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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열병/신춘시즌 단상

http://media.daum.net/series/112369//newsview?seriesId=112369&newsId=20131218210307746 [2030 세상보기/12월 19일] 신춘시즌 단상 한국일보   |   백가흠 소설가   |   입력   2013.12.18 21:03 신춘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 당선자들에게는 개별통보가 갖거나 마감이 늦었던 곳은 속속 당선자들이 가려지고 있을 것이다. 허나 아직도 응모자들은 간절하게 연락을 기다리며 올해 신춘문예의 주인공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론 낙선에 대한 불안한 걱정도 늘어갈 것이다. 문청에게 신춘문예는 어쨌든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고, 문학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올해에도 나는 한 곳의 예심을 맡았다. 셋이서 수 백 편이 넘는 응모작을 하루 만에 읽고 본심에 올릴 작품을 고른다는 것이 어쩜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응모를 한 사람들은 그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허나 온종일 본심에 올릴 두 세편을 가려내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선자는 한 명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내게 할당된 작품에서도 당선, 단 하나의 작품만 고르면 되는 일인데, 그 작품은 대개 눈에 확 들어오기 마련이다. 1차로 정독할 작품을 추린다. 그 말은 떨어뜨릴 작품을 고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 작품량은 10분의 1로 줄어든다. 다음, 거른 작품을 정독한 후 각자 두세 편을 본심에 올리는 방식을 취한다. 예심을 하며 작품 모두를 끝까지 정독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럴 이유도 없다. 대개는 도입부분과 결말을 보는데 그곳에 응모자의 글쓰기 수준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응모자들이 그렇게 소설을 읽고 어떻게 소설의 진위를 가려내겠느냐 묻는다면, 가려낼 수 있다고 난 자신할 수 있다. 신춘문예는 단 한 명의 당선자만 가려내면 되는 일이고 그것은 본심 위원들이 할 일이니

동사서독 리덕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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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典有云 旗未动 风也未吹 是人的心自己在动" "변하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이다." "얼마 전에 어떤 여자가 술 한 병을 주었는데 술 이름이 취생몽사야. 마시면 지난 일을 모두 잊는다고 하더군. 난 그런 술이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어.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는 말도 하더군.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이 새로울 거라 했어.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 "어떤 사람들은 떠난 뒤에야 사랑했었다는 걸 깨닫죠." "그와 혼인 했을 줄 알았는데 왜 하지 않았소?" "날 사랑한다고 말을 안했어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소."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말해주지 않았어요. 너무 자신만만했어요. 꼭 그와 혼인할 줄 알았는데 난 그의 형을 선택했어요. 혼인하던 날 같이 가자는 걸 거절했죠. 왜 잃고 나서야 얻으려고 하죠?" "사랑에 승부가 있다고 해도 그녀가 이겼다고는 생각 안한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졌다. 난 이 여자 때문에 복사꽃을 좋아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때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구양봉의 소식을 궁금해해서 난 구양봉을 만나러 간다. 구양봉이 있는 한 난 매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얼마 후에 그녀는 죽었다. 죽기 전에 술을 주면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양봉이 자신을 잊어 주길 바랬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해부터 난 많은 일을 잊고 복사

블루 재스민 (2013)

'Blue moon.' '매우 오랜 기간'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블루문의 선율과 함께 시작된 그 인연은 악연이 되어 아주 오랜 기간 재스민을 뒤쫓아다닌다. 과거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 오지는 재스민을 원망하듯 쏘아붙였지만 정작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것은 그녀였다. 한 사람의 영혼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그토록 섬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여배우가 또 있을까. 분명 잔잔한 영화였지만 어제와 오늘, 천국과 지옥, 환각과 망각을 오가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 내 마음도 함께 오르내리느라 분주한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모모에서 또니랑 같이 본 영화다. 겨울바람이 차던 그때 함께 본 '피나'가 마지막 영화였으니 거의 1년만이었던 셈. 올 들어 다른사람과 영화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뜻밖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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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앞 전광판에 흐르던 활자들. '4대악 근절' 같은 거창한 표현 사이에 잠깐잠깐 모습을 드러내던 글귀들. 외면하려 해도, 애써 잊어보려 해도 여전히 맘 속에 환한 생각들에 선잠 드는 나날들. 낙화도 결코 쉽지 않다. 지는 것조차 어려운 한 송이 꽃 때문에 겨울 바람이 아프다. 오늘 내게는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그 어떤 변곡점이 엄습하더라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귀가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 내 인생의 절반보다도 긴 세월을 그 집에서 살면서 나는 수없이 그 길을 걸었다. 때론 생각하면서, 때로는 아무 것도 떠올리지 않으면서. 스물 다섯, 십이월의 첫날. 시절이 쌓인 나의 귀갓길 위에서 생각했다. 아니, 상상했다. 너무도 듣고 싶은 나머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이야기들과 그 대답들을. 아마 결코 듣지 못할, 그렇지 않을 내용들을. 그 사람의 목소리로 상상했다. 이제껏 들어온 목소리 만으로도 원하는 낱말들과 바라는 문장들을 환청처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질없는 생각으로 마음을 데우면서 찬 공기 빼곡한 겨울 밤길을 걸었다. 분명 나는 마음으로 울고 있었는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초등학교에 다다랐을 무렵부턴 내가 울고 있음에도 울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아야만 한다고 느꼈다. 눈물이 날 만큼 아프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누군가를 위한 눈물이 이미 동났기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쌀쌀한 밤공기 탓을 하고 싶었다. 모퉁이를 돌아 타코야끼를 파는 청년을 만나면 타코야끼를 열 개 사면서 물어볼 작정이었다. "눈물이 나고 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건 춥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오늘은 청년도 나오지 않았다. 어딘가 행복해 보이는 그 청년이 답을 줄 것만 같은 확신에 더 가까운 기대가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확신도 기대도 전부 속절없는 허상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태 모르겠는 나와 당신에 대한 확신이나, 당신에 대한 기대나, 내일에 대한 확신이나, 삶에 대한 기대나 불완전한 그대로가 가장 완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흐르는 것이 두렵다. 뜻밖의 내일로 가게 될까봐 무섭다. 스물 다섯의 마지막 한 달동안 너무 큰 변화에 압도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해피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p.22)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p.81) 맞아요. 그랬어요. 십 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년 이맘때는 어떨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다음 여름에도 햇살이 이렇게 뜨거울지, 어떤 노래가 유행할지, 다음에는 어느 나라의 이름을 가진 태풍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나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바라봤다. 호수 건너편, 메타세쿼이아가 서 있는 세계의 끝까지 같다가 거기서 더 가지 못하고 시인과 여자친구는 다시 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무척 행복했고, 또 무척 슬펐을 것이다. (p.47) -세계의 끝 여자친구 우리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우리의 꿈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