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전(2013)


舟を編む(2013)
감독: 이시이 유야
출연: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죠













"서쪽을 향해 섰을때 북쪽이 오른쪽입니다."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다는 소망은 아닐까요?"

"사랑: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이루어지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감사' 라는 단어 이상의 단어는 없는지 저 세상이 있다면 거기서 용례 채집을 해 볼 생각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였나. 책에 푹 빠져 지내던 나는 갓 생긴 학교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집에 가지 않았다. 글의 세계는, 그리고 말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었고 언제나 새로운 말들이 불시에 튀어나왔다. 사전을 끼고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나는 사전을 읽기 시작했었다. 'ㄷ'의 중간까지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쩌다 사전을 읽을 생각을 했는지 어떤식으로든 좋은 영향을 받았으리란 생각에 지금 돌이켜봐도 스스로 기특한 기분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자라나며 기계 문명의 혜택을 지나치게 받게 됐고 종이사전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갔다. 공부를 하겠답시고 책상머리에 앉은 중학교 때부터 전자사전이 필수품이 됐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휴대폰의 사전 기능에 자꾸만 손이 갔다.

영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조금은 부끄러웠다. 한때 사전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사전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해선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행복한 사전'은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대답을 길고 느린 호흡으로 풀어낸다. 경이에 가까운 그 작업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담백함으로 전해진다. 시종일관 단어와 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꼭 필요할 때, 적절한 대사만을 흘려보낼 뿐이다. 15년이라는 지난한 세월 따라 종이를 슥슥 스치는 연필소리, 정갈하게 꾹꾹 눌러쓴 수많은 단어들과 그 뜻들이 모여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말의 홍수로 피로한 이 시대에 적절한 의미의 꼭 필요한 말들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빠르게 모든게 흘러가고, 사라지고, 변하는 세상이지만 난 그에 거스르는 이런 사람들과, 사물들과, 이야기들, 거기서 분출되는 기운이 참 좋다 .
종이 질 하나하나에, 단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프로의식과 일에 대한 애정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됐다.

열심히 살아야 할텐데 오늘도 지겨워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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