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 2016




데이브 존스(다니엘), 헤일리 스콰이어(케이티)







When you lose your self-respect, you're done for.



I'm not a client, a customer, nor a service user.
I am not a shirker, a scrounger, a beggar nor a thief.
I am not a national insurance number, nor a blip on a screen.
I paid my dues, never a penny short and proud to do so.
I don't tug the forelock, but look my neighbour in the eye.
I don't accept or seek charity.
My name is Daniel Blake. I am a man, not a dog.
As such, I demand my rights. I demand you treat me with respect. 
I, Daniel Blake, am a citizen, nothing more, nothing less. Thank you.



=


1.
다니엘 블레이크는 가난할지라도 마음만큼은 부자였다.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의 유언 아닌 유언처럼 살아온 꾸밈없는 사람이었다. 세간을 다 내놓으면서도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 햇살이 드는 바다만큼은 팔지 않았던 낭만주의자였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할 줄 아는 선량한 시민이었다.

이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과, 그가 제도 때문에 조금 더 빨리 세상과 작별해야 했다는 점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가슴이 먹먹했다.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이름대신에 그 어떤 이름을 넣어도 성립되는 이야기였다. 복지센터에서 유일하게 다니엘을 인간으로 대해준 여직원의 말처럼 늘 좋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는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양보할 줄 알고, 기다릴줄 알고,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보다 빨리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복지부동'의 껍데기를 짊어지고 끙끙대는 다니엘과 케이티는 영국 국민이다. 무덤에서 요람까지를 보장한다는 사회보장제도의 고향 말이다. 이 복지 천국의 민낯은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 부러웠다. 적어도 그 곳의 약자들은 그들이 누려야 할 것이 '당연한 권리'임을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리를 아는 자들에게는 투쟁할 명분이 있고 희망이 있다.


2.
영화가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감정의 둑을 무너뜨리는 장면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푸드뱅크에서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케이티가 통조림을 땄을 때다. 그녀는 퀭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한 뒤 통조림 음식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입으로 밀어넣었다. 밀어넣었다거나 쑤셔넣었다고밖에 쓸 수 없는 동작이었다. 생존을 위한 본능 그 자체였고, 어쩐지 먹었다고 하기에도 머쓱할만큼 절박한 행동이었다.

물건을 훔쳐 마트 매니저에게 불려간 케이티의 가방에서 생리대가 나올 때도 마음이 아렸다. 한번 생계의 벽을 타고넘은 가난은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고 몰아닥친다. 몇달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깔창 생리대' 사태도 그런 현실을 보여줬다. 직원은 그런 케이티를 딱하게 여겨 그냥 보내줬다. 도망치듯 마트를 벗어나는 그녀에게 보안 요원은 수상쩍은 전화번호 하나를 건넸다. 그로 인해 케이티는 몸을 팔로 나서고 다니엘에게 들키기까지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한다. 나는 그녀 마음이 얼마나 바닥까지 내동댕이쳐졌을지 감히 가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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