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리덕스 (2008)







"佛典有云 旗未动 风也未吹 是人的心自己在动"


"변하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이다."

"얼마 전에 어떤 여자가 술 한 병을 주었는데 술 이름이 취생몽사야. 마시면 지난 일을 모두 잊는다고 하더군. 난 그런 술이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어.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는 말도 하더군.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이 새로울 거라 했어.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어?"

"어떤 사람들은 떠난 뒤에야 사랑했었다는 걸 깨닫죠."


"그와 혼인 했을 줄 알았는데 왜 하지 않았소?"
"날 사랑한다고 말을 안했어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소."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말해주지 않았어요. 너무 자신만만했어요. 꼭 그와 혼인할 줄 알았는데 난 그의 형을 선택했어요. 혼인하던 날 같이 가자는 걸 거절했죠. 왜 잃고 나서야 얻으려고 하죠?"

"사랑에 승부가 있다고 해도 그녀가 이겼다고는 생각 안한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졌다. 난 이 여자 때문에 복사꽃을 좋아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때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구양봉의 소식을 궁금해해서 난 구양봉을 만나러 간다. 구양봉이 있는 한 난 매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얼마 후에 그녀는 죽었다. 죽기 전에 술을 주면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양봉이 자신을 잊어 주길 바랬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해부터 난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난 할 일이 없을 땐 백타산 쪽을 바라보았다. 옛날에 그곳엔 날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다. 취생몽사는 그녀가 내게 던진 농담이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전에 늘 말했다. '갖지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고."



-

醉生夢死: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 아무 의미 없이, 이룬 일도 없이 한평생을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야간슬로프에서 보드와 씨름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기어코 영화관으로 향했다.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보람은 있었다. 어린 마음으로는 어지럽기만 했던 영화가 비로소 피부로 다가왔다.
마음도 머리도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가끔 이렇게 영화가 왜 종합예술인지를 러닝타임 내내 증명해내는 수작들이 있다. 왕가위 감독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생각했다. 불과 십분 거리에 있는 주소로 마음을 수없이 움직이면서 말이다.

ASHES OF TIME. LES CENDRES DU TEMPS.
잿더미로 변해버린 시간 너머로도 기억할 수 있는 단 한가지가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겐 있을까. 복사꽃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갖지 못하고서도 잊지 못할 그 무엇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승부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러니 애써 잊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해피투게더 (1997)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인턴 (2015)

2015년 11월 4일 수요일 10개 일간지 1면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