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5)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마크 러팔로(마이크 레젠데스), 레이첼 맥아담스(샤샤 파이퍼)









Sometimes it's easy to forget that we spend most of our time stumbling around the dark. Suddenly, a light gets turned on and there's a fair share of blame to go around. I can't speak to what happened before I arrived, but all of you have done some very good reporting here. Reporting that I believe is going to have an immediate and considerable impact on our readers. For me, this kind of story is why we do this.



If I can be of any help, Marty, don't hesitate to ask. I find that the city flourishes when its great institutions work together.
Thank you. Personally I'm of the opinion that for a paper to best perform its function, it really needs to stand alone.



I wanna keep digging.



We got two stories here: a story about degenerate clergy, and a story about a bunch of lawyers turning child abuse into a cottage industry. Which story do you want us to write? Because we're writing one of them.



Baron told us to get the system. We need the full scope. That's the only thing that will put an end to this.



I was doing my job.
Yeah, you and everyone else.


=

어디서부터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강렬한 영화였다. 감정들이 몰려왔다. 견디기 벅찬 것들이었다. 부러움, 부끄러움, 부담감, 열정 그 처음의 아찔한 뜨거움, 이 사이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히려 모든게 뒤섞인 심정이라 해야 옳을지도. 영화를 먼저 본 동료 기자들로부터 많은 소회가 쏟아졌다. 업무와 신념에 대한 공감부터 장르가 판타지라는 얘기로 대변되는 무기력함까지 저마다 표현은 달랐지만 다들 얼추 비슷한 생각들을 했을 거다.

그들이 일하는 방식은 지극히 나와, 또 나의 뭇 동료들과 닮았다. 싫다는 사람들을 조르고, 묻고, 듣고, 생각하고, 적고. 퇴근 후에도 전화기를 붙들고, 우는 사람을 달래서 괴로운 얘기를 듣고. 노가다로 자료를 추리고 바람맞고. 분노하고. 그런 일들. 그간 숱한 컨텐츠들이 쏟아낸 '기레기' 이미지들에 '편견'이 묻어있는거라고 반박할 수 있을 듯한 뭐 그런 장면들. 영화를 휴일에 보면 근무하는 기분이 든다는 경고마저 동료들 사이에 돌았다.

차이는 현실적인 한계에서 온다. 나의 일터를 비롯해 우리 언론 환경에서 허락되지 않는 것들. 디지털퍼스트 실적이나 광고수익 같은 외부 요인에 짓눌려 하루하루 속보 기사 쓰거나 내일 쓸거리 찾아 간신히 막거나 이런 거. 사라져버린 탐사기획팀 같은 것. 일간지인데 한달이고 두달이고 취재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 사내 자료실, 그 자료들을 찾아주는 사람들.

그러다보니 이 영화를 보고 초심을 떠올리고 한때의 자기 모습을 떠올렸을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제는 까라면 까지 않고 뚝심있게 취재하는 현장기자들이 우리네 모습이라고 쉽게는 말하지 못하게 됐다. 직접 발로 뛰며 탐사기획거리를 제안하는 편집국장이나, 눈앞의 마감보다 더 큰 그림을 보는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데스크가 우리들이라고 말하기 힘들게 됐다. 슬픈 자화상이다.

물론 영화의 배경이 되는 건 신문이 지금처럼 완전한 사양길로 접어들기 전이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몇몇 언론들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전율을 기사로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다수가 하고 싶은데 소수가 하고 있어서 문제일 뿐이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 안의 굵은 감정은 이거다. 탐사 취재 하고 싶다. 애초에 모두가 기자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다들 그런 거 아니었겠나. 그런데 당장 시리즈 기획 막느라 진 다 빠지고 당장 쓸 것도 마땅찮다. 리셋 하고 싶다.

기자로서도 그렇고 거기 나온 모든 인물군상을 두고서도 그렇고, 어쨌든 이 영화는 '제 할일을 한다는 것'의 각기 다른 의미와 그 미묘한 어려움에 대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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