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젊음, 리카르도 콜레르

영원한 젊음

리카르도 콜레르/최유정옮김/삼인


오늘날에는 대체로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오래 산다. 하지만 재력이 존엄한 노화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의학이 선사한 추가 시간 동안 우리는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우리 육체가 그 시간을 잘 보내는지 그렇지 못한지에만 전념한다. 고통스럽게 보내거나, 아니면 즐기며 보내거나.
p.14

노인이 되고, 병들고, 스스로를 건사할 능력을 상실할 때, 삶은 가장 순수한 상태로 축소되고 만다. 사는 것. 그 자체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삶에 시스템은 비집고 들어갈 수 없으며, 설령 그리한다 해도 그것은 부당한 일일 뿐 아니라, 적은 것을 얻고자 지나치게 많은 재원을 들이는 일이 될 것이다.
p.33-34

첫 번째 결론은 이렇다. 의학은 돌려 말하는 과학이라는 것. 다른 말을 하지 않으려고 수많은 낱말을 사용한다. 이해할 만하다. 의사들은 인간을 가장 많이 닮았기에, 만일 이런저런 상황을 피해 일정한 거리를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냉정해지지 않는다면, 일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내내 울고 있을 것이다. 엉망일 것이다.
p.89-90

오늘날 작동하는 이론은 바로 예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예방이 무언가를 조금 더 헝클어뜨린다. 부디 빌카밤바에는 다른 가능성이 있기를, 예를 들어 지나치게 금욕적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더 오래 살 방법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실현되면, 연장된 수명을 헛되이 쓰지 않을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p.223

순수한 삶으로서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렇게 믿는 것이다. 대자연은 뭔가를 알고 있다고.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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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시리즈를 시작해 취재를 다니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꽤나 자주, 오래 생각해야 했다. 죽음은 삶처럼 지척에 있었고 병마는 많은 이들에게 도둑처럼 찾아와 행복을 훔쳤다.
노화는 궁극적으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게 불로장생을 원하는 인간의 오랜 욕심이다.

그런데 저 신기한 마을에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별다른 노력 없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의 여느 장수마을들처럼 현대의학의 정의하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거나 특별히 노력하는 바 없이. 오히려 마약, 술, 담배, 섹스, 설탕 등을 원없이 즐기는데 고손주를 보고 백살이 넘어서도 밭에 나가 일을 한다.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다. 글쓴이가 본인의 부친이 임종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흔한 현대인의 삶의 끝자락과 빌카밤바의 모습을 대비해 준다는 점도 재밌었는데 용두사미로 끝난다. 결국 물음표만 남긴 채 웬 사부곡으로 변질돼버린다. 아쉬운 점이다.

정말 너무 많은 근심과, 자연스럽지 못한 예방과 욕망의 억제가 병을 부르는 걸까.
늘 장수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내게는 '장수하고 싶은 욕심은 없는' 게 아니라 '건강히 살다가 건강하게 죽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였다.
언젠가 저 마을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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