀만을 위한 101분이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간다. 미쟝센이 주제고, 스토리는 치장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맹탕이라고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이 자체로 관객을 매혹시키기엔 충분하다고 본다. '착한 아이가 되라'는 강렬한 대사. 여성들을 향한 미지의 연대. 여성의 '적'으로 그려지는 남성에 대한 처벌. 어떤 측면에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담긴 것도 같다. 아무튼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베테랑(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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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Veteran, 2015  123분, 2015년 8월 5일 개봉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서도철), 유아인(조태오), 유해진(최상무) #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가오 떨어지는 짓 좀 하지 말자. # 나한테 이러고 뒷감당 할 수 있겠어요? # 내가 죄 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 = 류승완의 모든 것이 담긴 영화. 쉴틈없이 몰아치는 스토리와 액션이 딴 생각 할 틈을 주지 않는다. 클리셰들의 집합이지만 그 집합이 더할 나위 없는 짜임새를 갖췄다는 점에서 장르영화의 끝판왕에 가까운 완성도에 이르렀다. 황정민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유아인의 스크린 장악력에 감탄, 또 감탄. 조태오 그 자체를 연기했다. 이제 유아인 보면 무서울 것 같다. 어이없다고 후려칠까봐. 기고만장한 이야기들이지만 모두 대한민국 재벌들이 실제로 저질렀던 악행들이다. 우린 영화보다 영화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경찰다운 경찰들이 나온단 점에서 갓 경찰 기자를 벗어난 내게 일견 뿌듯한 영화였다. 관련 취재에 충실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곳곳을 채운다. 이제 이런 영화 보면서 동질감 느끼지 말아야지. 난 탈사슴했으니까.

뷰티 인사이드(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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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   The Beauty Inside , 2015 한국/ 127분/ 2015년 8월 20일 개봉 감독 백감독 출연 한효주, 박서준, 이진욱, 유연석, 우에노주리, 고아성, 천우희, 박신혜, 서강준, 이동욱, 김주혁, 문숙, 이동휘, 이경영, 이미도 # 오늘은, 여기까지. # 오늘 만났던 여자를 내일도, 다음주도, 다음달에도 만날 수 있다는 건 내겐 기적같은 일이었다. # 그 사람이랑 어딜 가서 뭘 했는지는 기억이 생생한데, 그 사람 얼굴이 기억이 안 나. #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 같지만,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망치기도 한다. # 어제의 나는 과연 오늘과 같을까. 변한 건 그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 내가 내 사랑에 눈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뿐. = 길고 긴 CF를 본 기분.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을 굳이 꼽으라면 '아름다움'에 가깝다. 하지만 어딘가 미숙한 아름다움이랄까. 기본적으로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와 영화의 표면이 충돌한다는 점에서 의도했던만큼의 감동을 자아내지 못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주인공은 유독 아름답게 찍힌 한효주다. 주인공 우진과의 관계 진전 역시 우진이 아름다운 모습을 했을때(박서준, 이진욱, 유연석 등등)만 이뤄진다. 그래서 영화가 스스로 만든 벽을 깨지 못했다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의 본질과 내면의 힘 등 어떤 원초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을 남겨줬다는 점에선 신선했다. 배우의 등장으로 관객석이 방청석으로 바뀌는 경험도 오랜만에 했다. 이진욱이 등장하는 그 찰나, 사방의 남녀노소가 저마다의 탄식을 토해내는 장관을..

사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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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The Throne , 2014 감독: 이준익 출연: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공자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말단을 보지 말고 마음을 보라고. 저는 그날 아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였소. # 어찌하여 너와 나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단 말이냐 나는 자식을 죽인 임금으로 기록될 것이다. 너는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 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세손이 산다. = 아비 복은 없어도 자식 복은 있었던 어느 불행한 왕자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 광인으로 묘사된 사도세자라는 인물의 기구한 삶, 그 역사적 공백을 부자지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빼곡히 채웠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기보다 왕이어야만 했고, 아들은 왕자이기 이전에 아들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비단 왕실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날의 숱한 부자지간과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건 어떤 전통 같은 가부장적 요소가 아직도 우리네 삶 속에 흐르기 때문일까. 미술 하고 싶은 아들 서울대 의대 보내려다 잡는 이야기라는 농담이 마냥 농담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영화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서로를 향한 부자지간의 광기를 마냥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다. 누가 먼저 엇나갔는지 애써 탓할 필요도 없다. 가정사는 곧 시대적 비극이 되고, 시대사가 곧 한 가족의 비극이 된다. 그게 '관계'에 대한 이 영화의 치밀한 구조이자 포용이다. 송강호의 아우라에 눌리지 않는 유아인의 연기 신공이 스크린을 압도한다. 반올림 시절만 해도 이정도의 거물 배우로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베테랑에 이어 사도에서도 올 한해 한국 영화의

환절기

여름에서 가을로, 네게서 내게로. 1. 여름이 꺾이는 광경을 봤다. 나는 막이 내리는 여름의 잔해를 눈으로 좇으며 잰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변하는 것에 대한 예의를 갖출 여유가 행인에게는 없다. 때맞춰 계절을 주입하는 사거리 빌딩에는 먼 이국 시인의 글귀가 걸렸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2. 하루 전에는 내 안에서 우주 하나가 산산히 부서졌다. 비로소 이별이었다. 걸음마다 헤어짐을 되새기며 주말 늦은 밤 지하철역을 무거운 걸음으로 내달렸다. 그동안 약간의 상처와 약간의 후회와 약간의 분노와 약간의 미련이 멋대로 뒤엉켰다. 설익은 감정들은 제각기 자리를 찾기 위해 내 좁은 맘 속을 헤맸다. 3. 가장 먼저 상실을 지우려 든 건 당사자들과 무관한, 조금은 사소한 존재였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앞선 여자에게 붙어있던 무당벌레. 조그맣고 새빨간 게 주황색 후드 티셔츠 모자 아래서 나타났다. 꽤나 분주하게 여자의 등부터 목과 머리 사이사이를 오갔지만 그녀는 기척이 없었다. 무당벌레가 꼭 내 모습 같았다. 눈물이 맺혔다.

암살(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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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Assassination, 2015 최동훈 전지현 (안옥윤),  이정재 (염석진),  하정우 (하와이 피스톨) # -작전은 5분 안에 끝내고 우린 살아서 돌아갑니다 # -매국노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 #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 # -마지막 통화가 될 것 같네요. 꼭 성공하세요. #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 #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 지 몰랐으니까. # -16년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 광복 70주년, 광복절에 맞춰 개봉한 게 신의 한수였다. 매번 흥행작을 배출한 최동훈 감독이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라는 거물급 배우들과 감초 같은 조연들을 싸그리 모아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우려도 뒤따랐다. 주연 배우들 이미지 소비가 컸다. 전지현과 이정재는 도둑들에서 호흡을 맞췄고, 하정우와 전지현이 베를린에서 부부를 연기했다. 조연 배우들도 영화 하나 개봉 했다 치면 늘상 만날 수 있는 배우들이었단 점에서 더 그랬다.  개인적으론 우려와 다르게 나쁘지 않은 총평을 주고 싶다.  단연 돋보이는 건 배우 전지현이다. 이제 전지현은 한국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제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오히려 전작들과는 달리 하정우의 상하이피스톨이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러닝타임 내내 은막 위는 전지현 캐릭터의 독주무대 같았다. 이런 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 싸구려 감성팔이라는 지탄을 아주 피하기는 쉽지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기억하게끔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문학과 지성사(2015) 아름다운 건, 하루오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 그게 하루오의 말이었는데, 어딘지 건조한 그 말이 그때는 아주 조용하고 희박한 공기처럼 느껴져서, 뭐라고 더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가 젖은 눈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가만히 말했다. 작은 사랑이 하나 지나간 느낌이었어....... 라고. p.36 <절반 이상의 하루오> 그에게 혼잣말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이 고독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언제든 영화처럼 돌려볼 수 있어서 좋다......고, 알은 또 엉뚱한 말을 중얼거렸다. 생각이 먼저 있어서 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온 뒤에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p.81 이름이란, 아무렇게나 흐르지 않도록 사람을 붙들어두는 작은 닻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p.86 니콜라의 말투에 약간의 슬픔이 배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이미 익숙해져서 몸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은 감정이었다. 그런 감정은 체온에 가까워서 아무리 반복해도 더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은 알고 있었다. p.88 <올드 맨 리버>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생이 아니다.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나에게 얘기하는 것인지 황혼에게 얘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p.127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그녀는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불꽃이 점화되었다가 천천히 식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 낭만적 허무주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정귀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귀보 씨는...... 멀리 있어야만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 정귀보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긴 말은 여러 면에서 암시적인 것이었다. 안녕. 아름다운 동화에서 한 페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