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의 순간, 한국영화감독조합

데뷔의 순간 

- 영화감독 17인이 들려주는 나의 청춘 분투기

주성철 엮음/ 한국영화감독조합 지음
푸른숲



점점 주변의 불편한 시선도 느껴지고,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다른 먹고살 일을 찾으라는 진심 어린 조언도 숱하게 들었다. 그럴 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자학과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는 자기연민의 도돌이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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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진정으로 원한 데뷔작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김경형'이라고 하는 인간의 본질과 무관한 불량식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p.26-27, 31
김경형,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정면승부다>


그리고 특별한 재능이나 영리함이 있었다기보다 맷순간 가졌던 절박함이 나의 무기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 승범이나 박찬욱 감독님처럼 '아님 말고' 식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물론 그 역시 진짜 여유라기보다 자기 자신만 아는 절박함의 다른 표현이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뱉어낼 여유조차 없다. 지금도 한 편, 한 편 만들 때마다 전쟁 같고 너무 많은 상처가 남으며 항상 불안하다. 내겐 너무 생명 같고 소중한 영화라 그 영화의 운명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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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절박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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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그러면서 겁먹지 않는 태도를 키워야 한다. 챔피언은 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p.82-83
류승완, <챔피언은 잘 대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다>


'진짜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불확실성과 마주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할 줄 아는 다른 게 없으니 '선택의 여지'니 그런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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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직 영화로 먹고살기로 결심한 이상, 머나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하나다. 자기가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라도 하며 살아야 그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고.
p.125-126
박찬욱,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아라>


그런 외적 버팀목 외에 나 스스로 무엇이 더 간절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어렴풋하다. 감독이라는 고갯마루가 삶에서 간절히 추구한 어떤 정점이었는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는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주변에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던 보은의 감정이었는지. 그것들은 때로 어느 하나가, 때로는 두어 가지가 뒤섞여 나를 부추기고 끝없이 추락시켰다가 다시 이끌어주었다.
p.137
방은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자'로 바꾸면 된다>


나는 내 수입의 90퍼센트를 책과 음반에 쓴다고. 내가 가진 욕망 중에서 채울 수 있는 욕망은 그것밖에 없다고. 20년 전 그 욕망의 선택을 결심하면서 다른 욕망이 현격히 줄어들어버렸다고. 그래서 진짜 쪼들리는 순간이 닥쳐도 전혀 힘들지 않다.
p.172
변영주, <중요한 건 미련 없이 그다음을 준비하는 태도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어떤 순간에도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으라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엄습하겠지만,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
p.205
봉준호, <다른 일을 한다는 상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정리를 못 하는 내가 정리해보자면, 종점이 보이는 인생은 불행하다. 오래도록 그림을 그려왔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몰라야 그릴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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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는 바로 불 지르는 사람이다. 그걸 끄는 게 스탭이라는 테크니션들이다. 불이 어떻게 번질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작업이 가치 없는 것이라면 아예 불조차 붙지 않을 테니까.
p.260
이준익,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일단 저질러보라>


시행착오가 낭만이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가 바로 지금 당신의 청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 무서운 것은 한번 지나가버린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p.286
이해영, <시행착오가 낭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


돌이켜본다는 것.
나의 청춘은 과연 모든 순간이 분투였던가.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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