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Night On Earth


갑작스럽게 찾아온 타클로반에서의 마지막 밤. 꿈만 같은 사흘이 지나갔다. 악몽이었다. 오늘의 이 느낌이, 지난 며칠의 기억이 이대로 휘발돼선 안 되겠기에 인터넷도 들어오지 않는 ‘재난대책본부 타클로반 시청’ 이곳에서 한글 파일로 글을 남긴다.

태풍 하이옌은 정말로 이 도시를 ‘할퀴고’ 지나갔다. 성한 곳이 없다. 도시의 구석구석도, 살아남아버린 자들의 마음도, 어느 한 곳 성치가 못하다. 복구 작업은 말마따나 빠르게 이뤄졌는지도 모르겠다. 불과 며칠 전까지 길가 곳곳에 시체가 즐비했다고 했다. 이제 시체를 보긴 힘들다. 그러나 시체 없이도 이곳은 생지옥이다.

죽은 돼지와 소가 떠다니는 하천가를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웃통을 벗은 아버지들은 오물 가득한 거리에서 낡은 식칼로 고기를 다듬는다. 거죽만 남은 개들이 주인을 잃고 쓰레기더미를 헤집고 다닌다. 터조차 온전치 않은 옛 ‘집’ 흔적 위에 사람들은 다시 판잣집을 짓는다. 밀려온 쓰레기더미 속에서 찾아낸 자재들을 모아 얼키설키 지은 집들이다. 바람이 불면 또다시 날아갈 듯 위태롭다. 그런 지붕지붕마다 걸린 빨랫줄에는 흙더미에서 건져낸 빨래들이 널렸다. 어쩌면 더 이상 주인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봉제인형도 줄줄이 자리를 차지한다. 머리 위로 태양은 야속하게 타오른다.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의 시체를 토해낸 흙탕물에서, 쓰레기더미에서 다시 생활을 긷는다. 삶을 건져올린다. 이곳 사람들은 안간힘을 써서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란 단어를 선뜻 꺼내기 두려울 만큼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처참한데도 말이다. 마주친 이들마다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한다고 한다. 다가올 내일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다. 나였더라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에드가는 소처럼 큰 눈을 내리깔고 고향 친구 얘기를 했다. 주말마다 농구 코트에서 공을 주고받던 그의 오랜 친구는 끝내 살았다. 그러나, 품에 안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파도에 빼앗겨버린 한 가장의 좌절감과 죄책감은 얼마나 컸을까. 야자나무 기둥에 몸을 묶고 물이 충분히 차오르길 바라며 죽음을 기다리던 아빠의 마음을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코까지 찰랑대던 물이 끝내 빠져내려 목숨을 부지하게 된 그 남자의 기분을, 묶인 몸을 스스로 다시 풀어내야 했던 한 사람의 심정을 나는 끝내 헤아리지 못할 것이었다.

현지 시각 11월 19일 오후 9시50분. 지금 내 눈앞엔 어둠 속에서 저마다 노트북 빛을 번쩍이며 이 땅의 아픔을 제각기 다른 언어로 긁어담는 예닐곱 명의 기자들이 있다. 나보다 한참은 오래 이 일을 해왔을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을까.

기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아픔을 팔아 글을 쓰고야 만다. 마음이 편치는 않다. 부서진 공항, 탈출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재민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열기. 해변으로 떠밀려온 쓰레기더미에서 풍기던 악취. 땡큐, 살라마를 외치던 노인들의 갈라진 목소리. 제 키만한 물통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던 아이의 새카만 눈망울과 오물로 얼룩진 발등. 이 상처받은 땅 위에 새벽부터 펼쳐지던 새파란 하늘, 그 아래 바다.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슬픔과 아픔은 마음의 빈틈으로 스며든다. 내게 아픈 땅이 늘었다. 

듣는 곡은 Green Day의 Last Night On Earth. 지구 위에서의 마지막 밤을 영문도 모른채 보냈을 3700여명의 고인들을, 그리고 남은 밤들을 마저 헤아려야 할 생존자들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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