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live Coriolanus, 코리올라누스

National Theatre live-Coriolanus 

코리올라누스/국립극장해오름극장/20160326





I talk of you:
Why did you wish me milder? would you have me
False to my nature? Rather say I play
The man I am

There is a world elsewhere.

So our virtues
Lie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time:
And power, unto itself most commendable,
Hath not a tomb so evident as a chair
To extol what it hath done.
One fire drives out one fire; one nail, one nail;
Rights by rights falter, strengths by strengths do fail.

Let me have war, say I: it exceeds peace as far as day does night; it's spritely, waking, audible, and full of vent. Peace is a very apoplexy, lethargy; mulled, deaf, sleepy, insensible; a getter of more bastard children than war's a destroyer of men.


=
표를 겨우 구해서 부랴부랴 다녀왔다. 톰 히들스턴의 코리올라누스라니!
영화도 보다 말아서 사실 극 전체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의 주인공 코리올라누스, 아니 카이우스 마르티우스는 오만하다. 그러나 순수하다. 거짓 아첨을 견디지 못하고 대중을 기만하는데 실패한 것도 그런 그의 천성 탓이다.
톰히들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부감을 가질 만큼 대중을 향한 코리올라누스의 혐오와 멸시는 견고하고 그 순도가 높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그런 적의를 애써 숨기려들지 않을 만큼 순수하다. 고결하기까지 하다.
오만함이라는 성격적 결함과 순수함이 뒤엉켜 비극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점에서 생각보다 톰 히들스턴 연기가 더 좋았다. 견고한 오만함과 적의, 티없이 맑은 순수함 사이의 양면 아닌 양면을 섬세하게 오가며 표현했다. 특히 어머니의 호소로 마음을 돌리면서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조명을 받아 찬란하게 빛날 때..가슴이 저몄다.

극속에서 '정치'가 전개되는 양상과 대중들의 면면이 꽤나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인상깊었다. 물론 코리올라누스의 성향 자체를 마냥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최후를 보면 그 판에서는 늘 보다 깨끗하고 직선적인 사람이 희생된다는 게 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이 남는다.
코리올라누스는 순수하기때문에 철저히 이용당하다 내팽겨쳐진 성능 좋은 방패다. 

막이 오르기 전에 공연이 펼쳐진 극장 과 이 공간에 대한 연출자의 철학,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연출자와 출연진의 설명을 들려준다. 완독하지 않은 작품이라 자칫 이해가 미흡할까봐 두려웠는데 도움이 됐다.
무대연출, 특히 벽을 활용한 방식이 기억에 남는다. 대중의 아우성이 벽으로 투영되는 방식은 지극히 현대적이면서도 생각할수록 그 뿌리가 깊다.

지금껏 타이투스가 셰익스피어 중 제일 선혈이 낭자한 작품인줄로만 알았는데 코리올라누스도 못잖은 듯 하다. 피칠갑하고나오는 히들스턴은 솔직히 매우 섹시하다. 특히 승전 후 피로 물든 그 위로 성수처럼 떨어지는 물줄기와 사방으로 튀는 핏물. 대사 하나 없지만 시각만으로 다 전달됐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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