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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난이도

평범함의 난이도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누군가 당신을 두고 이런 말을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 있겠다. 크게는 두 갈래로 나뉠 것이다. 조금은 섭섭하거나,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거나. 잘난 것도 특별한 것도 없이 흔하다는 것, 곧 당신이 평범하다는 얘기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는 문장은 형용사 ‘평범하다’의 뜻풀이다. 정의가 딱 한 줄일 뿐인 이 간단한 단어를 두고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새로, 평생 사투를 벌인다. 평범함에 대한 모순적인 욕망과 압력 때문이다. “우리 아들은 말이 유독 빨랐어.” “우리 딸은 한번 가본 길을 전부 기억하더라고.” 모든 아기들이 각양의 방식으로 비범하다. 탄생의 순간부터 자라는 내내 무엇인가 특출할수록 좋다. 상당수는 영재가 아닐까 하는 기분 좋은 오해도 받는다. 뭐라도 남다르기를 처음에는 부모가 원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한동안 바란다. 저마다 이것저것 시도하고 부단히 노력한다. 비범함을 동경해서다. 평범함은 겉보기에 누구나 갖고 있는 것 같은 특성이다. 뭇 사람들보다 더 나은 걸 누리리라 다짐하는 이들이 한때 그 소박한 축복을 얕보는 이유다. 그러나 특별해지겠다는 결심은 주류(主流)의 존재를 알게 되는 무렵부터 흔들리기 십상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주류의 작동원리와 비범함의 본질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충돌의 여파로 복잡한 욕망이 생겨난다. 주류에 속하면서도 조금 더 잘되고 싶은, 월등하게 평범하겠다는 의지 같은 것 말이다. 남들만큼은 해야만 할 과업들이 최후 방어선처럼 거기서 하나둘 늘어난다. 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가고, 연애를 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늙어가는 것. 남들처럼, 평범하게. 비범한 사람들은 더욱 고되고 극히 일부만 평범 이상에 간신히 이르더라는 풍문이 두런거리며 맞장구친다. 은근한 폭력이다. 대부분 사람은 세상의 아우성을 못이기는 척 일단 평범해보기로 작정하게 된다. 진짜 전쟁도 그때부터 시작이다. 별

믿는다는 것

믿는다는 것 “사랑하는 XX이에게. … 내년에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동생과 잘 지내야 한다. 산타 할아버지가.” 산타클로스의 편지를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발견해버렸다. 그것도 아빠 책상서랍에서. 편지 속 글씨는 아무리 봐도 책상 위 메모지에 적힌 아빠 것과 모양이 같았다. 얼얼함이 정수리부터 심장을 관통해 발끝까지 찌르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아빠 책상이나 뒤적거리는 못된 애를 급습한 벌이었나보다. 내 탓이다. 하나님, 예수님과 무슨 사이인지, 천사인지 사람인지, 왜 할머니는 없는지, 산타에 대해 누구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았는데 내가 그를 믿었다. 그래서 속았다. 기억 속에 각인된 최초의 배신이다. 여덟 살짜리 마음에는 퍽 강렬한 충격이었다. 지금도 그 편지 속 파란 활자들이 눈에 선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믿다’라는 단어의 첫 풀이는 이렇다. ‘어떤 사실이나 말을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기다.’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아무 의심 없이 다른 무엇이라고 여기다’라고 적혀 있다. ‘꼭 그렇게 될 것’, ‘아무 의심 없이’라는 표현이 선포하듯 믿음은 순도 100%의 마음이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다만 믿음의 경도는 제각각이다. 작은 외부 충격에 틈을 드러내는 믿음이 있고, 온 세상이 무너지는데 꿈쩍 않는 믿음도 있다. 믿음이 깨질 때는 늘 단단함에 비례하는 통증이 찾아온다. 어른이 되는 것은 곧 조리 있게 의심하는 법을 훈련하는 일이었다. 내게 맞닿은 세상이 넓어질수록 기만과 배신의 경험은 차곡차곡 쌓였다. 그때마다 속절없이 크고 작은 마음의 성장통을 앓았다.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는데 안 되는 일들이 숱했다. 의인은 상을,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종종 통하지 않았다. 사람을, 시스템을 쉽게 믿어선 안 됐다. 기자가 된 뒤 허다한 믿음이 엎어지는 광경을 곳곳에서 더 생생하게 목격했다. 보금자리라 믿던 곳에서 가정폭력으로 죽어나간 이들이 있었고, ‘서울중앙지검’을 사칭한 전화에 속아 전 재산을 잃

수(數)의 독재

수(數)의 독재 뇌의 어느 한 구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한 지 오래다. 두정엽(頭頂葉), 아마 여기 문제인가 보다. 정수리에서 뒤통수로 넘어가는 길목쯤에 있는 뇌의 이 부분이 맡은 역할 중 하나가 수학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나는 수학이 괴롭다. 요즘 말로 ‘수알못’(수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학문 영역까지 갈 필요도 없다. 숫자가 싫다. 수(數)가 싫다. 이 감정은 자주 호오(好惡)의 경계를 넘어 공포로 내달린다. 고작 0부터 9까지 기호 열 개의 조합일 뿐인데,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숫자들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하고 번뜩 눈앞이 캄캄한 게 꽤 아찔하다. 피치 못하게 숫자를 접할 때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를 쓰지만 소용은 없는 편이다. 취재 과정에서 다뤄야 할 숫자가 세 자리를 넘어가면 꼭 몇 번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통계를 바탕으로 기사를 쓸 때는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드리고 엑셀과 씨름한 뒤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귀결되는 일이 잦다. ‘숫자에 트라우마가 있다’고 기회 될 때마다 미리 앓는 소리를 해 둔다. 트라우마의 역사는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출난 재능이 없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수학과 좀처럼 맞지 않았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될 뻔했다. 그래도 대학에 가려고 버텼다. 막상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수학 답안지까지 살짝 밀려 썼다. 재수는 안 했다. 수학을 더 하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그 뒤로 수와 최대한 멀어지고자 발버둥쳤다. 취업에 중요하다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은 한 과목도 듣지 않았다. 동생이 수학 문제를 알려달라고 하면 방문을 걸어 잠갔다. 시급이 아무리 높아도 수학과외보다는 콜센터 아르바이트가 편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내심 안도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은 기업 입사 시험처럼 숫자들의 상관관계나 규칙 따위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점점 더 수 앞에서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 키, 몸무게

이제니, 밤의 공벌레

밤의 공벌레 이제니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 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 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2010 = 밤이라는 시간들에 흠뻑 젖은 채 찾아오는 차갑고도 뜨거운 감성. 거기서 촉발되는 낯설게 익숙한 의식의 흐름. 어느 순간에선가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오늘도 괜히 잠이 오지 않아서 이 시를 옮겨적는다.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6인/문학동네 1. <고두(叩頭)>, 임현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단다. p.10 *작가노트-두고두고 애매한 것들과 더불어, 선명하게 나쁜 것을 색출해내는 일만큼 복잡하게 나쁜 것을 감각해야 할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하게 슬픈 사람들 사이에 민감하게 아픈 사람들도 있다는 점. 모호하게 다친 사람에게는 다른 종류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점. p.40 3. <문상>, 김금희 송 역시 그 일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난폭해지곤 했다. 그것은 실체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 실체는 없지만 힘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향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바람, 막 출발한 동대구행 KTX가 달리면서 일으키는 이 광포한 바람, 흩날리는, 승강장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현수막, 그리고 바람이 멈춘 뒤 찾아오는 정적 사이에서 느껴지는, 살아 있다는 것. 진행되지만 실감할 수 없는 그것을 모멸하고 난폭하게 굴고 싶은 마음. p.95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p.107 *작가노트-더이상 나쁘지 않은 날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환멸과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을 것이다. p.119 4. <고요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