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일본, 오키나와

나의 첫 번째 일본, 오키나와


  
남국의 복장을 한 피카츄들. 귀여워서 살 뻔 했다.
포켓몬들이 즐비하다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오키나와로 가기로 한 데는 여러가지 계산이 있었다. 우선은 돈 계산을 했다. 이런 저런 계획으로 돈을 알차게 모으기로 다짐했건만 잘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를 벗어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추려진 게 태국, 대만, 일본, 베트남 정도였다.

슈리성 무료 춤 공연 첫 순서. 아름다움이 가장 강조된 춤.

다이빙을 꼭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년에 한번씩 다니는 걸로는 매번 할 때마다 가망이 없을 거라는 불길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대만과 오키나와 정도로 목적지를 추릴 수 있었다. 틈나는 대로 대한항공 어플과 인터파크 항공 어플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야근날 밤, 26만원짜리 오키나와 왕복 대한항공 티켓을 발견하자마자 결제를 했다. 그 다음에 같은 직업을 가진 친구를 살살 꼬셨다. 그녀는 알까. 이 휴가가 내 생애 최초로 친구와 함께한 휴가였다는 것을.


다니는 동안 발이 되어 준 버스들. 시간표, 노선도 몰라서 한참을 해메었는데.
터미널 가니 정보가 많았다. 잔파 비치 근처의 터미널.

오키나와는 생각보다 큰 섬이었다. '오키나와에 갈거야!'라고 하니까, '어느 섬? 북부?'하고 묻던 일본인 친구의 아리송한 표정은 여행 책을 산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나는 주차를 할 줄 모르는, 반쯤은 장롱 속에 든 면허의 소유자였고 친구는 여행을 앞두고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운전은 꿈도 꾸지 말라는 신의 계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메마시떼, 도조 요로시꾸 오네가이시마스


국제거리의 비오는 야경

나홀로 일본에 도착한 건 9월 27일 밤이었다. 17호 태풍이 허겁지겁 지나간 터라 대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와서 조금 움츠러든 데다,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노곤해서 숙소에서 많이 빈둥거렸다.

국제거리 한복판에 있던 우리 숙소. Guesthouse KALA. 화장실 바닥 타일까지 예뻤다.

숙소가 맘에 쏙 들어서 안 나가고 싶었던 측면도 있다. 이틀간 묵을 그 방은 내 집 삼고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감각적이었다. 호텔보다 비쌀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좋았다. Guesthouse KALA 라는 곳인데, 일종의 무인모텔?처럼 아예 주인을 만날 길이 없었다. 숙박계 같은 것도 적어서 두면 알아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방도 딱 두 개 뿐이다. 우리가 묶은 3층 방하고 바로 위의 4층 방. 센스 있는 히키코모리가 운영하는 것만 같았다.

첫 저녁은 맥도날드에서 먹었다. 치킨치즈버거였다. 한국에는 없는 메뉴라 골랐다. 어떤 나라엘 가든지 맥도날드에 가서 그 나라의 메뉴를 먹어보기로 한 것은 내가 여행에 눈을 뜨던 때부터 정한 규칙이다. 맛도 있었고, 할 일을 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 이것저것 산 뒤 호로요이와 과자로 '혼술'을 했다. 두근두근했다. 모든게 만족스러워서.


오키나와의 바다들




케레마제도. 전부 다이빙 하려는 사람들이 탄 배다. 

친구가 오기 전에 나는 따로 한번 다이빙을 하기로 돼 있었다. 원래는 페리를 타고 토카시키 섬까지 들어가서 진행하는 다이빙이었는데 태풍 때문에 섬으로 가는 배가 끊긴지 수일이 지났다고 했다.

그래서 예정과는 다른 코스로 다이빙을 했다. 어쨌든 케레마 제도까지는 갔고, 결과적으로 토카시키섬 인근까지도 갔다.

4미터 파고의 위엄. 이거 배 2층에서 찍은 건데 이수준이다.
양손으로 의자를 잡지 않으면 빠질것 같아서 제일 약한 수준의 물보라를 찍고 그만뒀다.

페리를 타고 한시간 정도 달렸는데, 파고가 4m나 돼서 후룸라이드라도 타는 것처럼 스릴이 있었다.

아침내 내리던 비가 그치니 햇살에 부서지는 파랗디 파란 물결이 청량하니 참 좋았다.


세번째 입수를 째고 배 위에서 발 담그고 놀면서 내려다본 바닷속. 

입수는 두 번 했다. 보트 다이빙이었다. 비치, 보트, 섬 다이빙을 다 해봤는데 나는 보트 다이빙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뛰어들기도 돌아오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무거운 걸 지고 오래 갈 일이 없다.

케레마 제도 다이빙이 특별했던 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닷 속 거북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꽤나 큰 거북이를 두 번이나 봤다. 조류가 상당해서 나는 제자리에 있기조차 힘들었는데 거북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물살을 헤치고 달렸다.

세번째 입수도 있었는데 진이 다 빠지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다. 족히 일흔은 되어 보이는 일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거뜬히 들어갔는데 말이다.
체력이 수치스러웠다. 한번더 들어갈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많이 했지만 지치면 답이 없기 때문에 자제하길 잘 한 것 같다.

낙원같다.

대신, 배 위에서 쉬는 일도 평온하고 좋았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먼 바다에 바위섬이 떠 있었고 내 발 아래 바다는 한없이 파랗게 반짝였다. 바람도 이따금씩 살랑거렸다. 그대로 바다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좋았다. 언젠가부터 나를 둘러싼 자연환경이 한없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마다 이대로, 이 자연의 일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아직 삶에 미련이 남아서 배 타고 잘 돌아갔다.


여긴 마에다곶 인근의 비치. 
여기서도 학생들이 다이빙을 하더라. 여기가 정말 평온하고 예뻤다.

두 번째 바다는 '푸른동굴'로 유명한 '마에다 곶'. 비치 다이빙이었는데 장비를 지고 물 속에 들어가기까지가 고역이었다.
친구를 설득해서 한 다이빙인데 별볼일 없을까봐 걱정도 됐다.





물 속은 케레마 제도 쪽보다 탁했지만 푸른 동굴 자체는 신기하고 좋았다. 인구 밀도가 너무 높은 게 흠이었다. 물고기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니모 오겡끼데스까? 도리, 이마 도꼬데스까?
푸른동굴 쪽보다도 오히려 두번째로 들어간 반대편 깊은 물이 더 좋았다. 좀 더 깨끗하고, 사람이 없었다.

30m까지 들어갔다. 좋았다. 깊고 푸르고 짙은 물 속.

물 속이 천국이었다. 고요하고 푸르른 물 밖으로 나오면 적도의 햇살이 잡아먹을 것처럼 강렬하게 온 몸으로 내리꽂혔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다이빙이 끝나면 인근 비치에 가서 또 해수욕을 하고 액티비티도 해 보리라 다짐했었는데. 헛된 망상이었다. 체력이 한참 부족했기 때문이다. 강렬한 햇빛 아래서 더 쉽게 지쳤다. 

잔파비치. 저기서 결혼하면 좋을 것 같았다.

점심 먹고 조금의 재충전을 한 뒤 또다시 조금 지친 채 도착한 세 번째 바다는 잔파 비치. 해수욕도 할 수 있는 곳인데 우리는 나약하므로 사진만 실컷 찍었다. 바다는 꿈틀거리는 에메랄드 보석 같았다.
이런 걸 곁에 두고 습관처럼 보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기 전에는 꼭, 바닷가에 살아보고 말 것이다.




마지막 바다는 선셋 비치.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하늘과 바다를 오묘한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전부 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마지막 날 저녁. 숙소에서 1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츠키지 3대째 푸른하늘 이라는 스시집.
스시들이 황홀하게 입에서 녹아내렸다. 

여행에서 주로 기대하는 것은 이국의 낯선 풍광과 유적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 헤아릴 수 없는 외국어의 음율에서 오는 청각적 즐거움 같은 것이다. 이런 자극들이 압도적인 가운데 만족도의 정점으로 온 감각을 끌어올려주는 것은 단연 음식이다. 
일본은 아주 맛있는 나라였다. 
뭘 먹어도 내가 좋아하는 맛이 났다. 
친구의 친일 결심에도 음식이 기여한 바가 많다고 했다. 

친구가 도착한 뒤 함게 맛본 첫 저녁. 오키나와식 가정식을 파는 곳인데 줄서서 20분을 기다렸다.
그럴만했다. 흥분한 나머지 손가락이 함께 찍히는 줄도 몰랐다. 유우난기라는 식당.
충격적인 건 오키나와의 음식이 일본에선 맛이 없는 편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게 맛없는 음식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게 맛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먹어본 국물 중에 탑3 안에 들었던 맛이다. 슈리소바. 
조금 기다리거나 번거롭더라도 되도록 맛있다는 집에 가서 먹었다. 
돌아다니면서 그 인근에서 소문난 가게는 다 들른 것 같아서 보람찼다. 
음식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허기가 밀려드는 기분이다. 본능이겠지.

국제거리 포장마차거리에서 골라 들어간 집.
생선 무슨 덮밥이었는데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콤하고 진기한 맛이 났다. 
국제거리 포장마차 거리에서 2차로 갔던 곳. 오키나와식 오코노미야키를 시켰다.
안에 우동면이 들어간 신기한 형태였다. 
나는 하이볼을 즐겨 마셨고 친구는 오리온 맥주를 많이 마셨다. '나마비루'라고 약간 얼린 듯한 시원한 맥주를 부르는 일본어 표현이 있다는 걸 처음 배웠다.


마에다 곶 다이빙을 마치고 주린배를 움켜쥐고 달려간 곳. 흔한 돈까스 같은데 꿀맛이었다. 하나가사 식당.


혼자 말고 둘이 


안전해보이는 커다란 가방을 지고 다니는 일본 초딩들. 슈리성 입구.
혼자 다니는 여행도 적당히 적적한 대로 재미있지만, 역시 맘 맞는 사람과 함께가는 여행이 좋다는 걸 새삼 느꼈다.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구걸할 일도 드물고, 그때그때 느낀 감정을 모국어로 서로 나눠갖는 재미가 쏠쏠했다. 
흥에 겨워 이런저런 헛소리를 해도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게 어찌나 든든한지.
여러가지 음식을 함께 시켜 맛볼수 있다는 점에서도 참 좋았다. 

귀여움이 각인된 유전자를 타고나는 걸까. 문에 손 끼면 아프다는 뜻 같은데 꽃게가 너무 귀여웠다.
나하 시를 관통하는 모노레일 안.
다음엔 또 어디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돌아오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탓에 여행에 대한 기대도 부풀어오르는 것이겠지만, 줄곧 여행만 하면서 살면 참 좋겠다. 
내일은 또 로또를 한 장 사야겠다. 


이번 여행의 전리품. 도자기 거리에서 산 곰돌이 컵은 기자실에 갖다뒀다.
3D 파우치라는 거창한 이름이 담긴 저 곰돌이는 내방 책장 위에 있다. 안에는 모노레일 티켓을 넣어뒀다. 
어느덧 삼 주라는 시간이 뚝딱 흘러버리니 오키나와에서의 기억이 꿈처럼 아득하다. 
정말 의미있는 여행기를 남기려면 그날 그날 현지에서 일기처럼 적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생각을 2014년부터 했는데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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