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마음 한 철
마음 한 철
박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눈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 (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그럴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곳에 남아있을 그 이름들, 남몰래 새긴 흔적들.
무심한듯 그렇게 추억이 제법 쌓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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