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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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 로맨스/멜로/드라마  한국 2001.02.03 개봉 101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김대승 (주연)  이병헌 ,  이은주 내가 마법 걸었어요. 이렇게 새끼손가락 펴게.  조심하고 싶었어요. 아는 척 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봐요. 첫눈에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건 지금 니 얼굴이나 니 몸메가 맘에 든다는 얘기거든.  근데 사랑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풍덩 빠지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을 알아보는 거지.  이 줄은 세상인데 이 세상 암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 왔구나.  - 미안해, 너무 늦었지? - 늦게라도 와줘서 고마워.  - 이번엔 여자로 태어나야지. - 그런데 나도 여자로 태어나면 어떻게 하지? - 그럼 또 사랑해야지 뭐.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 헤아릴 수 없는 확률로 시작되는 만남,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  의지로 다스릴 수 없는 마음, 인생의 절벽 아래로라도 함께라면 뛰어내릴 수 있는 믿음,  이 모든게 한데 모여 서로 사랑한다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개연성으로 인한 아쉬움은 중간중간 마음에 쏙 드는 연출이 수두룩해 상쇄되었다.  이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들으면 두 연인의 붉은 그림자만 생각날 것 같다.  유진 초이, 내 그대를 정녕 연기로는 깔 수가 없을 것 같소. 거듭 인정하오.

퐁네프의 연인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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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 (1991) Les Amants Du Pont-Neuf, The Lovers On The Bridge Director:   Leos Carax Writer:   Leos Carax Stars:   Juliette Binoche ,  Denis Lavant ,  Daniel Buain   | 온 도시가 음악으로 가득 찼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수 있는 거야 Quelqu'un vous aime. Si vous aimez quelqu'un vous lui dit demain: "le ciel est blanc".  Si c'est moi je reponds "mais les nuages sont noirs".  On saura comme ça qu’on s’aime. 하늘이 하얘. Le ciel est blanc. 구름은 검어. Mais les nuages sont noirs. 여기에 사랑은 없어! 사랑은 바람 부는 다리가 아니라 포근한 침대가 필요한 거야. 너는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형상이 될 거야.  벌써 작은 건 보이지 않아. 너의 미소는 참 아름다워.  하지만 그렇게 작은 미소는 이제 보이지 않아.  크게 웃어줘. 날 위해 모든걸 크게 해줘. 아무도 나에게 잊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어. 나는 너의 눈 위에 있고, 너의 입가 그늘 속에 숨어 있어. = 미친 사랑, 혹은 눈 먼 사랑이라는게 이런 걸까 싶다.  둘만의 다리 위에서 보는 불꽃놀이는 너무 모든 감각이 폭발해버릴 것처럼 황홀했다.  배를 타고 떠난 어딘가에서 두

혼자 살아보니 몸의 소리가 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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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보니 몸의 소리가 들리더라 나이 서른이 가까워 올 때 세대주가 됐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있는 ㄱ시와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ㅅ시에 두번째 직장을 얻게 된 덕분이었다. “딸, 굶어 죽는 거 아니니?” “쟤가 사람 사는 꼴을 갖추고 지낼 수나 있을까 몰라.” 신이 나서 부리나케 집을 구하고 번갯불에 콩 굽듯 이사를 마친 딸의 생존을,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그 우려들은 효력이 없어 보였다. 가족을 떠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고등학교 3년을 ㅇ시에서 보냈다. 스물두살에는 역시 학생용 공동주택이긴 했지만 유럽의 아기자기한 소도시에서 제법 건강하게 1년을 지냈다. 내게는 그 시간 동안 살아남은 기억이 있었다. 보란 듯이 잘 살아보겠다고 자신만만해했던 건 그래서였다. 독립은 몸까지 홀로 서는 것 내가 번 돈으로 내 이름을 건 공간에서 내 생활을 꾸려가는, 비로소 완전한 독립이었다. 독립기념일은 2017년 11월6일. 대출금으로 내가 빌린 것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편리, 그리고 자유였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구석구석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장소가 생기는 데서 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며칠간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자유 앞에 나는 맹세 같은 결심을 했다. 모든 여유를 오로지 나를 위하는 데 쓰기로 말이다. 첫번째 관리비 고지서가 날아오기도 전에 이것저것 많이도 벌였다. 중국어 학습지를 열심히 풀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책 읽는 모임에 가입하고, 수시로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글을 썼다.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시나브로 취하고 있었다. 혼자 사는 게 마냥 쉬울 리 없었다. 새로운 방식의 삶은 내가 머리와 가슴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때를 맞춰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다. 생필품과 식재료의 종과 양, 나의 잔고를 헤아려 장을 봐야 했다. 음식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해야 했으며, 아픈 몸도 직접 돌봐야만 했다. 모든 것이 당연했지만, 거의 처음이기에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럽지

이제니, 별 시대의 아움

별 시대의 아움 이제니 어제 익힌 불안의 자세를 복습하며 한 시절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이제 막 떠올랐다 사라져버린 완벽한 문장.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언어의 심연. 시대에 대한 그 모든 정의는 버린 지 오래. 내 시대는 내가 이름 붙이겠다. 더듬거리는 중얼거림으로, 더듬거리는 중얼거림으로. 여전히 귓가엔 둥둥 북소리. 내 심장이 멀리서 뛰는 것만 같다. 세계는 무의미하거나 부조리한 것이 아니다. 그냥 있는 것이다, 그냥 있는 것. 의심을 하려거든 너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너의 귀를 씻어라. 언제나 우린 멀리 더 멀리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 극동의 자퐁으로 가자, 극동의 자퐁으로. 그러나 그대여, 누군가에겐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이 극동이다. 일곱 계단의 정신세계. 식어버린 수요일의 요리를 먹고 얼굴을 가릴 망토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날들. 차라리 녹아내리기를 바라던 유약한 심정으로. 시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가 가진 단어를 검열하는 오래된 버릇. 무한반복되는 기하학적 무늬의 영혼을 걸치고 혼자만의 아주 작은 구멍으로 빨려들어갈듯한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어제의 기억에 단호히 마침표를 찍는 사람의 마지막 타들어가는 담배가 되고 싶다. 타닥 타닥 타닥. 질 좋은 담배는 이런 식의 싸구려 발성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싸구려 발상법에 익숙하다. 구토라도 하듯 목구멍에서 말들이 쏟아져내린다.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나비가 날고 있다. 너무 많은 바퀴 단 것들이 우루루 지나간다. 문득 비둘기 한 마리가 욕설을 퍼부으며 내 발치에 내려앉는다. 구구구 구구구. 구구단을 외우고 좀 울어도 좋을 날씨. 한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오래전 잃어버린 문장 하나가 입속에서 맴돈다. 이 거리에서 몇번 굴러야 할지 몰라 두 번만 굴렀다. 앞으로 두 번, 뒤로 두 번, 후회 반성 고쳐 말하기는 오래된 나의 지병. 얼룩이 남는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다. 한 시절을 훑느라 지문이 다 닳았다. 먼지 같은 사람과 먼지 같은

오은, 시간차공격

시간차공격 오은 기다리는 사람 찾아오는 것 시간에 금이 가던 순간 순간에 윤이 나던 시간 시간은 길지 않고 순간은 많지 않아서 금은 틈을 내고 윤은 무늬를 이루었다 시간은 촘촘하지 않고 순간은 아질아질해서 그 틈에 발이 빠진 적도 있었다 그 무늬에 넋을 빼앗겨 한데 어룽진 적도 있었다 기다리는 것 찾아오는 사람 문이 열렸다 공기가 들어왔다 몇 개의 단어가 사연을 품고 따라 들어왔다 하나의 몸뚱이에서 겹침이 일어났다 시간이 오직 순간이던 때가 있었다 순간이 시간을 꽉 채우던 때가 있었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벌써 찾아오고 난 뒤에 아직 기다리는 움직임이 있었다 충만한 상실감이 있었다 <유에서 유> 문학과지성 시인선 488 문학과지성사 = 그 공격 앞에 속수무책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동아시아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사람의 아주 작은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면 더 큰 세계에서 발전하려는 노력도 헛된 일이 될 것이다. p.13 그러나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p.26 나는 언제든 너의 몸에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 과거 여성에 대한 폭력도 같은 메시지를 깔고 있었다. 체벌을 비롯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반복적 폭력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언제든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메시지, 당신이 존재할 권리를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때리는 사람인 나라는 주장, 그렇게 힘으로 상대를 침묵시키고 상대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상대 안에 심으려 하는 시도다. p.30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리는 부모의 자유권이라기보다 자녀의 보호를 위해 부여되는 기본권으로 권리보다는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양육방식은 치외법권적 '천륜'의 영역이 아니며 인권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제재 대상이어야 한다. 비대한 국가를 선호해서가 아니다. 공공의 개입이 닫힌 방문 안에까지 이루어질 때에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로워지는 약자들이 가족 안에 있기 때문이다. p.57 친권은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고 가르칠 '의무'지 자녀에 대한 처분 '권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친권'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다. 법률상의 친권은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고 친권자인 부모가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친권은 박탈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p.105 해방과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 등으로 사회가 극심하게 변화하는 와중에 개인을 보호하는 유일한 안전망은 혈연 및 직계가족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문학동네 <최미진은 어디로> 나는 나의 적의가 무서웠다. p.31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p.33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해본 적 없고, 사랑을 물리친 적도 없다. 바보처럼 병들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외로이 살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저 여자가 천치 같다고 여겨진다. 천치 같지만 마음이 쓰린 것은 맞는다. 그건 아마도 저 노래의 멜로디 때문이겠지. 내가 지금 저 노래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가사가 아닌 멜로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나는 멜로디 때문에 가사에 속고 마니까. 멜로디 때문에 가사를 다르게 보니까. 지금 내 감정과 비슷한 것은, 여기에 적을수 없는 저 노래의 멜로디 뿐이다. p.153 왜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상이 되는 것인지. 왜 어떤 사람은 수치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염치를 생각하는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 p.167 <한정희와 나> 어수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때도 있었고, 이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썼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소설들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 주변에 널려 있는 제각각의 고통에 대해서, 그 무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자 노력했다. 그걸 쓰는 과정은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았다. 고통에 대해서 쓰는 시간들이었으니까......... 어느 땐 나도 모르는 감각이 나도 모르게 찾아와, 쓰고 있떤 문장 앞에서 쩔쩔맸던 적도 있었다. ... 작가는 숙련된 배우와도 같아서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 그릴 때도 다음 장면을 먼저 계산해야 하고, 또 목소리 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