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청혼

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 신의 아들은 인류를 위해, 사랑에 빠진 남자는 단 한 여자를 위해 피를 흘리며 쓴 잔을 마신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몽글거리는 기분과 그 완전한 감정 안에서 오는 차분한 평안,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모두 담긴 시다. 간단한 시어들이 잔잔히 흘러가는데 톡 하고 터지는 순간이 있다. 슬프도록 아름답다.

2015년 11월 4일 수요일 10개 일간지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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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4일 수요일 10개 일간지 1면 -11월 3일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경향신문: 42년 전 유신독재 시절로 '국정화 역주행' ▼국민일보: '국정화' 속도전 최몽룡 등 대표 집필 ▼동아일보: 쐐기박은 국정화 정부 속도전 ▼문화일보: "한국경제, 이대로 가면 '끝'이다" ▼서울신문: 최몽룡 등 원로학자 6~7명 대표 집필 ▼세계일보: "민주화 산업화 왜곡 없이 서술" ▼조선일보: 國定교과서, 주사위는 던져졌다 ▼중앙일보: 역사교과서, 상고사 고대사 늘린다 ▼한겨레: 역사는 권력의 전리품이 아닙니다 ▼한국일보: 국정화 반대의견 68%는 묻혔다 = 경향이 독보적으로 잘 만들었고, 나름의 스탠스 안에선 조선도 괜찮게 만들었다.

11월 16일 월요일 10개 일간지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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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2일 금요일(현지시간), IS 파리 테러  -11월 16일 월요일 10개 일간지 1면 ▲경향신문: 난사당한 유럽의 심장 "새로운 전쟁 시작됐다"  ▲국민일보: 울지마, 파리 자유는 테러보다 강하다  ▲동아일보: 'IS와의 세계대전' 시작됐다  ▲문화일보: 佛 'IS 심장부' 맹폭 "모든 수단 총동원 응징"  ▲서울신문:  IS, 파리 연쇄 테러 佛  "톨레랑스는 없다"  ▲세계일보: IS, 무차별 테러 피로 물든 파리  ▲조선일보: 지구촌, IS테러와 세계大戰  ▲중앙일보: 테러에도 '3색 정신'은 꺼지지 않는다  ▲한겨레: 파리의 비극 'IS와 전면전' 기로에 섰다  ▲한국일보: 파리의 피울음 = 경향이 사진도 제목도 젤 맘에 든다. 그 다음 한국. 조선이랑 중앙은 사진에 너무 많은 걸 담아보려다 조잡해진 느낌이다. 세계 문화 동아가 쓴 사진은 1면에 쓰기엔 넘 어질어질하다.  서울과 국민은 시간차를 두고 찍은 사진을 각각 썼는데, 서울에서 쓴 사진이 압도적으로 좋다.

더 랍스터(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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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요르고스 란티모스 레이첼 와이즈 ,  콜린 파렐 ,  레아 세이두 ,  벤 위쇼 ###스포일러있습니다 여긴 분명, 나라도 시대도 알 수 없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다. 모두가 사랑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곳이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반쪽'에 대한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여기서 반쪽은 말 그대로 반쪽이어서 상대가 없는 존재는 미완이요, 불량이다. 미완의 존재들은 수용소나 다름없는 호텔로 보내진다. 호위호식이 편치 않은 그런 곳이다. 주어진 시간이 지나고 덧없이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제도 안에서 인정 받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모두가 필사적으로 짝을 구해야 한다. 짝을 찾는 방식은 기괴하고 기계적이다. 사회학자 커플, 코피를 자주 흘리는 커플, 근시 커플. 이렇게 나와 상대가 아닌 타인들의 눈으로 분류 가능한 특질들이 마치 절대적인 운명처럼 작용해 한 쌍을 만든다. 맺어진 한 쌍에게서 느껴지는 감정 또한 진정한 사랑이나 행복, 기쁨이기보다는 '안도'다.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는 어떤 일말의 안도. 이런 제도를 벗어난 외톨이들 사이라고 편치도 않다. 결국 둘이 되거나 오롯이 혼자가 되거나를 강요당하는 셈이다. 가뜩이나 오묘한 영화의 분위기가 한단계 더 뒤틀리는 건 데이비드가 호텔을 빠져나와 외톨이 무리에 속했을 때 비로소 찾아온 사랑에 위기가 도래하면서부터다. 그는 결코 사랑해선 안될 곳에서 천생연분과도 같은 근시 여인을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여인이 시력을 잃게 되면서 이들 관계는 벽에 부딪힌다. 매일같이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매번 기대와 다른 답을 들으며 좌절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이 어찌나 아이러니한지. 영화가 이 사랑의 '진정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압권이다. 골 때린다고 해야 적확한 표현이겠다. 외톨이 리더를 처단하고 숲을 빠져나온 데이비드는 내사랑그

인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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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The Intern, 2015 낸시 마이어스 앤 해서웨이 (줄스 오스틴),  로버트 드 니로 (벤 휘태커) # Retirement is an ongoing, relentless effort in creativity. You can try yoga, like to cook, bought some plants, took classes in Mandarin. Believe me, I've tried everything. I just know there's a hole in my life and I need to fill it, soon. # I read once that musicians don't retire. They stop when there's no more music in them. Well, I still have music in me. Absolutely positive about that. # The truth is, something about you makes me feel calm, more centered or something I could use that, obviously. = 아름다운 동화였다. 스스로 나 너무 배배 꼬인 것 아닐까 잠시 반문해 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다. 동화는 동화다. 뜻밖의 성공을 거머쥔 유능하고 아름다운 여성 CEO가 인품 좋은 멘토까지 얻게 되는. 우리네 현실과 견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도리 없이 외떨어진 격차 때문이다. 주로 그런 것들이다. 유능한 남편을 둔 가정 주부가 부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다 생각난 아이템을 사업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그런 아내가 성공가도를 밟을 때 자기 커리어를 내려놓고 '주부'가 되기를 결심할 남편이 있을까. 갓 달리기 시작한 스타트업에서 시니어 인턴을 뽑을 여유가

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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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쇠약 직전의 뱀파이어 Der Vampir auf der Couch, Therapy for a Vampire, 2014 코미디/오스트리아+스위스/87분 감독: 다비드 륌 출연: 토비아스 모레티, 제넷 하인, 코넬리아 이반칸 = 밤을 걷는 뱀파이어소녀에 앞서 본 뱀파이어물. 보다 유쾌한 분위기다 . 독일어 특유의 울림과 발성도 좋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위트도 마음에 든다. 권태기에 신경쇠약을 겪는 뱀파이어라니! 신선한 발상이 돋보였다. 뱀파이어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웃음포인트들이 있다. 심장에 말뚝이 박히면 박멸된다거나, 초대를 해야만 문턱을 넘을 수 있다거나, 피만 빨리고 심장을 잃지 않으면 뱀파이어가 된다거나 등등등.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이 더러 있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수준이다. 여름밤에 걸맞는 유쾌한 영화였다.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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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A Girl Walks Home Alone at Night , 2014 미국/101분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 출연: 셰일라 밴드(소녀), 아라쉬 미란디(아라쉬) = 뱀파이어물을 좋아한다. 고전부터 현대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흡혈귀 나오는 컨텐츠란 컨텐츠는 다 섭렵했다. 대학 졸업논문도 드라큘라로 썼다. 교환학생 가서도 고딕 문학 석사 과정을 열심히 들었다. 이 계통의 문학이 주는 대중적이면서도 심오한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 그저 그런 스릴러와는 다른 원형이라는 걸 파면 팔수록 알 수 있다. 대개 현대의 뱀파이어물들은 심미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렛미인,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등등. 뱀파이어의 키워드를 단 하나로 추리라면 '매혹'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역시 시종일관 아름다움을 위해 달린다. 미쟝센의, 미쟝센을 위한, 미쟝센에 대한 영화랄까. 정체 불명의 중동 도시, 밤마다 짙게 화장을 하고, 히잡을 둘러쓴 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록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미소녀 뱀파이어라니. 전에 없던 조합이며 생경하고 이국적인 끌림이다. 눈가 귀만을 위한 101분이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간다. 미쟝센이 주제고, 스토리는 치장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맹탕이라고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이 자체로 관객을 매혹시키기엔 충분하다고 본다. '착한 아이가 되라'는 강렬한 대사. 여성들을 향한 미지의 연대. 여성의 '적'으로 그려지는 남성에 대한 처벌. 어떤 측면에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담긴 것도 같다. 아무튼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