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레인, 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The brain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 우리가 우연히 속하게 된 세계가 조각상을 깎듯이 우리를 다듬는다. p. 18 물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당신이다.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당신의 버전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상수가 하나 있다. 바로 기억이다. p. 34 요컨대 어느 순간이든 우리의 시각 경험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보다 머릿속에 이미 있는 것에 더 많이 의존한다. ... 심지어 외부 데이터로부터 격리되어 있을 때에도 뇌는 계속해서 나름의 광경들을 산출한다. 세계를 없애버리더라도, 쇼는 계속된다. p. 77 실재 세계는 풍부한 감각적 사건들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뇌가 손전등으로 대상을 비추듯이 고유한 감각 능력으로 세계를 비추는 것이다. p. 86 그녀는 이른바 '공감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공감각이란 감각들(일부 경우에는 개념들)이 뒤섞인 상태를 뜻한다. 공감각의 유형은 다양하다. 일부 사람들은 단어에서 맛을 느낀다. 소리를 듣고 색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각적 운동을 소리로 감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체 인구의 약 3퍼센트가 이런저런 형태의 공감각을 경험한다. ... 공감각은 뇌의 담당 구역들, 이를테면 허술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두 구역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선의 산물이다. p. 87-88 당신의 뉴런들과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뉴런들은 상호작용하면서 거대하고 변화무쌍한 초유기체를 이룬다. 우리가 경계를 그어 당신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큰 연결망 속의작은 연결망일 뿐이다. 인류의 미래가 밝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인간의 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야 마땅하다. 기회들뿐 아니라 위험들도 연구되어야 한다. 우리 뇌의 설계에 새겨진 진실을 피할 길은 없으므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p. 227 현재 우리는 뇌가 소화할 수 있는 데이터 유형의 한계를 모르고, 그 한계가 존재하는지조차도

당분간 이사

구글 블로그에 동영상을 올리는 방법이 너무나도 번거로운 관계로 여행기를 쓰는 동안 브런치로 이사하기로했다. 다시 돌아올지 말지, 아마 여행기 작성이 끝나면 정해질 것 같다. 잠시 안녕! https://brunch.co.kr/@suminism

프롤로그: 아름다운 이별, 모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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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바다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어가는 물개. 퇴사한 나를 닮았다고나 할까.  20170628, San Christobal Island , Galapagos, Ecuador 사랑했다. 그것도 꽤 열렬히. 이유라면 이유라 할 것들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그냥 좋았던 것 같다. 막연한 환상이나 무지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20대 초반이면 중요한 결정을 하기엔 퍽 어린 시기이니까. 당시의 열정은 맹목적이었다. 한 눈 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수차례 거절당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했다. 부족한 내 탓도, 피치 못할 상황 탓도 해 봤다. 끝끝내 받아들여진 건 한 해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자리에서 분명 날아갈 것처럼 기쁜 날들이 있었다. 매일이 새롭고 설렜다. 죽을 만큼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버텼다. 그럴 수 있었다. 푹 빠져서 허우적댈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한 해 두 해 세월이 쌓일수록 차츰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또 시들해졌다. 기쁜 날들만큼 괴로운 날들이 생겨났고,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 역전이 일어났다. 마음속에서는 잡다한 의문들이 꿈틀거렸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는 여기 적합한 사람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이 되어 가고 있는 걸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삶이 최선일까. 뜨거움이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초심이 제 빛을 잃은 건 아마도 그 공허하고 울적한 물음표들 사이 어디쯤부터였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기 전에 올려다 봤던 하늘. 꽃나무가 참 예뻤다. 한국을 떠날 때의 푸르른 가로수 만큼이나. 20170823, Victoria Falls, Zimbabwe 오랫동안 전부라고 믿었던 것들과 서먹해지자 삶은 정물 같기만 했다. 어쩌면 그게 대다수의 성숙한 어른들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생활이자 일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다. 그래도 아프고 슬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문득 내가 커다란 갈림길 앞에서 대개 안주를

편리를 포기할 각오는 됐나요

편리를 포기할 각오는 됐나요 문이 열리자마자 후끈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발 디딜 틈 하나 없어 보이는 안쪽을 향해 기어코 네댓 명이 몸을 욱여넣었다. 옷자락만큼 구겨진 얼굴들이 무언가를 보고는 이내 더 찌푸려진다. 전동휠체어다. 출근길 만원 전철 한 구석에 그게 있었다. 휠체어 위에는 모자를 푹 눌러쓴 노년의 남성이 좀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은 자꾸만 그의 머리 위로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를 힐끔거렸다. 환승역에 다다르자 밀치듯 빠져나가는 인파 사이에서 그는 꽤나 불안해보였으며 사람들은 살짝 불편해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편리와 효율이 조금 위협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불의에는 눈을 쉽게 감고, 불편에는 눈에 불을 켠다. 그게 남들보다 수월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세상은 가르친다.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것은 그저 적당한 불편이다. 소문난 맛집이라면 삼복더위에도 한 시간 넘게 줄지어 기다릴 줄 안다. 텃밭에서 찬거리를 직접 키우거나, 채식주의자를 자처한다. 2G폰으로 돌아가기도, TV를 없애기도 한다. 김용섭 칼럼니스트는 저서 ‘라이프 트렌드 2017-적당한 불편’에 ‘적당한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트렌드는 소비의 진화이자 소비자의 성숙’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적당한 불편은 대개 나를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의 미각을 위해 줄을 서고, 나의 건강을 위해 기르고 걸러 먹는다. 내 피로를 덜고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찾는다. 반면 적당하지 않은 불편은 이타적인 속성을 지닌다. 환경을 위해 분리수거를 하거나 텀블러를 쓰고, 필요한 이들을 위해 노약자석을 비워 두는 행동들이 그렇다. 준법 역시 불편 감수에 기초한다. 영국의 신학자 리처드 후커는 “불편함 없이는 변화도 없다.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도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남겼다. 견뎌야 할 불편도 습관이 들면 당연해진다. 내가 더 가져서, 더 잘나서가 아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 같이 행복하기 위해 당연하게 누려 왔던 것들

김민정,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야호 하고 만세를 부르는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필요할 땐 주먹처럼 쥐라던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울이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을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 단지 제목에 이끌려 산 시집이었다. 이렇게 쉽게 시를 쓰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장난치듯 늘어놓은 일상의 조각들 틈바구니에서 간혹 싸르르한 시구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트루먼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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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1998 코미디 ,  드라마 ,  SF   미국   103분   1998   .10.24  개봉 피터 위어 짐 캐리 (트루먼 버뱅크) We've become bored with watching actors give us phony emotions. We are tired of pyrotechnics and special effects. While the world he inhabits is, in some respects, counterfeit, there's nothing fake about Truman himself. No scripts, no cue cards. It isn't always Shakespeare, but it's genuine. It's a life. I know you better than you know yourself. You never had a camera in my head! Why do you think that Truman has never come close to discovering the true nature of his world until now? We accept the reality of the world with which we're presented. It's as simple as that. Who are you? I am the Creator-of a television show that gives hope and joy and inspiration to millions.  Then who am I? You're the star. Was nothing real? You were real. That's what mad you so good to watch.

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

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 지음/홍성광 옮김/열린책들 언젠가, 거의 1년 동안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이래로 작가에게는 자신이 과거에 썼고, 앞으로 쓸 수 있다고 느낀 문장 모두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말로 표현되지 왆고 글로 쓰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언어가 그로 하여금 깊이 숨을 쉬게 했고, 그를 세계와 새롭게 맺어 주었다. p.11 예로부터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밖에 있을 때 바로 제자리에 있다고 느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p.15 펜을 눌러 쓴 것, 펜의 이중(二重)의 교미욕, 잉크가 튄 얼룩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격렬한 긴장. 종이는 늘 새롭게, 번번이, 헛되이 공격당하는 것 같았다. p.79 처음 글을 쓸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세계를 상(像)들의 신뢰할 수 있는 연속으로 생각했다오. 나는 그 상들을 바라보고, 하나하나 묘사하기만 하면 되었지.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상들의 윤곽이 흐릿해졌고,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귀 기울여 듣게 됐다오. p.106 그런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텍스트가 있는데 나만 빈손인 거야. 그런 상황에서 완전히 무감각한 문장으로 이미지도 리듬도 없이 꿈이 끝나 버렸을 때 나는 영원히 글스기를 금지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오. 더 이상 자기 텍스트를 가져서는 안 된다! p.108 나는 소설의 형식으로 시작했다! 계속한다. 그대로 놓아둔다. 반대하지 않는다. 서술한다. 전해 준다. 소재들의 가장 피상적인 부분을 계속 가공하고, 그 숨결을 느끼며, 그것을 다듬는 자가 되고자 한다. p.121 = 쓴다는 행위의 고통과 번뇌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라는 고요하고 열정적인 행위에 몰두하는 작가의 곁에서 그저 고요하게 흘러가는 일상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