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피터 홀린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피터 홀린스 지음/ 공민희 옮김/ 포레스트북스


외향성과 내향성의 스펙트럼 전체를 오가는 사람은 긍정과 부정의 감정을 전부 가지고 있는데, 그 전형적인 특성의 차이는 각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p.47

융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개인의 성향을 완전히 한 가지 특성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면 이상하거나 불안한 상태로 인식될 것이다. 무지개의 색상이 점차 달라지는 것처럼 성격 스펙트럼에도 단계적 변화가 있다.
...
사람은 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인 존재다.
p.57

외향성과 내향성 사이를 영원히 왕복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균형을 얻을 수 있다. 넘치는 활력과 자아 탐험 두 가지는 모두 중요하며, 반드시 행동을 보여야 할 때도, 반드시 침묵해야 할 때도 있다.
p.65

외향적인 사람이 한층 더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능력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잊어버리는 능력이다. 이들은 안 좋은 기억을 오래 담아두지 않고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둔다. 항상 더 나은 상황으로 감정을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p.132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채널을 바꾸는 능력’이다. 이 말은 유연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한 성향에서 다른 성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p.155

삶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자. 다른 사람의 애정을 얻겠다는 이기적인 동기가 아니라 새롭게 바뀐 삶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을 그 길을 함께 걷는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자. 그러면 자신의 인생도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동기가 스스로를 강하게 해준다.
p.171


=

스스로에 대해 알고싶은 욕망이 큰 편이다. 미신을 경계하면서도 혈액형, 별자리, 띠 같은 것에 지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각종 심리테스트나 성격, 성향 검사를 하고 분석 결과를 읽는 데도 관심이 많다. 나이가 드는 동안 그렇게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 코끼리 다리 더듬어가듯 파악해온 나 자신이 있었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이고, 밝고, 활발한 나.

평생을 해온 자아 찾기는 일을 하면서 갈피를 잃었다. 평생을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은데 내 직업 세계가 요구하는 극단의 적극성과 외향성을 나는 차마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1~2년차 때는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날에도 꾸역꾸역 서울 곳곳으로 기어나가곤 했다. 책을 읽어도 밖에서 읽고, 쉬어도 밖에서 쉬고, 뭔가를 끊임없이 구경하고.

시간이 갈 수록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휴일이 늘어났다. 처음 보는 취재원들을 만나는 게 기대보다는 부담으로 느껴지는 자리가 쌓여갔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가 싫어서 2분 뒤에 걸어야지, 57분에 걸어야지, 정각 되면 걸어야지 하고 망설이기 일쑤였다. 

나 사실은 내향적인 사람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20여년간 알았던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나날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내가 나를 오해했나 싶었던 알쏭달쏭함이 '내가 바뀌고 있구나' 하는 실감으로 다가왔다. 열 가지 중 단 한가지 장점을 쉽게 찾아내고 신나 하던 나인데, 열 가지중 딱 하나의 단점에 천착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너무 차가운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두려웠다.

MBTI 검사 결과도 다르게 나왔다.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입사 첫 해만 해도 늘 ENFP(스파크형)이 나오곤 했는데, 3~4년차 쯤 됐을 때 해 본 검사에서는 연달아 ENFJ(언변능숙형)이 나왔다. 절망했다. 뭐가 더 나쁘다는 건 아니였다. 단지 그때는 일이 요구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한 강박 때문에 내가 바뀌는 걸 부정적인 신호로만 여겼기 때문에 실패한 것만 같았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았으니까.

결국 나는 직업을 바꿨고, 작년 말 다시 한 MBTI 검사에선 ENFP가 나왔다. 돌아왔구나 싶은 안도감을 잠시 느꼈지만 기분은 조금 이상했다.

이 책에는 이렇다할 깊은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 그런데도 내겐 꼭 뒤늦게 찾아온 위로 같았다. 외향성과 내향성의 스펙트럼을 오가는 게,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바뀌는 성향이 오히려 더 풍부한 삶을 선사해준다는 메시지 덕분이다. 나라는 사람이 규정되지 않는다는 게, 끊임없이 바뀔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가능성을 담고 있는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 일종의 성숙 과정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조금 더 행복했을까?

전형적인 나 자신으로부터 자의 반 타의 반 변주되는 순간들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전보다 덜 위태롭게 그 흐름을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닫힌 어른보다는 열린 어른, 딱딱한 사람보다는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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