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민음사


나혜석은 칼자루를 쥔 남성 중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칼날을 쥔 여성들이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과 글을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칼날조차 놓쳐 버리면 “순환”의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나혜석은 예상했을 것이다. 
p.9 
<서문>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느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p.65 
<경희>

오늘 하루도 다 갔다. 인생은 각각으로 시간 중에 숨어 간다. 지난 기억은 새로운 사실 앞에 그 자체를 숨기고 있다. 40 생애를 때의 흐르는 위에 남겨 놓았으나 과거의 S는 현재의 S로부터 연기와 같이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다. 
p.118 
<독신 여성의 정조론>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 주시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하여 주시오. 
씨는 무조건 응낙하였습니다. 나의 요구하는 대로 신혼 여행읋 궁촌 벽산에 있는 죽은 애인의 묘를 찾아 주었고, 석비까지 세워 준 것든 내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사실이외다. 여하튼 씨는 나를 전 생명으로 사랑하였던 것은 확실한 사실일 것입니다. 
p.161 

‘오냐, 내가 있는 후에 만물이 생겼다. 자식이 생겼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일찍부터 역경을 겪어라. 너희는 무엇보다 사람 자레가 될 것이다. 사는 것은 학문이나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야 사는 것이다. 
p.182

이성의 사랑은 무섭다. 사람의 정열이 무한히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란계의 수은이 100도까지 올라갔다가 도로 저하하듯이, 사랑의 초점을 100도라 치면 그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저하하는 것이외다. 
...
나는 이것을 잘 압니다. 그리하여 사랑이 움돋을 만하면 딱 분질러 버립니다. 나는 그 저하한 뒤 고적을 무서워함입니다. 싫어함입니다. 이번이야말로 다시 이런 상처를 받게 되는 날은 갈 곳 없이 사지로밖에 돌아갈 길이 없는 까닭입니다. 아, 무서운 것!
적막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 무의미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깊은 감각을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적막에서 돌아오는 그것이 우리의 희망일는지 모릅니다. 아, 사람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타임의 1일은 짧으나 그 타임의 계속한 1년이나 2년은 깁니다. 
p.194-195

여성을 보통 약자라 하나 결국 강자이며, 여성을 작다 하나 위대한 것은 여성이외다. 행복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그 능력에 있는 것이외다. 가정을 지배하고 남편을 지배하고 자식을 지배한 나머지에 사회까지 지배하소서. 
p.199
<이혼 고백장>

동기는 여하한 것이든지 훨씬 열어젖힌 세계는 이상히도 좋았고 더구나 무구속하고 엄숙하게 지켜 있는 마음에 어찌 자유스러운 감정을 가지지 않게 되겠는가. 
...
우리는 황무한 형극의 길가에서 생각지 않은 장미화를 발견한 것이었다. 방향과 밀봉 중에 황홀하였던 것이다. 
p.207 

남이 이성으로 대할 때 나는 감각으로 대하자. 남이 정의로 대할 때 나는 우아로 대하자. 남이 용기로 나를 대할 때 나는 응양의 마음으로 남을 대하자. 
...
나는 영혼의 매력이 깊은 것을 알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의 인격적 우아로 색채가 풍부한 신생활을 창조해 낼 것이다. 사람 앞에 나갈지라도 형식과 습관과 속박을 버리고 존귀함으로써 공적 생활에 대할 것이다. 
...
행복으로 빛날 때든 치명을 받을 때든 안정하든 번민하든 냉혹하든 정열 있든 기쁘든 울든 어떤 환경에 있든 나는 다수의 여자인 동시에 1인의 여자일 것이다. 
p.216-217

다 운명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다. 그러나 그 운명은 순순히 응종하면 할수록 점점 증장하여 닥쳐오는 것이다. 강하게 대하면 의외에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p.219 
<신생활에 들면서>

나혜석은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여성의 삶을 꿈꾸었고, 그 꿈을 글쓰기로 실천했다. 여성의 삶이 모순적이고 분노와 좌절의 연속인데, 어떻게 여성의 언어가 아름답고 완전하며 완벽하기를 바라느냐는 나혜석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p.233 
<해석>

그러므로 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 가는 악마’라고 정의를 발명하여 재삼 숙고하여 볼 때마다 이런 걸작이 없을 듯이 생각했다. 
p.257 
<모 된 감상기>

하루 뒤, 1년 뒤, 지나는 순간마다는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가 된 큰 과거는 얼마나 느낌 있는 과거인가. 또 그 중에 마디마디를 멀리 있어 돌아다보니 얼마나 즐거웠던 때이었나.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 앞에 비추이는 현재의 환희로 살지 못함은 곧 가까운 과거를 현재로 만드는 까닭이었다. 그러므로 기실은 현재는 없어지고 만 것이다. 지나고 보니 이같이 안전한 대로를 밟아 온 것을, 그리하여 그 중도에는 내게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구비해 있고 그뿐 아니라 그때그때 과거에 있어서는 그다지 길이 좁았던고!
p.323
<나를 잊지 않는 행복>

=

100년도 더 전에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효한 고민들을 했다는 게 한편으론 경이롭고 한편으론 참담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나혜석이라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타인들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한평생을 뜨겁고 단단하게 살았던 사람이라는 게 문장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100년이 또 한번 지나면 그때의 여성들은 비로소 나혜석의 고민과 토로를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경하게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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