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오래된 가을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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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어리를 뒤적거리다 수년 전 어느 가을 적어둔 이 시를 만났다. 당시 나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저 질문들에 몽땅 긍정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남은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기 위해 강변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세계가 지나온 모든 것들을 알고, 수용하고,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그 안에서 내게는 생소한 모습, 앞으로도 알지 못할 모습을 마주치게 될까봐 두려워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격차를 나의 실패로 느끼게 될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기록은 무서운 행위다. 쓰여지는 순간에 한번, 또 속절없이 읽히는 순간에 다시 한 번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읽고 또 읽어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사실 나도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의 정확한 꼭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일렁이다 사라져버릴 이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다.
아무튼 안팎에서 가을이 무르익는다.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이 계절에 어느것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마음 끄트머리에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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