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여자 (2016)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2016



윤여정(소영), 전무송(재우), 윤계상(도훈)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왜 이런 거 찍어? 돈 되는 거 찍어. 나처럼 늙어서 개고생하지 말고.



안 도와줘도 돼요. 돈 내줄 것도 아니면서.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차라리 잘됐네. 양로원 갈 돈도 없는데. 올 겨울은 안 추웠으면 좋겠네. 




=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오갈데 없는 코피노 소년을 본능적으로 거둔 박카스 할머니와, 한쪽 다리가 없는 성인 피규어 제작자에게는 어떤 악의가 없다. 아마 이주여성지원센터 관계자는 규정상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겠지만, 습관처럼 도훈 입에서는 결백을 주장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가슴이 아팠다.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이상한 사람들도 아닌데, 곁눈질로 쏟아지는 싸늘한 시선을 당연하게 일상적으로 받아냈을 사람들. 그래서 위축된 마음이 알게 모르게 외마디 말로 쏟아진 것은 아니었을까.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정상이 아니다. 닫힌 세상의 기준으로 그렇다. 집주인은 3류 트렌스젠더바에서 노래를 하는 트렌스젠더 가수 티나. 세입자는 셋이다. 하나는 양공주로 살다가 이제는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이고 하나는 무릎 밑으로 한쪽다리가 없는 청년 도훈이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성인 피규어를 만드는 일을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흑인 여성 까밀라다. 거기 '주워 온 코피노 아이' 민호가 합류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낮고 차가운 구석 곳곳에 내몰려있는 약자들이란 점에서는 비슷하다. 제각기 상황과, 살아온 이야기가 다른데도 한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게 바로 영화가 경계하는 폭력이다. 

관객 앞에 어렴풋이 형체를 드러내는 것은 소영의 인생 뿐이다. 소영은 시들지 않은 들꽃 같은 여자다. 소녀다. 공장에서도 일해보고, 미군부대 양공주로도 살아봤다. 흑인 병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지만 사랑이 끝나고 혼자 남겨진 그녀는 아들을 미국으로 입양보낸다. 거칠고 모진 척 돌도 안 된 아들과 생이별을 했다. 그녀 삶의 원죄다. 험한 거리를 헤멜 뻔한 민호를 대책 없이 집으로 데려온 것도 그런 원죄 때문이다. 그런 거친 삶 속에서도 소영은 꽃 한송이에 수줍어하고, 첫눈을 기다리는 순수를 잃지 않는, 천상 여자다.  

그녀의 일터는 탑골공원이다. 그곳을 맴도는 노인들을 상대로 2만원 3만원, 헐값에 매춘한다. 소영은 그걸 '연애'라고 칭한다. 바리바리 가방에 소주병과 빨간 양초를 챙겨다니다가 연애가 시작되기 전에 꼭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넣고 양초에 불을 켠다. 그녀 나름의 의식이다. 순정일수도 있고 역겨움을 견뎌내기 위한 마취제일 수도 있다. 그녀는 고객들 사이에서 '죽여주는 여자'로 통한다.

그리고 소영은 정말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소영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민호를 주워오면서부터다. 하나 둘 죽음의 저편으로 허물어져가는 단골 고객들과 재회하면서 부터이기도 하다. 둘도 없는 신사도, 음담패설의 대가도 죽음 앞에선 그저 무기력하기만 하다. 무책임하다.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들은 살아갈 기운이 있었을 때 침대 위에서 그랬듯,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다시 소영의 곁을 빚진다. 구매한다고도 볼 수 는 있을 것이다. 소녀마냥 여린 소영은 그런 그들이 안타까워 꽤나 이기적이고 뻔뻔한 부탁들을 거절하지 못한다.

소영은 결국 수감되지만 그녀 말처럼 그게 차라리 나은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양로원에 갈 돈도 없는 처지에 밥도 주고 재워도 주는 곳으로 가는 거니까. 영화는 독거노인들의 마지막을 지켜주던 소영이 감옥에서 홀로 눈을 감고, 미연고 시신으로 숱한 유골들 사이에 방치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지독히도 역설적인 결말이다. 그 유골함에 적힌 이름은 미숙, 그의 본명이다. 그녀 유골함 곁에 즐비한 그 유골들도, 누군지 모를 익명의 뼛가루들도, 저마다 그런 절절한 이야기가 있었을 거다.

마지막 용기를 내 세상을 도망치듯 떠난 단골들도, 소영도 저마다 사정이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백남기 농민이 등장하는 뉴스 사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도 아주 뻔하고 단편적인 사건 기사로 처리된다. 속사정도 모르면서. 사람들은 혀를 차고, 가설을 만들고, 손가락질을 한다. 삶과 죽음의 존엄이 거듭 짓밟히는 순간이다. 

사회부 기자로 4년간 일하면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정들을 고작 몇 줄 문장으로 재단하고 외면했을까. 소영이 경찰차에 타서 첫눈을 맞을 때부터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나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내내 울었다. 가장 어둡고 낮은 곳의 목소리를 듣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함부로 지껄였었다. 무모하고 어줍잖은 나의 포부가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종로라인에서 박카스 할머니들을 직접 접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더 부풀었던 것 같다. 유골함에 적힌 미숙의 생일 1950년 6월 19일. 나와 생일이 같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수가 귀기울이지 않았던 약자들의 이야기, 소외된 삶 끝에서 더 소외된 죽음에 대한 이야기, 돈 안되는 그 고생스러운 이야기를 찍어준 이재용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세포 소녀 보고 퍼부은 욕설을 이번 영화를 통해 모두 주워담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여정 아닌 소영을 단 한 순간도 상상할 수 없었다. 힘든 연기를 멋들어지게 해낸 대가에게도 박수를.

주님, 부디 낮은 데로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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