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두 잔에 취한 토요일 밤의 단상

사람들은 운명처럼 저마다 다른 부피와 질량만큼의 행복을 타고나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고 손쉽기만 한 작은 행복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평생을 바쳐 고대한들 닿을수조차 없는 신기루인 거다. 그걸 깨닫기까지는 너무 버거운 세월을 견뎌야한다. 그래서 때론 그 부당한 운명을 의식적으로 잊는다. 망각은 달콤하다. 불현듯 그 약효가 다했을 때가 문제다. 그 지난한 시간의 장막 틈에서 만족과 포기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이 될까. 애꿎은 달이 밝다.

김근, 너의멸종

김근 너의멸종 너는 멸종했다 너라는 껍질을 뒤집어쓰고 너 아닌 것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나는 실패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고 어리석은 별들이 순식간에 졌다 우리의 어제는 우리와 함께 사라졌다 내일은 도착할 기약이 없고 오늘만 영원하다 땡볕 속에 응애응애 어느 병원에선가 또다시 너라는 병원체를 보유한 너의 새끼들이 태어난다 새끼들은 점점 너로 자라나 너의 흉내를 내며 너의 얼굴을 달고 지겹도록 살고 살아가고 그들의 입에서 흘려보낸 너의 메아리들이 도시 곳곳에서 불어 다닌다 수많은 벽들에 부딪쳐 본래 목소리조차 알 수 없게 된 메아리들로 거리는 온통 웅웅거리고 그렇게 혼곤하게 거리는 거리가 아닌 채로 있다 있기만 한다 나는 내가 아닌 채로 이제 그만 내 껍질을 찢어 버린다 한때 나였던 껍질이 내 문 앞에 쌓여 간다 껍질과 함께 흘러내리는 울음들은 시나 브로 화석으로 굳어가고 우리의 시간은 발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느 때고, 끝없이 나는 실패하고, 사라지지는 결코 않는 오늘, 너라는 것들의 멸종은 멈출 줄을 모른다, 끝도 없이. = 할듯 말듯 멸종하지 않는 존재. 그 심연에서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유랑하는 나.

이장욱, 좀비 산책

좀비 산책 이장욱 비가 내리자 나는 드디어 단순해졌다 당신을 잊고 잠깐 무표정하다가 아침을 먹고 잤다 낮에는 무한한 길을 걸어갔다 친구들은 호전적이거나 비관적이고 내 몸은 굳어갔다 한 사람을 살해하고 두 사람을 사랑하고 잠깐 울다가 음악을 들었다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죽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금욕적이며 장래 희망이 있다 1968년이 오자 프라하의 봄이 끝났다 레드 제플린이 결성되었다 김수영이 죽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여전히 태어나지 않았다 비가 내리자 나는 단순하게 잠깐 울다가 전진하였다 =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래 희망이라는 틀에 박힌 단어로 위안삼으면서. 울음조차 잠깐인 채로 그러나 무얼 위해 전진하는 지 모르는 상태로 그저 떠도는 것은 아닐까. 나의 사랑은, 나의 죽음은 변하지 않았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미셸 투르니에 (Michel Tournier) 민음사(2012) 주의력의 한계는 점점 깊어지는 동시에 좁아졌다. 이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골몰한 한 가지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 가는 일마저 점점 더 어려워졌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타인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강력한 주의력 전환 요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45 오직 과거만이 중요한 존재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다. 현재는 추억의 샘, 과거의 생산 공장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 산다는 것은 오직 그 값진 과거의 자산을 늘리기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죽음이 오는 것이었다. 죽음은 그 축적된 금광을 향유할 수 있는 순간에만 진정한 죽음이었다. 우리가 소란스러운 현재 속에서 보다 더 깊이 있게, 주의 깊게, 현명하게 감각적으로 삶을 음미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것이 주어진 것이다. p.50-51 글을 쓴다는 이 성스러운 행위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갑자기 지금까지 빠져 있었던 동물성의 심연으로부터 반쯤 헤어 나와 정신세계로 진입한 느낌이었다. ... 그에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그가 수치스럽게 여기고 잊어버리고자 하는 실수의 시절이 지나간 다음 이 섬에서의 진정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p.56 나의 상황은 미덕에 최대를, 악덕에 최소를 걸며 용기와 힘과 자기 긍정과 사물들에 대한 지배를 미덕이라고 부르기를 요구한다. 악덕은 포기와 체념, 즉 진창이다. 그것은 아마 기독교 저 너머 인간적 지혜의 고대적 비전으로 되돌아가서 오늘의 미덕(Vertu)에 고대의 덕성(Virtus)을 대체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어떤 기독교의 심저에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근원적 거부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스페란차에 대하여 그 거부를 지나치게 실천에 옮겼던 것인데 그것은 나의 멸망을 초래할 뻔했다. 반대로 나는 오직 이 섬을 받아

박준, 마음 한 철

마음 한 철 박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눈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 ( 影 幀 )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그럴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곳에 남아있을 그 이름들, 남몰래 새긴 흔적들. 무심한듯 그렇게 추억이 제법 쌓여버렸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자본론' 안에는 마르크스의 독특한 표현이 나온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장치의 근본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데,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답게 만드는 열쇠는 바로 노동력에 있다. p.43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상품이 되려면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노동자가 '자유로운' 신분일 것, ... 또 하나는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p.51-52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혁신은 결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p.65 아무리 생각해도 생명 친화적이지 않다. 이런 방식이 상식이 된 이유는 사람들이 '덧셈'이라는 방식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p.144 사람들은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투입해 경제를 뒤룩뒤룩 살찌게 한다. 내용물이야 어떻든 이윤만 늘면 된다. ... 비만이라는 병에 걸린 경제는 거품을 낳고, 그 거품이 터지면 공황(대불황)이 찾아온다. 거품붕괴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살쪄서 비정상이 되어버린 경제가 균형을 되찾는 자정작용이다. p.147 소셜 미디어를 통해 탄생한 유대관계는 고독한 싸움이 되기 십상인 소상인들에게 용기를 준다. p.187 =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열쇠라고 일컫는 노동력은 오늘날 지나치게 평가절하된 게 아닌지. 노동력이 상품이 되려면 충족해야할 조건은 '자유로운 신분일 것','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아야 할 것'.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소상공인이 줄어들고 있으니 오히려 뛰어들어야 한다는 내용에 선뜻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 어느정도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일이니 가능한 '투자'가 아닌가. 자본 없는 투자가 가능한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Aimer-vous Brahms... (민음사)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는 포도주를 한 모금 길게 마셨다. 폴을 반박하지 않았다. p.43-44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같은 걸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짧은 그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 뿐인지도 몰랐다. p.56-57 그에게 인생이라는 걸 가르치는 데는 시간이 자신보다 더 유능하겠지만, 그러려면 훨씬 오래 걸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