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s and Year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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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S AND YEARS (2019) SCREENPLAY & CREATED BY: Russel T. Davis DIRECTED BY: SIMON CELLAN JONES / LISA MULCAHY STARRING: EMMA THOMPSON / RORY KINNEAR / RUSSEL TOVEY / T'NIA MILLER... PRODUCTION: BBC/HBO 한토막 대사, 찰나의 장면도 허투루 쓰지 않은 완벽한 수작이 나타났다. 브렉시트, 트럼프, 미중관계, 핵무기, 기후변화, 남중국해, 러시아-우크라이나, PIGS, 금융위기, 난민, 사이버테러, 백신 없는 바이러스, 하이테크 이슈까지 현존하는 모든 문제를 6화짜리 드라마에 전부 쓸어담았는데 한 순간도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 셰익스피어와 조지오웰과 올더스헉슬리의 나라가 또 해낸 것이다. (약간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음) 핍진한 비극이 임박했나니 핍진성(verisimilitude) . 작품이 얼마나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는지, 진짜와 비슷한지에 대한 정도를 이르는 말이다. 핍진한 정도의 완급 조절에 실패한 작품은 논픽션 다큐멘터리마냥 딱딱해지거나, 허무맹랑한 공상처럼 붕 뜬 신기루에 그치고 만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아주 핍진하다. 실존하는 인물들이 나타나 국제 정세를 어그러뜨린다. 시장경제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다. 엊그제 뉴스에서 본 것 같은 어쩌면 내일 뉴스에서 볼 것 같은 정무적 '막말'들이 극속 정치인들의 입을 거쳐 쏟아진다.  '지능이 낮으면 투표권을 박탈해야 한다', '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와 것 같이, 술자리 안주거리로 지금도 오르내릴 말들이 드라마 속에서 현실이  된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다 익사한 난민들 이야기는 이미 화면 밖에서 반복된 사실( 史 實) 이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이래도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적을 정도로 모든 요인이 현실적이다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 민음사 "다만 어느 날 문득, '왜?' 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라는 말은 중요하다.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이 끝날 때 느껴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나는 이 권태가 좋은 것이라고 결론지어야겠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의식에 의해 시작되며 그 어떤 것도 의식을 통해서만 가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전혀 독창적일 것이 없지만 명백하다. 부조리의 기원을 간략하게 인식해 보는 기회는 당분간 이것으로 충분하다. 단순한 '관심'이 모든 것의 기원인 것이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내려가면 나타나는 것이 낯섦이다. 즉, 세계가 '두껍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한 개의 돌이 얼마나 낯선 것이며 우리에게 얼마나 완강하게 닫혀 있는가를, 그리고 자연이, 하나의 풍경이 얼마만큼 고집스럽게 우리를 부정할 수 있는가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의 밑바닥에는 비인간적인 그 무엇이 가로놓여 있다." "이성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지만 그것은 또한 신을 향해서 돌아설 줄도 안다. ... 이성은 사유의 도구이지 사유 자체는 아니다. 한 인간의 사유란 무엇보다 먼저 그의 향수이다."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만 안겨주는 세계의 절연, 통일에의 향수, 지리멸렬의 우주 그리고 그 양자를 한데 비끄러매 놓는 모순이 바로 부조리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가 상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확실성이다. 즉 그는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은 것이다." "바닥 없는 이 확실성 속으로 빠져드는 것, 이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확실히 느낌으로써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 문학동네 맨해튼 미드타운, 내 청춘의 어두운 시절을 보낸 그 좁고 낡은 아파트먼트의 쪽창으로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이해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나는 이 시의 어휘 하나하나를 조사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을 듯한 기분. 마치 이 시가 쓰이기 이전에 이미 이 시를 알고 있던 것처럼, 모든 문장들을 한 올 한 올 이해할 것 같은 느낌. 지금은 그것만이 나의 리듬. 지금은 그것만이 나의 슬픔. 아니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실 그녀가 적는 모든 문장은 허술한 농담 같으면서도 동시에 농담일 수 없을 만큼 정교하기도 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 세계의 농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여전히 이 세계를 살아가겠죠. 저 역시 어디서든 당신을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글을 일고 당신도 언젠가 다시 나의 글을 읽을 거예요. 그것으로 문장들의 아름다운 우주 같은 게 이루어지리라는 달콤한 말은 믿지 마시길. 우리는 그저 앙상하고 외로워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안간힘을 다해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채워줄 뿐이니까요. 그리고 스르르, 사라지는 거예요. 영원의 이야기란 언제나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나는 미국 맨해튼에도 가보지 못했고 티벳 라싸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어쩐지 그 세계의 뒷골목에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 늦은 시간에 일어나 잠시 스트레칭 자세를 취한 뒤 슈만의 환상 소곡집을 틀어놓고 맞은편 빌라의 외벽에 가로막혀 있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이런 순간에는 갑자기 인생이 정지해서 다시 시작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 마커스 밀러로 음악을 바꾸고 몸을 흔들어도 영영 깊은 물속 같은 기분은 마찬가지. 이것이 오늘의 기분.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회계장부라든가 복식부기는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세계입니

신뢰 이동, 레이첼 보츠먼

신뢰 이동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레이첼 보츠먼 지음 /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신뢰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적 신뢰 local trust 의 시대로,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살던 시대다. 두 번째는 제도적 신뢰 institutional trust 의 시대로, 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해서 지역 공동체 안의 교환을 벗어나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가 구축된 일종의 중개인 신뢰의 시대다. 세 번째는 분산적 신뢰 distributed turst 의 시대로, 우리는 아직 그 시대의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신뢰와 위험은 남매 같다. 신뢰는 우리를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의 틈새로 끌어당기는 놀라운 힘이다. 나이키의 모토 'Just do it(그냥 해버려)' 처럼. 쉽게 말해, 신뢰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신뢰에 대한 내 정의는 단순하다. 신뢰는 미지의 대상과의 확실한 관계다." "앞으로 온라인 신뢰 과정은 계속 빨라지고 더욱 똑똑해지고 더욱 넓게 확산될 것이다. 좀 더 정보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좋은 일이다. 변호사를 고용하든 집을 팔든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든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부분을 잃어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제도가 실패하면 항상 대안이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분산적 신뢰만으로는 극단적인 포퓰리즘이나 급진적인 정치 지도자들의 위험한 정책이나 분열을 조장하는 국가주의의 부활을 막을 순 없다. 다만 새로운 분산적 신뢰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에 대한 요구와 선호도에 맞게 구성하고 재구성하면서 앞으로 비즈니스와 정부, 미디어와 주요 제도에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고 폭넓게

피프티 피플, 정세랑

피프티 피플 정세랑 장편소설 / 창비 “다음 당직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다. 기왕이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놀이공원 같아. 굉장히 참담한 놀이공원이지만 놀이공원 같아. 아드레날린 정키는 만족스러웠다.” “유라는 길을 걷다가 유난히 불행을 모르는 듯한, 웃음기를 띤 깨끗한 얼굴들을 발견하면 갑자기 화가 났다. 불행을 모르는 얼굴들을 공격하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왜 당신들은 불행을 모르느냐고 묻고 싶었다. 어리고 젊고 아직 나쁜 일을 겪지 않은 얼굴들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건 비틀린 위로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기다리고 찾았던 그 적소가 어쩌면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최근에야 드디어 생각이 들었다.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하중이 걸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채원은 스스로가 단단한 부품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중을, 타인의 생명이라는 무게를, 온갖 고됨과 끝없는 요구를 견딜 수 있는 부품이란 걸 어떤 자기애도 없이 건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 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알고 보니 세상에서 자기 아프다는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시인들이었다. 아프다는 말을 아름답게 해버리는 동료들 덕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간질을 앓았던 사람도 여럿이었다. 윤나는 개운해진 한편 가끔 아연하기도 했다. 우리가 쓰는 시가, 사실은 간질의 후유증이면 어떡하지? 발작 같은 것이면 어떡하지? 윤나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이는 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운이 좋았던 적이 있어야 이해할 것이다. 큰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파도가 부서질 줄 알았는데 계속되었다. 평생 그랬다. 유학생 출신답게 호 선생은 생각했다. ‘그레이트 라이드’ 였다고. 그 좋았던 라이드가 이제 끝나간다. 그렇다면 나눠줘도 좋을 것이다. ... 호 선생은 별로 욕심이 나지 않는다. 발 밑에서 큰 파도가 다 부서져도 좋다. 지금껏 너무 많이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 창비 “때때로 그는 내게 있어서 사랑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게 규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규호의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껏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몇번이고 나에게 있어서 규호가, 우리의 관계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특별한 어떤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순도 백 퍼센트의 진짜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온갖 종류의 다른 방식으로 규호를 창조하고 덧씌우며 그와 나의 관계를, 우리의 시간들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했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규호라는 존재와 그때의 내 감정과는 점점 더 멀어져버리고야 만다. 진실과는 동떨어진 희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 소설 속 가상의 규호는 몇번이고 죽고 다치며 온전한 사랑의 방식으로 남아 있지만 현실의 규호는 숨을 쉬며 자꾸만 자신의 삶을 걸어나간다. 그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모든 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지난 시간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여실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 화양연화의 그림자를 더듬거리며 깔깔 웃다가 가슴을 부여잡다가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  문학과지성사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지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1~3장). ... 사람은 법적 주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례를 통해 재생산되는 성스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랜 합리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주술로부터 풀려났으며, 그 결과 신이나 정령 같은 전통적인 숭배의 대상들은 그 절대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 개인이다. 인격 human personality 은 한때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이 광휘를 잃은 시대에 여전히 신성하게 여겨지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격하게 말해서 영혼과 정신은 같지 않다. 정신적인 특질들은 결국 육체에 의존하며, 그만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사람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가 그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벗들은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겠지만, 그래도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정을 지탱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억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정을 순수한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다. 이는 우정이 그만큼 많은 결별의 계기들을 품고 있다는 말도 된다.” “절대적 환대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이다. 환대가 사회 안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행위라면, 환대에 보답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가 받은 것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람의 지위를 박탈하는 일은 법의 제정과 집행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 이전에, 그게 어떤 일을 당하건 그를 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도록,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연대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