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16의 게시물 표시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 좋지 않은 세상을 견디는 힘.

스포트라이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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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드라마 ,  스릴러 미국 128분 2016 .02.24  개봉 토마스 맥카시 마크 러팔로 (마이크 레젠데스),  레이첼 맥아담스 (샤샤 파이퍼) Sometimes it's easy to forget that we spend most of our time stumbling around the dark. Suddenly, a light gets turned on and there's a fair share of blame to go around. I can't speak to what happened before I arrived, but all of you have done some very good reporting here. Reporting that I believe is going to have an immediate and considerable impact on our readers. For me, this kind of story is why we do this. If I can be of any help, Marty, don't hesitate to ask. I find that the city flourishes when its great institutions work together. Thank you. Personally I'm of the opinion that for a paper to best perform its function, it really needs to stand alone. I wanna keep digging. We got two stories here: a story about degenerate clergy, and a story about a bunch of lawyers turning child abuse into a cottag

영원한 젊음, 리카르도 콜레르

영원한 젊음 리카르도 콜레르/최유정옮김/삼인 오늘날에는 대체로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오래 산다. 하지만 재력이 존엄한 노화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의학이 선사한 추가 시간 동안 우리는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우리 육체가 그 시간을 잘 보내는지 그렇지 못한지에만 전념한다. 고통스럽게 보내거나, 아니면 즐기며 보내거나. p.14 노인이 되고, 병들고, 스스로를 건사할 능력을 상실할 때, 삶은 가장 순수한 상태로 축소되고 만다. 사는 것. 그 자체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삶에 시스템은 비집고 들어갈 수 없으며, 설령 그리한다 해도 그것은 부당한 일일 뿐 아니라, 적은 것을 얻고자 지나치게 많은 재원을 들이는 일이 될 것이다. p.33-34 첫 번째 결론은 이렇다. 의학은 돌려 말하는 과학이라는 것. 다른 말을 하지 않으려고 수많은 낱말을 사용한다. 이해할 만하다. 의사들은 인간을 가장 많이 닮았기에, 만일 이런저런 상황을 피해 일정한 거리를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냉정해지지 않는다면, 일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내내 울고 있을 것이다. 엉망일 것이다. p.89-90 오늘날 작동하는 이론은 바로 예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예방이 무언가를 조금 더 헝클어뜨린다. 부디 빌카밤바에는 다른 가능성이 있기를, 예를 들어 지나치게 금욕적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더 오래 살 방법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실현되면, 연장된 수명을 헛되이 쓰지 않을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p.223 순수한 삶으로서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렇게 믿는 것이다. 대자연은 뭔가를 알고 있다고. p.224 = 웰다잉 시리즈를 시작해 취재를 다니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꽤나 자주, 오래 생각해야 했다. 죽음은 삶처럼 지척에 있었고 병마는 많은 이들에게 도둑처럼 찾아와 행복을 훔쳤다. 노화는 궁극적으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게 불로장생을 원하는 인간의 오랜

어느 대기업이 노동취약계층을 평가하는 방식

지난달 18일과 이달 14일 각각 다른 지점에서 스마트폰 수리를 받았다. 2월에는 액정을 바꾸느라 돈이 좀 들었지만 기기내부 청소 같은 걸 서비스로 받았다. 엊그제는 통화 품질 때문에 갔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신 후면 카메라 유리를 교체하고 액정보호필름까지 부착해줬다. 모두 무료였다.  당일 저녁마다 수리기사로부터 장문의 문자메세지가 왔다. 기기에 문제가 없는지 수리하면서 불편한 건 없었는지 물었다. 휴대폰 관리를 위한 팁과 환절기 건강 챙기라는 따듯한 인사도 함께였다. 혹시 본사에서 만족도 조사 전화가 오면 잘 대답해 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내가 모두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을 준 것은 분명 그런 당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번 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그 문을 다시 나설때까지 훌륭한 서비스를 받았다. 고마웠고 만족스러웠다. 과분한 친절이었다. 기술자들이 생계를 위해 떠안은 감정노동이 버거워보이기도 했다.  오늘 본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2월 18일에 대한 거였다. 10점을 내리 불렀다. 혹시 수리기사가 평가를 잘 해달라고 했냐는 게 마지막 질문이었다. 대답하고 나서야 정답이 있는건가 해서 아차 싶었다. 이런 부탁을 한 사실로 기사님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할 일을 안하고 고객을 협박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규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애초에 저런 규정이 있었는지, 생겼다 한들 저들이 직원들에게 과연 공지라도 했을지 못미덥다. 유도심문을 당한 것 같아 불쾌하다. 속상하고 미안하다. 생업에 최선을 다한 기사님이 나때문에 안 좋은 일을 당할까봐. 무심하게 훑어넘겼던 기사 여러개가 떠오른다. 이 기업이 노동자를 부품 쯤으로 여기는 걸로 악명높은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 화가 난다. 내가 이따금씩 사소한 일에도 몸서리치는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기까지 삼성전자라고 말 안했다. 그래도 모두가 알 테니까. 다음엔 절대 갤럭시 안 산다. http://m.me

캐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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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Carol, 2015 드라마 ,  멜로/로맨스 영국 ,  미국 ,  프랑스 118분 2016 .02.04  개봉 토드 헤인즈 케이트 블란쳇 (캐롤 에어드),  루니 마라 (테레즈),  카일 챈들러 My angel, flung out of space. Dearest, there are no accidents and everything comes full circle. Please believe that I would do anything to see you happy  and so I do the only thing I can - I release you. Carol, I miss you. I miss you. Do you hate me? How could I hate you. =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그 자체로 강렬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여러 평론가들이 이 사랑을 '남녀를 떠나 인간으로서의 사랑'으로 묘사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그럴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굳이 그렇게 표현한 심정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의 진한 아우라가 아주 아름답게 그려졌는데 거기서 영화에서 동성애라는 표면을 벗겨낸다면 남녀노소 누구나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본질적인 무엇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에 빠진 이들의 감수성 그 미묘한 떨림을 영화는 아주 세밀하게 담아낸다. 아주 여성적인 시선으로. 내가 사랑에 빠졌던 모든 순간들이 낱낱이 거기 있었다. 그만큼이나 특별하고 보편적이면서도 촘촘했다 . 여러 제도적 금기들까지 맞물리면서 그녀들의 사랑은 세상의 저 모서리 끝으로 내몰린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조금은 돌아가지만 그 사랑을 끝내 지켜내는데 그 순간을 표현한 방식이 너무 좋았다. 군중 사이의 캐롤이 연인을 알아보았을때의 그 표정, 만면에 가득한 그들의 벅찬 감정이 스크린 바깥의 내게로 전해져 심

귀향(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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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Spirits' Homecoming, 2015 조정래 강하나 (정민),  최리 (은경),  손숙 (영옥(영희)) 언니야 우리 이제 집에 가자. 너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지? 그까짓 거 걱정하니? 우린 이미 죽었어야. 여긴 지옥이라. 내가 그 미친년이다! 미안하다 내 혼자만 돌아왔다. 내 몸은 돌아왔어도 마음은 늘 거기 있었다. = 어떤 영화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만듦새가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훌륭한 커리어의 감독이나 스타성 뛰어난 배우가 없어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있다. 귀향은 그런 영화다.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결심부터 거기 참여한 한사람 한사람, 영화가 끝내 스크린 위에 오르도록 작은 힘을 보탠 수만명의 평범한 '관객들'까지. 기억하고 기록하겠다는 그 노력들이 모여 결실을 맺었다. 아쉬웠던 점을 굳이 언급해보자면 우선 주인공 정민이 처음 피해를 당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그 아픈 순간을 오롯이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민은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은 채 물건처럼 누워 있고, 일본군의 신음소리와 들썩들썩 흔들리는 소녀의 벗은 나체가 강간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소름끼치고 불쾌한 장면이었다. 소재 측면에서나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었을테지만 피해자 측면에서 보여주는 편이 더 그 아픔을 공감하는데 적합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조금은 산만하게 느껴지는 현대신의 삽입, 샤머니즘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도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정민이 끌려가는 순간부터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기까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진이 다 빠져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아팠다. 거기가 실로 지옥이었다. 지난 연말 불가역적으로 체결돼버린 위안부 협상이 떠올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감독의 말처럼 먼 타지에서 못다핀 꽃같은 소녀들의 넋이라도 부디 고향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