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

기자가 되고 가장 반가웠던 소식중 하나는 무제한 무료통화제의 탄생이었다. 그만큼 전화를 달고 사는 직업이다. 전화벨이, 진동이 반갑지 않은 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기자 일을 그만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이 울릴때 누굴까 기대하며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아무튼 전화랑 기자는 애증의 관계다. 하루에 '적게는 15통'의 전화를 주고받는다. 오늘은 특별히 전화를 '신나게' 건 날이었다. 마감하고 통화 내역을 살펴보니 총 67통을 걸고 10통을 받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의 일이다. 전화 취재를 하다 보면 늘 소리지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대체 망할 담당자가 누구야!!!!!!!!!!!!!!!!!!!!!!!!!!!!!!!!!!!" 라고 말이다. 분명 홈페이지에서 애써 담당자 찾아가며 전화를 걸었건만 한번에 통화가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흔히 반응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제가 전화를 당겨 받아서요 돌려 드리겠습니다. 2. 담당자가 지금 회의중이라서요, 3. 담당자가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데요, 4. 그건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전화 돌려 드리겠습니다. 1-> 돌려 드린다더니 전화 뚝 끊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2-> 담당자는 하루 종일 회의만 한다. 3-> 담당자는 전화 걸 때마다 방금 나가셨다. 4-> 전화 돌려 받은 사람도 담당자는 아니다. 늘 이런 식의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원하는 대답의 절반 쯤을 들을 수 있다. 내 취재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놈의 담당자는 야속하기만 하다. 오늘도 정체모를 담당자를 찾아 하루 종일 전화를 걸었다. 했던 말을 스무번쯤 반복하려니 이골이 났다. 앞부분은 녹음해뒀다가 틀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내일도 내 불굴의 통화의지와 그들 발언의 조각들이 모여 한편의 기사로 거듭나길 바랄 뿐. 이제 마포로 가서 동기들과 저녁 번개를 즐겨야겠다. 내

미술관 옆 동물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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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리는 것인 줄은 물랐어." "요즘 사람들 사랑은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각자 이어폰을 끼고 듣는 꼴 같아. 조금은 이기적이고 또 조금은 개인적이고 왠지 뭔가 자기가 갖고 있는 걸 다 내주지 않는..." "난 정말 달인가 보다. 내 안에서는 노을이 지지도 않으며, 그에게 미치는 내 중력은 너무도 약해 그를 당길 수도 없다." "멀리 있는 별들은 더 빨리 멀어져서 절대로 따라잡을 순 없다지. 그는 그 별들처럼 더욱더 멀어지고 난 결코 그에게 다가갈 수 없겠지. 그와 나 사이엔 수억 년의 차이가 있다. " "평균 수명이 길어졌으니까 그만큼 철도 늦게 드는 거야." "별은 언제나 과거의 빛이다. 저 별의 현재는 이미 먼 미래가 되어버렸다. 현재를 아주 보잘것 없이 만드는 그 막대함이 마음에 든다."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시작도 안하고 아쉬워하는 것 보다 나아. 후회보다 미련이 훨씬 오래가는 법이거든." 오래된 멜로 영화는 촌스럽지 않다. 멜로라는 장르의 본질은 시대가 흐른대도 크게 변할 것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나 오늘날 수목드라마에서나 98년에 개봉한 영화나 2018년에 개봉할 영화. 이들의 대사 한 줄에서 내 감정을 단련할만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건 줄리엣도, 춘희도, 태공실도, 나도 모두가 같은 감정을 앓는 까닭이다. 누군가에게 물들어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자신을 되찾기까지는 그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눈먼 감정의 바다를 한없이 헤맸다. 한 발짝 떨어져 내 어린 감정을 돌아볼 때, 나는 부끄럽지 않은가? 미안해야 하는지, 고마워야 하는지, 미워야 하는지, 정다워야 하는지, 그리워야 하는지. 복잡하다. 확실한 건 사랑한다는

김상혁, 싸움

강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비좁은 보행로를 걸어가는 권투 선수의 펼쳐진 왼손처럼, 건널목에 서게 되면 건널목만을 생각하는 머릿속처럼 무심하고 고양되지 않는다. 눈빛이 마주칠 때 무서운 건 무엇인가. 실제로 아무런 싸움도 나지 않는데 이렇게 등을 돌리고 누우면 강함은 너의 침묵 속에 있다. 고요함은 나에게 네가 울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눈빛이 마주치지 않는데 깜깜한데 내일의 너는 멀고 무더운 나라 낯선 이웃들이 자꾸 인사하는 어떤 문밖에 서서 우리의 침대를 태우고 있거나 그런 비슷한 종류의 모든 문밖에 계속 서 있을 것만 같은. 실제로 아무런 눈물도 흘리지 않는데 앞으로는 너의 교외가 슬퍼질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너에게 나는 웃는 사람인가.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릴 때 나는 너에게 강한가. 내가 주먹을 내지른 공간이 건너편 방의 침묵 속에 쓰러져 있다면 그것의 인내는 언제까지인가. 등을 돌리고 강해지는 우리들. 두려워도 상대의 눈에서 눈을 떼지 마라. 어쩌면 다음을 위한 이런 규칙을 깨야 할 때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할 때 나는 고요한 나에게 대해 얼마나 강한가 - 심장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사소하고 어리숙한 나는 스스로의 감정 앞에서도 부끄럽다. 만약을 가정하니, 지금의 나는 사라져버렸다. 무섭다.

침묵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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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이승환 노래를 듣고 있다. 행여 누구라도 마주칠까 꽁꽁 싸매고 간 GMF의 대미를 장식한 그의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맴맴. 어젯밤, 조금은 몽롱한 채로 무심하려 애쓰면서, 내 등 뒤에서 흥얼거리는 그 목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더랬다. 추억의 페이지 하나가 또 쓰였다. 노랫말들이 마음을 만진다. 왠지 느슨하게도 긴 하루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집으로 도망치는 중이다. 젖은 빨래처럼 유독 처지는 시간들. 몸도 맘도 나른한채로 무디게 기사를 쓰고 시간이 가기만을,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렸다. 그대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 간절한 그리움. 문득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따금씩 괜히 슬픈 걸 보니 가을은 가을이다.

용기와 후회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기 바빴던 입사 동기 하나가 어제 용기를 냈다. "캡한테 그만둔다고 말했어." 오늘부터 그는 더이상 기자가 아니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는 하루만에 모든 정리를 마쳤다. 그토록 그를 힘들게 하던 것들, 라인, 캡, 노트북, 녹음기, 야근, 숙퇴, 백업, 이 세계만의 개념들과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 동창이자 동갑내기 친구다. 수습기자가 된 뒤에야 새벽녁 채 뜨지 못한 눈을 부비며 경찰서를 누비다 만난 사이다. 긴 인연은 아니다. 그러나, 아니 어쩌면 그래서 우린 쉽게 마음을 열었다. 서로 연락만 닿으면, 얼굴만 마주하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나', '적성에 안 맞나봐', '1년도 못 버틸 것 같아' 푸념을 늘어놓기 바빴다. 내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는 말이었고, 그의 얘기가 곧 내 얘기였다. 우리는 같은 문제에 부딪혀 허덕였고 같은 부조리와 같은 불합리에 눈물흘렸다. 때려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우리였지만 사표를 썼다는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유인이 된 것에 축하를 건넸다. 마지막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는 그는 '이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토익점수에 허덕이는 취준생이 되겠지.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토록 바라던 꿈,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우리의 직업. '기자'라는 알다가도 모를 이름. 우린 한때 정말 죽도록 기자가 되고 싶었다. 많아야 열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천명이 몰려들어 숨을 죽이고 글을 써댔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그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었기. 내 꿈이 '기자'라는 데 왜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 10개월동안 그 꿈을 살았다. 지금과는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다시 살아가게 됐을 때 어쩌면 그의 말처럼 후회가 찾아들지도 모른다. 난 지금도 그 꿈속을 헤메고 있다. 견디고 있다. 지금으

천양희, 오래된 가을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 싸이어리를 뒤적거리다 수년 전 어느 가을 적어둔 이 시를 만났다. 당시 나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저 질문들에 몽땅 긍정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남은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기 위해 강변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세계가 지나온 모든 것들을 알고, 수용하고,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그 안에서 내게는 생소한 모습, 앞으로도 알지 못할 모습을 마주치게 될까봐 두려워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격차를 나의 실패로 느끼게 될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기록은 무서운 행위다. 쓰여지는 순간에 한번, 또 속절없이 읽히는 순간에 다시 한 번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읽고 또 읽어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사실 나도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의 정확한 꼭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일렁이다 사라져버릴 이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다. 아무튼 안팎에서 가을이 무르익는다.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이 계절에 어느것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마음 끄트머리에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집들이

블로그 이사를 마쳤다. 세 번째 블로그다. 싹 갈아엎고 새로 시작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올해의 시선은 이어가고 싶었다. 쓰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고, 읽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한다. 올해는 혼자만 끄적이려고 했던 블로그였는데 나의 싸이어리를 사랑해주던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없는 글은 글이 아니다. 독자가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부끄러워지는 글이라면 어디에라도 쓰지 말아야지. 정 쓰지 못하겠는 말들은 집어삼키거나, 손으로 적는 일기에 토해내면 되겠다. 누군가 나 죽은 뒤에나 열어보겠거니 하고. 이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