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민음사


어떻게 보면 박맹호 회장이나 강태형 대표는, 목적도 관심사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발견하고 키우고자 했던 것은 '재능'이었다. 한 명의 뛰어난 소설 천재를 발굴할 수 있다면 그 비용은 거액이 들어도 아깝지 않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진흙 속의 천재를 평론가가 더 잘 알아볼 수 잇는 시대인지, 그렇지 않은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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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림 백 점, 천 점을 모았다고 해서 그게 <모나리자>나 <게르니카>보다 귀하다고 할 화가나 미술평론가는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자다.
p.88

과거제도는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았다.
이 제도는 블랙홀처럼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빨아들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시험만 잘 치면 순식간에 기득권 핵심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약속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유능한 청년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중소 규모의 지적, 산업적 프로젝트에서 관심을 거두고 중앙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p.101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NRF 출판사에 보냈다. NRF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거절했는데, 그런 판단을 내린 사람은 편집장으로 일하던 앙드레 지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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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프랑스 작가 두 사람이 198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클로드 시몽의 소설 일부를 발췌해 출판사 열아홉 곳에 보냈다. 그랬더니 일곱 곳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오지 않았고, 열두 곳은 출간 거절 의사를 밝혔다.
p.184

공모전 심사는 공정하다고 본다. 형식적, 절차적인 면에서 공정하다. 공정함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때로는 신인 선발 제도에서도 실질적, 결과적 공정함을 논해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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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편소설공모전에서 우리가 따질 수 있는 것은 형식적, 절차적 공정성뿐이다.
p.269

여기에서 분명히 밝혀 둔다. '누군가의 거대한 악의가 없어도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다.'라는 말은, '현재 아무도 악의가 없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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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는 매우 긴 사슬로 이뤄져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간여한다. 사슬의 끝단에 있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뚜렷한 이드도 없이 그런 차별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마저 생긴다.
p.287

나는 그런 신비로운 권위들이 한국 사회 또한 마찬가지로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문학 권력은 그런 신비로운 권위 중 하나다. 학벌도 그렇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대기업 직원'이라는 신분도 그렇다. 그 신비로운 권위를 누리는 사람은 별 근거도 없는 우월감에 빠진다. 그 권위가 없는 사람은 그만큼 열등감과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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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비로운 권위를 '간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p.289

나는 젊은 한국 신인 소설가 두 사람이 책을 내고 독자를 만난 과정에 의미심장한 공통점,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공통의 결핍 지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독서 공동체다. 김동식, 또는 이진이라는 신인 작가의 신간 한국 소설이 나왔는데 읽어 보니 대단하더라, 또는 준수하더라, 또는 보통이더라, 또는 시원찮더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
p.369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로스쿨생과 고시생은 모두 선량한 피해자였다. 그들이 로스쿨 제도를 만든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들이 지키려는 이익은 그야말로 작은 것이었다. 밥그릅 싸움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이 젊은이들은 아직 제 몫의 밥그릇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모두 가엾었다.
그들의 논리는 모두 조금씩 일리가 있었고, 동시에 조금씩 부조리했다.
p.420

나는 사람들이 모험을 하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믿을 수 있는 정보는 그중 하나다. 다른 두 가지는 충분한 보상과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다.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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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종종 품었던 의문을 촘촘한 취재와 쉽고 깔끔한 문장으로 정리해주었다. 취재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오래 고민한 것을 파고들 때에만 가능한 깊이의 취재였다. 또 그래야만 가능한 밀도의 글이기도 했다. 덕분에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새삼 참 글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을 때는 특별히 필력을 두고 감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제에 감히 장강명을 평가하다니!라고 잠시 반성했다가, 작가가 그 필요를 역설했던 읽고 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기 검열은 그만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애증의 공채류 제도(수능, 고시, 입사시험 등등)의 흔적이 문단에까지 뻗어 있다는 걸 이 책은 다양한 방면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입장과 의견을 담아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장강명은 문제를 낱낱히 분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름의 돌파구를 제시한다. 독자들의 문예혁명에 거는 그 희망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동참하길 원한다. 한국 소설을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로 찾아 읽어야겠다는 마음의 부채감이 생겼다.

사실 내용이나 의도를 차치하고 이 책은 이 책 자체로써 의미가 있다. 저널리스트라면 누구나 꿈꿔보았을 테지만 우리나라 언론 환경에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완성형 르포타주이기 때문이다. 유능한 기자로 일하다가, 좋은 소설을 쓰고, 뭇 기자들이 한번쯤 꿈꿔봤을 만한 르포타주를 책으로 내다니.

부러움으로도 채 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 들었다. 사실 촌철살인의 문제의식을 드러낸 저자가 정작 그 제도의 정점을 달려온 최대 수혜자라는 점은 이 책에 흥미를 더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직원, 유력 일간지 기자를 거쳐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있는 등단 작가니까.)

아내가 다시는 논픽션을 쓰지 말라고 했다는데, 종종 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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