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live Coriolanus, 코리올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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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Theatre live-Coriolanus  코리올라누스/국립극장해오름극장/20160326 I talk of you: Why did you wish me milder? would you have me False to my nature? Rather say I play The man I am There is a world elsewhere. So our virtues Lie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time: And power, unto itself most commendable, Hath not a tomb so evident as a chair To extol what it hath done. One fire drives out one fire; one nail, one nail; Rights by rights falter, strengths by strengths do fail. Let me have war, say I: it exceeds peace as far as day does night; it's spritely, waking, audible, and full of vent. Peace is a very apoplexy, lethargy; mulled, deaf, sleepy, insensible; a getter of more bastard children than war's a destroyer of men . = 표를 겨우 구해서 부랴부랴 다녀왔다. 톰 히들스턴의 코리올라누스라니! 영화도 보다 말아서 사실 극 전체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의 주인공 코리올라누스, 아니 카이우스 마르티우스는 오만하다. 그러나 순수하다. 거짓 아첨을 견디지 못하고 대중을 기만하는데 실패한 것도 그런 그의 천성 탓이다. 톰히들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부감을 가질 만큼 대중을 향

막차

오랜만에 자정을 넘겨서까지 술을 마셨다. 춘삼월을 앞둔 이날 문산행 막차 세번째 량에선 20여명의 승객이 줄곧 유지됐다. 타고 내리고 또 타고 내렸다. 그중 단 한명만이 손에 든 책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고 또 다른 한 명은 술에 취해 기우뚱거렸다. 홍대입구역에서 역무원들 손에 붙들려 탄 이었다. 직장 동료인 두명은 직원 관리에 대한 얘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나머지 모두는 고개를 스마트폰에 쳐박은 채 집으로 향했다. 그중 절반은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였다. 다들 뭘 그렇게 보고 또 듣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자정을 내달리는 밤의 열차는 고요했다. 눈 감으면 곧 출근이구나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소의 재발견, 앨러스테어 보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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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재발견 앨러스테어보네트/박중서옮김/책읽는수요일 아랄쿰 사막 시랜드 북센티넬 섬 대부분의 현대 지식인들과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이 세상 어디에나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소에 대해서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소는 강등되고 추방되었으며, 급기야 약간은 우쭐대고 적당히 추상적인 지리학상의 경쟁자인 '공간space'의 개념이 대두하면서 이런 강등과 추방의 과정은 더욱 촉진되었다. ... 장소에 가득한 분주함과 기묘함에 직면했을 때 현대사회가 보이는 반응이란, 그 장소를 곧게 펴고 합리화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관계를 우선시하고 장애물을 지우는 것이었고, 나아가 공간으로 장소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p.7-8 장소는 이른바 인간이 된다는 것의 변화무쌍하고도 근본적인 측면이다. 우리는 장소를 만들고 장소를 사랑하는 종(種)이다. p.9 오늘날 우리는 '이 세계는 완전하게 가시적이고 철저하게 알려져 있다'는 기대를 품고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상력이 구애받지 않고 배회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장소'를 원하고 또 필요로 한다. 신비하고 놀랄 만한 장소들은 지리학적 상상력의 피난처이다. 즉, 지난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들어진 '만물을 통찰하는' 해도에 저항하는 일종의 요새인 것이다. p.26 많은 도시가 여전히 배우고 있는 것처럼, 과거를 싹 쓸어 없애버리는 일은 단순히 희귀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 세계에서 앗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제거 과정에서 사람들을 함께 엮어주던 갖가지 기억, 이야기, 관계들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장소를 천박하고 단순한 장소로 바꿔놓다 보면, 그로 인해 문화적으로 더 취약해진 인구가, 즉 뿌리 뽑힌 대중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들을 유일하게 서로 연결해주는 가느다란 실이라고는 누군가 위에서 부여해주는 이데올로기가 유일하다. p.44 모든 국경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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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김명남/창비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p.21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수치심을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 그런 여자아이들이 자라면, 자신에게 욕구가 있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여성이 됩니다.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여성이 됩니다. 자신의 진짜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여성이 됩니다. 가식을 예술로 승화시킨 여성이 됩니다. ...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p.37-39 나는 페미니스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p.52 = 젠더를 둘러싼 대립이 극에 달했다.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당연시되던 현상에 '여성혐오(여험)'란 이름을 붙이니 새로운 싸움이 벌어졌다. '여혐혐(여성혐오에 대한 혐오)' 에서부터 '남혐(남성혐오)'까지. 페미니즘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조심스럽고, 거북한 개념이 되어 있었다. 오해 때문이지만 제대로 이해하려 드는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 로스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로스/정영목옮김/문학동네 우리는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거무스름한 금 가까이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러다 이따금씩 의자로 돌아가 머뭇머뭇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기 시작한 감정을 재치 있으면서도 불안하면서도 다정한 찬가로 노래했다. 사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낯설고 새로운 느낌을 휘저어 사랑을 닮은 거품 속에 집어넣었지만, 감히 그것을 너무 오래 가지고 놀지도 못했고,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도 못했다. 자칫 납작해지거나 픽 하고 꺼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p.38 다음날은 바람이 가을을 실어오고 수양버들 가지들이 파팀킨의 집 앞 잔디밭을 만지작거렸다. 정오에 브렌다를 기차역까지 태워다주었고, 그녀는 나를 떠났다 . p.194 = 지난해 맹장 수술하면서 읽었다. 여러 단편 중에서도 책의 제목이 됐던 저 굿바이 콜럼버스가 제일 좋았다.  풋풋하고 뜨거운 청춘의 사랑이 흩어지는 과정을 덤덤하게 담아냈다.  그 덤덤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사랑에 깊이 빠지는 순간이나 그런 감정이 다 지나고 모든게 끝나는 시점까지도.

전락자백, 우치다 히로후미 외

전락자백 우치다 히로후미+야히로 미쓰히데+가모시다 유미/김인회+서주언 옮김/뿌리와이파리 전락에 이르는 8가지 특징 a. 일상생활로부터 격리 b.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의 상실 c.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d.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 e.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f.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g. 부인의 불이익을 강조 h. 취조관과의 '자백적 관계' p.94 의학이나 심리학의 세계에서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란 어린아이들이나 지적장애, 발달장애, 학습장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쓰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처받기 쉬운'이란 '공격, 비난, 유혹 등을 받기 쉽고,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어렵고, 상처받기 쉬운'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면접이나 취조 장면에서 때로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혹은 그렇게 되기 바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수 없고, 오해를 부르기 쉬우며, 또는 자신에게 죄를 씌울 정보를 제공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영국 경찰실무규범에서 인용). p.122 각각의 사건에 관해 '합리적인 의문'이 있는지는 그 사건을 담당한 개개의 재판관이 결정합니다. 그러나 개개의 재판관의 주관에 따라 결정되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형사재판은 법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사람에 의한 재판으로 추락해버립니다. 재판관의 '자유로운 판단'이란 개개의 재판관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고 '자유로운 재량판단'도 아닙니다. 그 판단ㄷ과정이 '건전한 사회상식'에 합치하고, 역사적인 검증을 견디는 '합리적'인 것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p.209 재판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헌법이 정한 법의 이상에 따르고 있는지 여부는 시대를 넘어 계속 검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작은 혁명

나는 꽤나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이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우리집, 적어도 가장인 우리 아빠만큼은 어느 모로 보나 그 단어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이다. 방학이라 탱자탱자 노는 남동생과 간만의 휴일을 맞아 늦잠을 자는 내가 함께 집에 있다면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은 내 몫인 게 '당연하다'. 그게 우리 아빠 철학이다. 내가 누나이기 때문이고, 더 본질적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빠와 다툴 일은 수두룩하기 때문에 대개는 '순리'에 따르곤 한다. 그래도 불쑥불쑥 내 안의 뜨거운 무언가가 들끓어오르는 날은 어쩔수 없다. '반항'을 할 수밖에. 그 순리라는 것이 분명히 부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성학 수업한번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채 여대를 졸업한 뒤 이런 저런 잡다한 지식을 더듬어 '페미니즘'을 이해해가는 내 짧은 식견에도 그랬다. 반항에는 아빠의 꾸중이 뒤따랐다. 아빠의 순리는 명절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고종사촌 형부까지 명절마다 스무명 가까이 모여드는 우리집에서 식사준비와 뒷정리는 거진 다 여자들 몫이다. 엄마, 작은엄마, 사촌언니들, 나. 그중에서도 많은 부분이 꾀부릴 줄 모르는 맏며느리 우리 엄마 몫이다. 남자들이 하는 거라곤 상 꺼내 닦기, 다 먹은 상 부억 쪽으로 들어나르기, 무거운 과일 상자 받아들기, 음...더 생각해내려 했는데 여기까지다. 너댓세트의 밥상을 전부 차려내고 자리에 앉아 마침내 수저를 들면 아빠가 앉은 어른 상을 시작으로 주문이 밀려든다. 이 대목도 언짢다. 2016년에 유교적 서열에 입각한 자리 배치라니! 무튼 "초고추장이 떨어졌어" "갈비좀 더" "물 없나" "뿅각이 밥좀 더 줘" 이런 소리마다 여자들이 몸을 일으켜세우지만 매번 우리 엄마가 제일 빠르다. 엄마는 밥을 먹는둥마는둥 계속 영업 중인 상태가 된다. 물론 나도.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