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거의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번역/ 글항아리


세계행복보고서는 최신 ‘행복’ 연구, 즉 갤럽 조사, 세계가치조사, 유럽가치조사, 유럽사회조사 등을 모두 합계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덴마크가 또다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고, 핀란드가 2위, 노르웨이가 3위, 스웨덴이 7위로 바싹 뒤쫓았다.
p.11

북유럽의 모든 것을 향해 전 세계는 더 뜨겁게 열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현대의 바이킹 문화는 전례없이 승승장구했다.
p.13

“세상 어딘가에 평범한 재능과 소득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바이킹으로 태어나고 싶을 것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북유럽을 주제로 한 특별호에서 약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P.21

다음으로 실행에 옮긴 전략은 ‘긍정적 편협주의’라고 볼 수 있다. 덴마크는 잔이 반이나 찼다는 세계관을 취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잔이 ‘그때’ 반이 차 있었기 때문이며, 그런 세계관이 오늘날까지 떠들썩하게 치켜세워지는 덴마크 사회의 성공 비결로 보인다.
물론 수많은 요인이 합쳐져 국민 정서를 만든다.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립성을 향한 이 같은 편협주의적 충동과 그에 수반되는 민족낭만주의 성향은 지금도 덴마크스러움의 결정적 요소다. 이는 모든 덴마크인이 지금도 외우는 다음의 말로 요약된다.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p.40

덴마크인은 나이, 계층, 세계관과 상관없이 사이좋게 지내는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듯싶다. 평등은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덴마크가 기본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중산층이며 흔히 말하는 것처럼 사실상 계급 차별이 없는 사회인 까닭도 있다.

그것은 홀스트의 시구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다”처럼 모든 덴마크인이 외우고 있으며 N.F.S. 그룬트비가 쓴 문장이다.
“부자가 적고 가난한 사람은 더 적을 때 우리 사회는 평등을 이룬 것이다.”
p.48

한 사회가 웬만큼 높은 수준의 평등을 이루면 그 이상의 평등은 행복을 감소시킬 수도 있을까? 부의 척도에서 증명됐다시피 사람이 기본 욕구를 충족시킬 정도의 평등을 얻으면 그 이상의 평등은 반드시 그만큼의 행복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 걸까? 그래서 덴마크인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가장 평등하지는 않은 걸까?
p.54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가장 사교적이고 또 사람을 제일 잘 믿는 것은 우연일 리 없다.
P.60

“‘나 세금 많이 내’라는 자부심의 문제입니다. 자선처럼 지위의 표현이죠.”
p.89

얀테의 법칙과 함께 덴마크의 순응주의를 만드는 주된 요인이 두 가지 더 있다.
휘게hygge와 폴켈리folkelig다.

휘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하고 편안한 덴마크 고유의 아늑함과 유쾌함을 뜻하며, 전제 군제에 버금가는 끊임없는 압력을 행사하며 순응을 요구하는 엄격한 사회적 의식들과 함께 실제로 고도로 성문화되어 있다. 폴켈리는 일종의 광범위한 문화 대중주의로, 덴마크 주류 문화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p.133

“사람들은 휘게를 할 때 경쟁과 사회적 평가의 부담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한다.” 이런 식으로 휘게는 스스로 무는 사회적 재갈처럼 본이며, 유쾌한 분위기를 공유한다는 개념보다는 자기만족의 느낌이 더 강하다. 또한 린네트는 휘게가 “사회 통제의 수단 역할을 하고 고유한 태도의 위계를 만들어 휘게를 할 수 없다고 간주되는 사회집단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암시한다”고 이야기한다.
p.136

행복은 덴마크에서 한 번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였던 적이 없다. 그래서 행복이 실현될 때 더욱 감사하는지도 모른다. 덴마크인은 파란만장한 상실의 역사를 겪었기에 삶의 작은 기쁨에도 감사할 줄 안다. 아마 덴마크인의 행복은 실제로는 행복이 아니라 훨씬 더 소중하고 오래가는 무언가이다. 자기 운명에 만족하고 사소한 욕구를 채우며 높은 기대를 자제하는 만족감.
p.155

“덴마크의 미래에서 어떤 점이 걱정됩니까?” 그들의 답변 중 한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했다. ‘현실 안주’였다.

“신뢰에는 단점이 있습니다. 너무 낙관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점이죠. 이 복지국가에 이처럼 큰 문제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고 어떻게든 전부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듯 합니다.”
p.165

샤츠가 말하기를, 핀란드인의 ‘할 수 있는 일은 꼭 한다’는 태도는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핀란드에는  미래 시제가 없어요. 영어나 독일어로는 ‘이 일 또는 저 일을 할 거야’ 혹은 ‘그 일을 했어야 하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핀란드인은 ‘미래를 그때 그때 다르게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할 겁니다. 하거나 또는 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p.184

홀에 따르면 ‘고맥락high context’ 문화권 사람들은 같은 종류의 기대와 경험, 배경, 심지어 유전자까지 공유한다. 그들에게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덜 중요한데, 서로는 물론 자신도 흔히 겪는 상황을 이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맥락 문화에서 말은 더 큰 의미를 지니지만 덜 필요하다. 한편 수백 개의 국적, 인종, 종교가 섞여 있는 런던 같은 저맥락 문화low context에서는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서로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더 많이 필요하다. 공통점이 더 적으며, 무언의 추정이 더 적게 이루어지고, 메워야 할 차이도 더 많다.
각각 정도는 다르지만 모든 북유럽 나라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모두 비교적 단일하며, 따라서 고맥락 문화다.
p.198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취도 말고도 핀란드의 성취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런 성과가 핀란드의 모든 학교에 고루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핀란드는 학교 간 학업 성취도 격차가 제일 적은 나라다. 성취도가 제일 높은 학교와 제일 낮은 학교 간 격차가 4퍼센트에 불과하다.
p.252

노동시장 측면에서 핀란드의 가장 유리한 점 한 가지는 확실히 세계에서 남녀가 제일 평등한 사회라는 것이다. 핀란드 여성은 유럽 최초로 튜표권을 얻었으며(1906), 의회의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하는 것이 관례다. 여성 총리와 대통령도 모두 경험해봤다. 2011년에는 핀란드 대학 졸업자의 6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었다.
p.266

그들의 저력은 단순한 지구력이나 시수 이상, 고통과 시련 앞에서 단순히 남자다운 척하는 인내심 이상이었으며, 끝 모를 회복력과 뛰어난 지략, 자부심뿐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연마한 기민한 정치적 실용주의를 보여줬다. 허약한 문화의식을 지닌 신경질적인 탈식민지 피해자들을 생각하고 왔지만, 오히려 절제심 강한 보기 드문 영웅들을 만났다.
p.271

결국 북유럽 나라들이 이룬 성공의 상당 부분은 세 가지 요인 덕분이었다. 동질성, 평등주의, 사회적 결속. 아이슬란드는 이 모든 걸 충분히 갖추었으며, 어떤 부분은 북유럽 이웃 나라들보다 자질이 훨씬 많다.
p.286

다시 말해 한 나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작아질 수도, 서로 지나치게 긴밀해질 수도, 또 지나치게 단단히 엮일 수도 있는 듯하다. 강력한 사회관계망은 특정 환경에서는 측근끼리의 부패를 낳고 민주적 담론을 가로막는다. 실제로 밝혀졌듯이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도하게 북유럽화될 수 있다.
p.298

그날 내가 오슬로의 넓고 깨끗한 거리에 서서 받은 강렬한 인상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나라, 막대한 물질적 부뿐만 아니라 하나의 역사 안에 깊이 뿌리 내린 그 못지않게 소중한 시민의 화합이었다. 말하자면 견고한 민족정신 자본이다.
p.336

또한 덴마크와 스웨덴은 대립과 경쟁의 역사를 함께 겪은 까닭에 서로를 통해 자국을 바라보고 규정했지만, 노르웨이는 자기 나라만 신경 쓰는 경향이 있었다. 산과 바다라는 거대한 물리적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였다.
이런 분권화는 자연 환경에 대한 과도한 존중과 함께 노르웨이인을 이해하는 또 다른 열쇠다.
p.364

노르웨이인이 자연과 맺는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한 가지 사례는 최근 방송된 충격적일 정도로 지루한 TV 프로그램 두 개의 괄목할 만한 성공이었다. 첫 번째 방송은 오슬로에서 배르겐까지 가는 산악 열차 여행을 7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따라갔다. 그냥 열차 앞에 카메라 한 대를 고정해놓고 촬영했다.

방송은 역대 가장 인기 있는 노르웨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올랐는데, 내용은 죄다 풍경이었다.......
p.366-367

노르웨이인은 현대세계를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전통 의상 부나, 민속 무용, 말린 생선을 더 좋아했고, 안전한 과거 농경 시대로 돌아가 자연과 바다와 더불어 살고 싶어했다. 그때 석유를 발견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노르웨이의 전통인 지리적 인구 확산과 고립주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p.393

이처럼 아무 위협을 받지 않는 졸음, 평화, 안정감, 고요의 느낌도 당연히 북유럽 사람들이 누리는 안전감과 삶의 질, 더 나아가 행복의 핵심이다. 하지만 안전, 기능, 합의, 중용, 사회적 결속이 삶의 전부는 아니며, 단지 수많은 욕구의 토대일 뿐이다.
p.402

20세기에 스웨덴이 이룬 업적은 무궁무진하며 대부분 숭고하다. 합리주의자부터 경건한 세속주의, 산업 역량, 경제적 성공, 그리고 물론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 너그러운 사회복지제도라는 희망의 횃불까지. 지난 수백 년 내내 스웨덴은 자타 공인 세계의 사회적 실험실이었다.

최근 스웨덴이 행한 가장 대담한 사회적 실험은 다문화 분야였다.
p.408-409

‘라곰’은 덴마크의 허구적인 사회 선언문이자, 덴마크 이상은 아니더라도 스웨덴 사회(스웨덴어로는 ‘얀텔레그Jantelag’라고 한다)를 규정하는 얀테의 법칙과 확실히 관련이 있다.
p.423

스웨덴인은 서로 부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기 문제를 혼자서 끌어안고 묵묵히 고통을 견딘다. 유능함은 이런 성향의 한 가지 측면이다. 유능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으며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게 스웨덴의 궁극적인 이상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 심지어 도움을 주는 일도 낮은 단계의 사회적 금기에 속한다.
p.500

사실 스웨덴의 위대한 사회민주주의 여정은 수십 년 전에 실패로 끝났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봤고 정중하게 칭찬하는 동시에 그 나라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심 기뻐하는 나라, 스웨덴은 요즘 끝없는 정치적 변화를 겪고 있는 불확실성의 나라다.
p.530

지금 이 순간 서양은 우리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든 팽배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고 있다. 양극단에 있는 소련의 사회주의나 규제를 철폐한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피할 수 있는 시스템.

바로 북유럽 나라들이 답을 쥐고 있다.
p.538

전문가들에 따르면 행복의 한 가지 열쇠는 삶의 자율성이다. 즉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사치다. 북유럽 지역이 하나같이 행복도와 삶의 수준이 세계에서 제일 높고,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하며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진정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의지로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며, 그렇지 않다면
p.539-540

=

언젠가부터 북유럽은 현대 사회의 모든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이상적인, 어쩌면 그래서 환상에 가까운 해답처럼 여겨져왔다. 모두가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남녀의 차별이나 빈부의 격차 없이 대체로 부유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현대판 엘도라도. 작가가 쓴 대로 현대의 바이킹은 나머지 세계를 상대로 전례없는 승전보를 울리는 것만 같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더 그래보였다.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지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거리가 상당해서 깊이 들여다볼만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지만, 그들이 행복을 느낀 그 방식을 통해 나도 행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류의 단단한 사회적 재갈을 물고, 극단 없는 중간으로만 살아가는 삶. 재미있을까? 그 중간이라는 것은 사회경제적, 문화적 '평등' 측면에서는 더없이 건강해 보인다. 그러나 개개인의 삶으로 들여다보면 지나치게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피곤하게까지도 느껴지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평균적으로 안정된 삶은 단지 세금으로만 일궈진 것이 아니었다. 물질 외적인 포기와 희생 아닌 희생을 바탕으로 굴러가는 시스템. 나는 당장 세금조차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모든 것의 전제는 국가에 대한 신뢰인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로 이어질 것만 같다. 내가 믿지 못하는 국가라 힘이 없고, 복지 정책을 제대로 펼 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국가이기 때문에 내가 믿음을 줄 수 없는 것인지.

우리나라도 고맥락 문화이며 역사/문화적으로 부침이 많았으므로 표면적으로는 덴마크, 핀란드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우리와 그 나라들의 세계관을 갈라놓았는지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북유럽 국가들은 정말 자본주의에 대한 옳은 대안인지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해보고 싶다. 

마침 이 책을 무렵에 이런 기사들이 나왔다. 

-다문화로 인한 충돌은? (노르웨이 테러, 스웨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0040439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사실상 종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0048645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에 관해서는 k언니가 쓴 글이 가장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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