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가 된 인간, 토머스 트웨이츠

염소가 된 인간


토머스 트웨이츠 지음/황성원 옮김/책세상


토머스가 염소와 깊게 교감하고 있다. 세상 진지. (출처: 위에 링크한 그의 홈페이지)
알프스 넘는데 성공한 염소 토머스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출처: 마찬가지)


그것은 마치 무리의 선두 근처에 있던 내가 가속기에서 발을 떼고 갓길에 차를 세운 뒤 나무 향에 취했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갑자기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지내고 있는데, 난 까마득히 떨어져있고, 이제는 차의 시동도 걸리지 않는 상황과도 같다. 
...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한동안 저 멀리 떠나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뒤통수를 치는, 그런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자기만의 걱정 보따리 같은 것을 갖고 있을까?
p.14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곧 걱정한다는 것이다.
p.15


동물에는 의식이 없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우리 인간의 의식이 물리적인 세계와 독립적이라는 데 있다. 
p.58


일단 하이데거는 사고 대상이 존재하지 않고는 사고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그러니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사실 "나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되어야 한다. 
...
나 자신의 사고에 대한 생각이, 나의 인지된 존재 상태의 여러 측면을 구성하는 생각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p.59


악마는 게으른 손을 위해 일을 찾아낸다. 손을 쓰지 않고 이 세상에 접근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머리(그리고 입)부터 세상에 닿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염소의 방식이다.
p.138


세프와 리타는 이날 벌어진 일들의 목적에 대해 당연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면서 이 일이 인간으로서의 근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이야기했다.
"당신은 도시 출신이잖아요." 세프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미친 거예요. 여기 산 위에선 그런 미친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걸요."
p.272



=

인간으로서의 번뇌에 시달리다 못해 인간됨 자체를 벗어나보려고 했던 예술가의 고군분투. 인간됨으로부터의 휴가다. 

읽는 내내 너무 찰지고 재밌어서 육성으로 웃음이 나왔다. 유쾌한 재치가 가득한 천재인 것 같아서 친구가 되고 싶을 정도였다. 구어체로 술술 쓴 것 같은데 드립력이 상당했다. 원서로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웃게 하고, 그 다음 생각하게 했다. 
그는 인간의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동물, 즉 코끼리도 아닌 염소가 되기를 택했다. 하지만 결국 세프의 말에 모든 게 담겨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것은 도시다. 도시가 인간을 자연스럽지 못하게 했다. 동물이 누리는 본능적인, 있는 그대로의 행복과도 멀어지게 했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까지 동물이 돼 보겠다는 도전은 실로 대단했다. 판이하게 다를 것 같은 염소와 인간 사이의 공통점들이 신기했고,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면밀한 연구와 실행, 실패와 수정 과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의 기술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온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까마득하게 어려운 일이겠지.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해피투게더 (1997)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인턴 (2015)

2015년 11월 4일 수요일 10개 일간지 1면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