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6의 게시물 표시

밀정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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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액션 한국 140분 2016 .09.07  개봉 김지운 송강호 (이정출),  공유 (김우진) 대한독립만세! 아무리 이중첩자라도 조국은 하나요. 마음의 움직임이 가장 무서운 것 아니겠소? 난 사람들 말은 물론이고 내 말도 믿지를 못하겠소.  다만, 내가 해야만 할 일,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믿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려야 할 지를 정해야 할 때가 옵니다.  이동지는 자신의 이름을 어느 역사 위에 올리겠습니까?  앞으로 내 시간을 이 동지에게 맡기겠습니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딛고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다시 만날 땐 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장담 못해. 알았어? 의열단의 이름으로 적의 밀정을 척살한다. 지옥에서 보자. 지금! 저는 의열단이 아닙니다. 제 입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억울합니다. 단원들 이곳을 다녀가다.  너는 이 나라가 독립이 될 것 같냐?  = 이육사,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 발 재겨 디딜 곳 없을 때 그가 고른 무릎 꿇을 곳. 위대한 본능일까. 영화의 무게는 특별출연한 이병헌의 대사에 모두 담겨있다. 독립투사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배포를 지닌 영웅들은 아니

나의 첫 번째 일본,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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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일본, 오키나와     남국의 복장을 한 피카츄들. 귀여워서 살 뻔 했다. 포켓몬들이 즐비하다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오키나와로 가기로 한 데는 여러가지 계산이 있었다. 우선은 돈 계산을 했다. 이런 저런 계획으로 돈을 알차게 모으기로 다짐했건만 잘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를 벗어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추려진 게 태국, 대만, 일본, 베트남 정도였다. 슈리성 무료 춤 공연 첫 순서. 아름다움이 가장 강조된 춤. 다이빙을 꼭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년에 한번씩 다니는 걸로는 매번 할 때마다 가망이 없을 거라는 불길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대만과 오키나와 정도로 목적지를 추릴 수 있었다. 틈나는 대로 대한항공 어플과 인터파크 항공 어플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야근날 밤, 26만원짜리 오키나와 왕복 대한항공 티켓을 발견하자마자 결제를 했다. 그 다음에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를 살살 꼬셨다. 그녀는 알까. 이 휴가가 내 생애 최초로 친구와 함께한 휴가였다는 것을. 다니는 동안 발이 되어 준 버스들. 시간표, 노선도 몰라서 한참을 해메었는데. 터미널 가니 정보가 많았다. 잔파 비치 근처의 터미널. 오키나와는 생각보다 큰 섬이었다. '오키나와에 갈거야!'라고 하니까, '어느 섬? 북부?'하고 묻던 일본인 친구의 아리송한 표정은 여행 책을 산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나는 주차를 할 줄 모르는, 반쯤은 장롱 속에 든 면허의 소유자였고 친구는 여행을 앞두고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운전은 꿈도 꾸지 말라는 신의 계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메마시떼, 도조 요로시꾸 오네가이시마스 국제거리의 비오는 야경 나홀로 일본에 도착한 건 9월 27일 밤이었다. 17호 태풍이 허겁지겁 지나간 터라 대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와서 조금 움츠러든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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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마터면 절필을 할 뻔했다. 절필을 하고 싶었다.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좋은 글을 만났기 때문이다. 간사한 마음이다. 거장의 반열에 드는 글쟁이들의 글을 읽을 때는 들지 않는. 닿을 듯 닿지 못할 것 같은 필력을 글을 읽어야 드는 그런 마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나 혹은 글쓰기를 좀 즐긴다는 사람들의 빼어난 문장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탁 하고 끈을 놓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욕심은 나는데 자신은 없어서다. 한때는 닮고픈 글들을 보면 힘이 나곤 했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튀기는지 알 듯 하면서도 도무지 모르겠다. 이런 괴상한 직접적 심정들을 뒤로하고 훌훌 떠나버린 언니는 '내가 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더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봐 괴로웠다는 식으로 회고했다. 그런 순간들이 내게도 찾아온다. 부쩍 빈도가 늘어난 지가 벌써 오래다. 그런데도 미동을 않고 있다. 나약함의 또다른 표출 방식이다.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동동 구르던 발 밑의 지반이 자꾸 약해지면 어느날 갑자기 흔적없이 끝없는 심연 속으로 허물어져내릴 것 같다. 겁이 난다.

죽여주는 여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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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2016 드라마 한국 111분 2016 .10.06  개봉 이재용 윤여정 (소영),  전무송 (재우),  윤계상 (도훈)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왜 이런 거 찍어? 돈 되는 거 찍어. 나처럼 늙어서 개고생하지 말고. 안 도와줘도 돼요. 돈 내줄 것도 아니면서.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차라리 잘됐네. 양로원 갈 돈도 없는데. 올 겨울은 안 추웠으면 좋겠네.  =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오갈데 없는 코피노 소년을 본능적으로 거둔 박카스 할머니와, 한쪽 다리가 없는 성인 피규어 제작자에게는 어떤 악의가 없다. 아마 이주여성지원센터 관계자는 규정상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겠지만, 습관처럼 도훈 입에서는 결백을 주장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가슴이 아팠다.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이상한 사람들도 아닌데, 곁눈질로 쏟아지는 싸늘한 시선을 당연하게 일상적으로 받아냈을 사람들. 그래서 위축된 마음이 알게 모르게 외마디 말로 쏟아진 것은 아니었을까.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정상이 아니다. 닫힌 세상의 기준으로 그렇다. 집주인은 3류 트렌스젠더바에서 노래를 하는 트렌스젠더 가수 티나. 세입자는 셋이다. 하나는 양공주로 살다가 이제는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이고 하나는 무릎 밑으로 한쪽다리가 없는 청년 도훈이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성인 피규어를 만드는 일을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흑인 여성 까밀라다. 거기 '주워 온 코피노 아이' 민호가 합류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낮고 차가운 구석 곳곳에 내몰려있는 약자들이란 점에서는 비슷하다. 제각기 상황과, 살아온 이야기가 다른데도 한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4등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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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4th Place, 2015 드라마 한국 116분 2016 .04.13  개봉 정지우 박해준 (광수),  이항나 (정애),  유재상 (준호) 4등?! 너 때문에 죽겠다! 너 진짜 뭐가 되려고 그래? 너 꾸리꾸리하게 살 거야 인생을? 형, 1등하면 기분이 어때요? 니 없으면 딴다. 형이 다시 수영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이젠 나만 괴롭히잖아. 수영이 너무 좋은데, 수영을 하려면 1등을 해야 하니까요. 넌 엄마만 없으면 1등 할 수 있다.  = 비뚤어진 교육열의 맨얼굴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눈먼 엄마와 때리는 코치 사이에서 시달리는 준호도 불쌍하지만, 과연 한때 천재 소년이었던 광수코치도 가엾다. 방황하는 광수에게 필요한 방식의 교육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광수야 말로 맞고 나서 버텼다면, 계속 재능을 펼칠 수 있었을까? 일등을 향해 질주하는 준호를 아래서부터 잡아낸 수중 와이드샷이 압도적이었다. 억눌렸던 꿈이 만개하듯,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  수영을 포기한 이후 레인을 어지럽히며 불 꺼진 수영장 밑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준호를 담아낸 고요한 시선도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