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이동, 레이첼 보츠먼

신뢰 이동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레이첼 보츠먼 지음 /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신뢰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적 신뢰 local trust 의 시대로,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살던 시대다. 두 번째는 제도적 신뢰 institutional trust 의 시대로, 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해서 지역 공동체 안의 교환을 벗어나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가 구축된 일종의 중개인 신뢰의 시대다. 세 번째는 분산적 신뢰 distributed turst 의 시대로, 우리는 아직 그 시대의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신뢰와 위험은 남매 같다. 신뢰는 우리를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의 틈새로 끌어당기는 놀라운 힘이다. 나이키의 모토 'Just do it(그냥 해버려)' 처럼. 쉽게 말해, 신뢰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신뢰에 대한 내 정의는 단순하다. 신뢰는 미지의 대상과의 확실한 관계다."

"앞으로 온라인 신뢰 과정은 계속 빨라지고 더욱 똑똑해지고 더욱 넓게 확산될 것이다. 좀 더 정보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좋은 일이다. 변호사를 고용하든 집을 팔든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든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부분을 잃어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제도가 실패하면 항상 대안이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분산적 신뢰만으로는 극단적인 포퓰리즘이나 급진적인 정치 지도자들의 위험한 정책이나 분열을 조장하는 국가주의의 부활을 막을 순 없다. 다만 새로운 분산적 신뢰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에 대한 요구와 선호도에 맞게 구성하고 재구성하면서 앞으로 비즈니스와 정부, 미디어와 주요 제도에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하고 폭넓게 책임지는 방식으로 사람을 우선에 두는 시스템을 다시 설계할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혁신이 급속히 변화하고 발전하는 기술 환경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고 불가능했던 일들이 단시간에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는다. 인간은 본래 신뢰 도약에 적응하도록 타고났다. 그러나 요새는 여러 영역에서 점점 빠르게 아찔한 수준으로 도약하느라 항상 '뉴비(초보자)'로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또 하나의 난관에 부딪힌다. 전례 없는 변화의 속도를 받아들여 그 속도에 맞는 신뢰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다."

"분산적 신뢰의 세 번째 문제는 봇부터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기술이 사람들을 익명화하거나 다른 사람을 신뢰할 필요성을 완전히 제거하려 한다는 점이다. 인간이란 뒤틀리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한 존재이지만 신뢰를 가능하게 해주는 주체도 바로 인간이다. 기술이나 수학이 아니다. 인간 편집자보다 자동 검색 엔진을 신뢰하거나 아바타나 프로그램으로 설정된 알고리즘이 관리자 역할을 대신하면 신뢰가 정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인가의 실망과 경이는 어떻게 될까? 이것은 신뢰를 배우는 과정이지 신뢰 그 자체가 아니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은 채 신뢰를 얻고 다시 회복하는 기술을 어떻게 기를 수 있겠는가? 때로는 신뢰를 회복하려면 느린 치유 과정과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결국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우리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상대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신중해야 한다. 분산적 신뢰에서는 신뢰 휴지 trust pause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자동으로 누르고 옆으로 넘기고 공유하고 수용하기 전에 잠시 차분히 생각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다. 이 사람이나 정보나 대상이 신뢰할 만한가? 이들이 무엇을 하거나 전달할 거라고 신뢰하는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 사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나만의 소박한 방식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

나로 인해 더해지고 옮겨가고 굳어지는 신뢰에 나는 스스로 얼마만큼 책임을 지고 있는지 돌아본다. 작년부터 비슷한 주제와 소재를 다룬 책을 여러권 읽었는데 그중 이 책의 통찰이 가장 돋보였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해피투게더 (1997)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인턴 (2015)

2015년 11월 4일 수요일 10개 일간지 1면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