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D.H. 로렌스의 정의에 따르면 그녀는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연인 같은, "다른 것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자였다-그것은 랭보가 청춘 시절 "la vie est ailleurs(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라고 했던 말의 메아리와 같다. 하지만 다른 것에 대한 갈망을 병이라 한다면, 이런 병은 어디서 생겼을까?
p.9

사랑의 첫 단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욕망은 사소한 실마리에서도 피어났고, 공백을 메우고자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p.80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서는 나쁠 수가 있다-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
p.140 

에릭은 듬뿍 사랑받거나 미움받는데 저항하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앨리스가 관계에 의심을 품을 때를 감지하는 촉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 전에는 그녀의 감정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이것이 의식적인 현상이라면, 그 남자가 며칠간 앨리스를 무시하는데는 극단적인 데가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화내기 직전에 물러서거나 사과하는 식이었다.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 남자의 행동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에릭은 처음 만날 날과 똑같이 복잡해 보였다.
p.149

위니캇과 피아제의 이론을 앨리스와 에릭에게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르지만, 영속성이라는 문제는 공통된다. 여기서는 대상 영속성이 아닌 사랑의 영속성 문제다. 이 사랑의 영속성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빈에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다른 정인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릿 케이크를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뿐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는 믿음.
p.159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p.171-172

그 남자는 무방비적으로 사랑하는 그녀의 방식이 두려웠다. 그 남자는 애정을 받는 것이 거북해서, 사무실에 가서야 앨리스에 대한 감정을 끄집어내 생각했다. 그녀와 같이 있을 때는 감정 표현은 고사하고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의 상냥함에 화답할 시간이 필요했다. 수화기를 잡고 있을 때면 혀가 굳어서, 대답할 말을 미리 적어놔야 하는 사람처럼.
p.194-195

사랑의 동기 중 덧없는 요소를 다 뺐을 때, 앨리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육체와 지성과 가진 것들을 제하니, 어떤 사랑할 이유가 남았을까?
 데카르트처럼 남는 게 없었다.
 그녀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p.221

앨리스는 고민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그녀가 에릭을 아무리 좋아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그 남자에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섬을 낙원처럼 경험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기회가 있느냐는 데 달려 있었다.
p.244 

그녀는 에릭하고서는 왜 비슷한 과정을 체험하지 못하는지 의아했다. 그와 만날 때는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거나, 매몰차게 견해가 갈리기 쉬웠다.
 앨리스는 필립과 아주 유쾌한 하루를 보냈고, 그와 함께했을 때의 자신이 자신답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그날 저녁 에릭에게도 그런 기분으로 대해보았다.  p.311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p.312 

하지만 이 이야기가 아주 순수하게 들릴지 몰라도, 필립이 앨리스의 영혼에 사로잡힌 데에는 잠재적으로 어두운 측면도 있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영혼의 개념이 감정과 연결되었다면, 감정은 곧 쾌감보다는 아픈 감정으로 통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강렬한 경험이라 하면, 행복해서 샤워를 하면서 휘파람을 불거나 정원에서 노래하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곧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p.328-329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가정하자. 그는 전화에 응답도 없고, 약한 면을 드러내지도 않고, 가치 있는 일을 함께하지도 않는다. 무슨 문제인가. 이런 면모는 사소한 부분이어서 그의 성격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곧 감수성이 예민한 눈빛, 복잡한 상점가에서 손을 잡아줄때의 느낌, 영화를 보면서 우는 모습, 우리가 너무도 공감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니다.
  앨리스는 항상 에릭의 성격을 독창적으로, 어쩌면 빗나간 방법으로 읽었다. 상대적으로 사소한 면을 그 남자의 본질이라고 판단했다.
p.364 

엘리스가 에릭에게서 사랑한 것은, 역사적으로 변천해온, 그녀 안에 없는 퍼즐 조각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길이 교차한 경우와 같은 운명이었다. 두 길은 교차점에서 짧게[여러면에서 아주 유쾌하게] 만났다.
 고통은 성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함께할 수 있는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한동안 합치되었던 것은, 넓고 갈림길이 많은 길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에릭이 줄 수 있는 것이 더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p.378



=

유레카!
라고 나는 외쳤고 몽순이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 정해진 결론이 옳다는 확신을 내게 심어주려 애써 덤덤한척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뭔가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점들이 가감없는 단어와 적확한 표현들로 낱낱이 분석된 느낌이다.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를 위로하거나, 혹은 꾸짖는다.
필립 없이도 에릭을 떠날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겠지만,
답안지를 보고도 오답을 오래 고수하는건 분명 미련한 일이다.

쉽게쉽게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해피투게더 (1997)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인턴 (2015)

2015년 11월 4일 수요일 10개 일간지 1면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