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후회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기 바빴던 입사 동기 하나가 어제 용기를 냈다.
"캡한테 그만둔다고 말했어."
오늘부터 그는 더이상 기자가 아니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는 하루만에 모든 정리를 마쳤다. 그토록 그를 힘들게 하던 것들, 라인, 캡, 노트북, 녹음기, 야근, 숙퇴, 백업, 이 세계만의 개념들과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 동창이자 동갑내기 친구다. 수습기자가 된 뒤에야 새벽녁 채 뜨지 못한 눈을 부비며 경찰서를 누비다 만난 사이다. 긴 인연은 아니다. 그러나, 아니 어쩌면 그래서 우린 쉽게 마음을 열었다.
서로 연락만 닿으면, 얼굴만 마주하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나', '적성에 안 맞나봐', '1년도 못 버틸 것 같아' 푸념을 늘어놓기 바빴다. 내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는 말이었고, 그의 얘기가 곧 내 얘기였다. 우리는 같은 문제에 부딪혀 허덕였고 같은 부조리와 같은 불합리에 눈물흘렸다.
때려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우리였지만 사표를 썼다는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유인이 된 것에 축하를 건넸다. 마지막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는 그는 '이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토익점수에 허덕이는 취준생이 되겠지.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토록 바라던 꿈,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우리의 직업. '기자'라는 알다가도 모를 이름. 우린 한때 정말 죽도록 기자가 되고 싶었다. 많아야 열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천명이 몰려들어 숨을 죽이고 글을 써댔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그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었기. 내 꿈이 '기자'라는 데 왜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 10개월동안 그 꿈을 살았다. 지금과는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다시 살아가게 됐을 때 어쩌면 그의 말처럼 후회가 찾아들지도 모른다.

난 지금도 그 꿈속을 헤메고 있다. 견디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악몽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를 조금씩 잃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느 순간 뒤돌아 봤을 때 '진짜 나'는 누구인지 낯설어질까봐 겁이 난다. 이 직업을 통해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8개월째 난 부서져내리고있다.

그가 가진 용기가 내게는 없다.
용기를 낸 것에 대한 후회는 용기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조금 덜 아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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